세상 사는 이야기(770)
-
제조업에는 투자 안합니다
한국은 과연 선진국일까? IT산업 강국 바이오산업 등 벤처기업들이 많은 나라 고부가 기술로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요즘 기업들의 트랜드라고 대부분 생각하고 투자자들 역시 그쪽 분야에만 관심을 갖는다. 한국에서 더 이상 제조업은 각광받는 사업 아이템이 아닐뿐더러 기피 대상일 뿐이다. 10년전 한과시장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기록했던 김사장님은 식품업계에서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전국 백화점 판매 유통에 직접 소비까지 담당하며 열심히 해서 한때는 공시지가만 100억대의 잘나가는 사업가 였지만 방만한 운영과 인사관리를 잘못해서 부도를 맞게 되었고 사업도 접어야 했다. 공장을 운영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번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재기하기란 정말 힘들고 어렵다. 특히 경쟁력 없는 사업이야말로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
2008.04.21 -
자궁을 빌려드립니다..
만약에 요즘 '자궁을 빌려드립니다' 이런 광고를 게재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수많은 여성과 단체로부터 표적이 되고 그 광고를 게재한 언론 역지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로 본다면 씨받이라 볼 수 있는 이런 일들이 여성 해방을 부르짖던 1970년대 미국이나 일본에서 구직광고로 나왔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뿌리 깊은 아들 선호사상으로 오래 전 부터 씨받이나 씨내리가 공공연히 이루어 지고 있었다. 장손의 경우 아이가 없을 경우 남편의 결함 혹은 부인의 결함에 따라 씨받이 혹은 씨내리가 이뤄지곤 했다. 남자에게 결함이 있을 경우는 사랑방에 숙소를 빌려쓰고 있는 소금장수나 박물장수등 뜨내기 상인에게 돈을 주고 야밤에 아내의 방으로 들여보냈다. 물론 남편과 아내의 묵계에 따라서..
2008.04.21 -
사라진 고향의 맛 막걸리를 추억하다
1960년과 1970년에 시골에 살아본 사람은 안다.그 시절 먹을 것이 얼마나 귀하고 힘든 시절이었는지를......물론 가정형편이나 지방에 따라서 달랐겠지만 내가 살던 마을은 초가집에 읍에서 비포장 도로로 한 시간을 걸어서 들어가야 했다. 마을 입구에는 동네에서 가장 큰 미루나무가 있었고 도로를 따라서 굵은 미루나무가 하늘거리곤했다.마을 사람들의 주업은 논일과 밭일이었는데 우리집은 과수원과 조농사 그리고 논농사 약간 지었다. 봄이면 농사일로 마을은 바쁘고 모내기가 한창인 5월에는 새참을 이고 논두렁 사이로 오가는 아주머니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어린 나는 아주머니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며 모밥(새참)을 얻어먹곤 했는데 그때 먹는 밥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새참과 함께 꼭 따라오는 것이 막걸리였..
2008.04.18 -
환경오염 물질 cd 버려도 될까요?
우연히 집에 쌓여있는 cd를 보다가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바쁘다는 핑계로 처박아 놓은 cd가 또 많이 쌓였다. 요즘은 흔하고 흔한게 cd인데 그렇다고 함부로 버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환경 유해물질이 주성분인 CD디스크의 사용량이 큰 폭으로 늘면서 이에 맞는 환경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CD디스크의 주성분은 환경호르몬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카보네이트(PC)이다. PC는 생수통이나 젖병, 시위진압용 방패 등에 사용되는 재질이라고 한다. 환경운동 단체인 그린피스는 유독성에 따라 플라스틱의 순위를 매긴 `플라스틱 피라미드'에서 PC를 폴리염화비닐(PVC) 다음으로 유해한 물질로 지정한 바 있다. 또 환경호르..
2008.04.16 -
블로그 매력에 푹 빠지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지 꼭 6개월째 접어든다. 엄밀하게 말하면 5개월째 접어드는 셈이다. 다음 블로그에서 한 달 그리고 티스토리로 옮긴 것이 2007년 11월 27일이었다.처음에는 내 블로그가 생겼다는 것이 좋고 또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 취미로 시작한 것이 점점 블로그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처음 남의 글을 스크랩하며 시작된 블로그는 지금은 내 글을 올리면서 더 진지한 자세를 갖게 되었고 다른 블로거와의 인연도 인터넷에 대한 즐거움을 배가 시켰다.그중에 단연 블로거로서 매력을 느끼게 해준 것은 다음 블로그 기자였다. 그냥 무심결에 가입을 하고 글을 올리면서 다음 블로그 뉴스의 실시간 인기뉴스나 메인에 뜨는 다른 블로거의 블로그 뉴스를 보면서 나도 한 번 해봐야지 하는 의욕이 생겼다.그러나 다양..
