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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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강도 용의자로 만든 형사를 만나보니.......
먼저 이글을 쓰기 전에 11월 23일 포스팅했던 "마트에 간 아들 강도 용의자가 되었습니다.'라는 기사에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들에게 전화를 받고 마트에 전화를 걸어 당시 cctv가 보관되어 있고 올라오면 볼 수 있다는 것과 담당형사와 통화해 아들을 용의자로 몬 연유를 듣고 상경하기고 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팀장이 이런 사실을 보고받고 다시 검토한 후 뒤늦게 아들이 용의자가 아니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는 정말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학원 선생님들이 아들을 다독여주고 진정시켜 시험은 무사히 치루었다고 하더군요. 사건 당일 직접 올라가 자초지종을 듣고 마트에서 cctv를 다시 볼 심산이었지만 너무 늦어 전화로 약속을 해놓고 다음 날 일찍 떠나려고 했..
2008.11.25 -
아들이 살고 있는 고시원에 가보았더니....
아들이 고시원에 간지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아들이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아니면 고시원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가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아들이 강도 용의자가 되어 서둘러 아들이 살고 있는 고시원에 가보게 되었습니다. 고시원하면 화재로 인한 대형참사와 묻지마 살인 때문에 아주 좋지 않은 인식이 있었고 또 사업하다 실패해서 고시원에서 1년을 살았던 선배의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터라 걱정이 앞선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선배가 살았던 고시원은 그야말로 쪽방촌 중에서도 허름하기 이를데 없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방도 건물의 모퉁이라서 부채꼴 처럼 생긴데다 마음대로 발을 뻗고 누울 공간도 없었다고 합니다. 발밑에 밥솥이 있었고 옷가지와 가방 때문에 아예 방정리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방에..
2008.11.25 -
마트에 간 아들 강도 용의자가 되었습니다.
먼저 이글은 11월 23일 일요일 아들이 실제 겪었던 일입니다. 학원을 다니던 아들이 점심 식사로 삼각김밥을 사러 마트에 들렀다. 편의점 강도 사건의 용의자로 몰렸던 하루의 일과를 적은 글입니다. 이글은 결과적으로 아들이 용의자의 누명을 벗고 형사팀장의 사과전화로 매듭지었지만 다시는 아들과 같은 사람이 생기면 안되겠다 싶고 용의자로 몰렸을 때 받았을 충격과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할 줄 모르는 관행들을 바로 잡고 싶어 쓰는 글임을 밝혀드립니다. 토요일 오후에 고향에서 모임이 있고 김장도 한다는 소식에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전날 술을 과음한 탓에 조금 늦은 9시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시각이 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갑자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울면서 하는..
2008.11.23 -
입시부정 왜 교수들에게만 관대한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입시부정에 대한 문제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그만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다보니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원하는 곳에 들어가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큰 병폐인데 이번에 홍익대가 미술대학 교수 2명의 입시부정 행위를 밝혀내 최근 이들을 징계하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입시부정행위가 분명하게 드러났음에도 솜방망이 처벌을 해 문제가 되고 있다. 징계가 결정된 교수들은 지난해 11월께 미술 비전공자를 위한 특수대학원인 미술대학원 면접 전형에서 면접위원들에게 자신들이 청탁을 받은 수험생들을 잘 봐달라는 내용의 쪽지를 건넸다고 한다. 대학 측은 그러나 징계위원회 조사에서 당시 면접위원들이 ‘해당 교수들로부터 쪽지를 건네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내..
2008.11.21 -
선생님을 사기친 간 큰 여고생들
지난달 원주에서는 담임 선생님에게 사기친 여고생들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어릴 적 이곳에서 살다 중학교 때 원주로 전한간 친구 딸의 말에 의하면 선생님이 압수해서 맡긴 금반지를 몰래 창문 넘어 들어가 훔쳐낸 뒤 분실 책임을 물어 담임 선생님으로 부터 금반지 값 명목으로 70만원을 받아냈다가 한 학생의 제보로 적발되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 였다. 지방 일간지에도 소개된 이 이야기는 올초에 있었던 일로 모 여고 1학년 담임교사가 금반지를 끼고 등교한 학생 5명으로부터 반지를 압수해 교무실 책상서랍에 보관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학교 교칙상 장신구 착용이 금지되어 있었고 적발될 경우 압수 보관 후 돌려주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담임교사는 교칙에 의해 압수해서 교무실 책상서랍에 넣어서 보관해 놓은..
2008.11.21 -
1년전 A/S 맡긴 겨울점퍼 아직도 못 찾았습니다.
다음 달이면 꼬박 1년이 다 되어 간다. 옷을 산 집에 A/S를 맡기고 아직도 못찾은 것이...... 아내와 나는 한 달에 두세번 서울에 물건을 하러 간다. 숙녀복 의류점을 하는 아내를 돕기 위해 운전기사로 자청한 내게 가끔 미안하다며 옷을 사오는 아내 ....그런데 내 스타일이 아닌 너무 젊은 옷을 사와 함께 보고 사기로 했다. 동대문