2008.04.16 -
우릴 부끄럽게 하는 물고기의 부성애
이 세상에 모성애 만큼 지극하고 눈물겨운 사랑은 없다고 한다.어느새 나도 어머니라는 말 한 마디에 가슴 저미는 나이가 되었는데 요즘 문득 내가 아버지의 위치가 되고 나니 어머니의 자리만큼 아버지도 외롭고 힘드셨겠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된다. 어릴 적 아버지는 학교에 들어가기전 한글과 구구단을 모두 가르쳐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도록 하셨고 혹 집밖을 나갈 때는 남자가 밖에 나가면 돈 쓸 일이 생긴다며 넉넉하게 챙겨주시곤 했다. 물론 나중에 안일이지만 아들이 밖에 나가서 기죽지 않게 하기 위해 이웃집에서 꿔서 주셨다는 것을 어머니에게 들었다.연이은 사업실패에도 끝까지 자신의 속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며 용기를 주신 아버지....팔순이 넘은 연세에도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버지를 ..
2008.04.14 -
친절보다 전문성이 아쉬운 공무원
요즘 어느 곳을 가도 예전보다 공무원들 많이 친절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그건 사회가 많이 바뀌었고 또 친절교육을 받은 탓도 있겠지만 인터넷의 발전으로 잘못할 경우 실시간으로 홈페이지에 올라와 곤욕을 치룰 수 있다는 점도 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기본 자세 중에 친절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전문성이다. 며칠 전의 일이다.새로운 사업 구상으로 군청에 들릴 일이 있었다.지역특화 사업이나 기업자금에 대한 운용과 기업 유치에 대해서 알고 싶은 점이 많아서 담당자를 찾아 가게 되었다. 미리 약속시간을 정해서 찾아간 공무원은 예의 친절함으로 자세히 안내를 해주었다.그런데 이야기 중에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다. 기업유치에 대한 전문성이 없다보니 민원인에게 오히려 묻는 것이 ..
2008.04.13 -
몹쓸 철새 정치 지망생들
18대 총선이 끝났다.최악의 선거 투표율과 보수의 약진 386과 진보의 몰락으로 나타난 이번 총선을 보면서 민심이 점점 정치에 무관심해짐을 느끼게 된다.특히 선거 전과 선거 후의 운동원들의 겉 다르고 속 다른 행동을 보면서 씁쓸함을 느꼈다. 내가 사는 선거구는 3개 시군이 묶여 후보가 나왔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한나라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라 한나라당 예비후보가 대거 몰렸고 그중에 한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로 내정되었다.속된 말로 개나 소도 한나라당으로 출마하면 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한나라당 후보로 선출된 출마자 주변에는 얼굴도장 찍으려는 사람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한나라당 예비후보로 나섰던 다른 후보는 무소속으로 나왔다. 무소속 후보는 2선 국회의원으로 당을 옮긴 전력이 있어 그다지 여..
2008.04.11 -
438일만에 지구로 돌아온 우주인은 누구?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기록이 존재한다.기록은 곧 역사이며 그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는 도전자가 끊임없이 나타난다.기네스 북을 살표보면 인류 역사상 지구상에서 가장 장수한 프랑스 출생의 쟝 루이스 칼멘트(Jeanne-Louise Calment)란 할머니는 무려 122년 164일 살아 최장수 노인의 기록을 갖고 있으며 유고슬라비아 비행기 승무원인 베스나 불로빅(Vesna Vulovic )은 1972년 1월 26일 체코로 향하던 DC-9기가 테러리스트의 폭탄으로 비행기가 화염에 휩싸이자, 낙하산도 착용하지 않은채 33,330피트의 고공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렸으나 양 다리에 골절상과 가벼운 허리부상 정도만 입고 기적같이 살았다고 한다. 함께 뛰어내린 다른 승객들은 모두 현장에서 즉사했다고 하니 그의 기록 역..
2008.04.09 -
어머니가 남기고 간 마지막 음식
2007년 12월 16일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임종도 지켜보지 못하고 황망하게 가신 어머니의 병명은 심근경색이었다.평소에 고혈압과 류마티스관절염으로 고생은 하셨지만 졸지에 변을 당하시리라곤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어머니는 틀니와 손에 끼셨던 옥가락지 한쪽만을 갖고 가셨다. 벌써 100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어머니는 늘 내곁에 머물러 계시는 듯하다. 고향에 자주 오지 못한다고 늘 바리바리 싸다 주신 음식들 냉장고를 열때나 주방을 기웃거리다 보면 어머니의 체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제는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어머니의 손맛.......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요즘 중국산 김치 때문에 말이 많은가보더라 이번에는 좀 더 갖다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고 꺼내 먹으렴 ...괜히 사먹을 생각..
2008.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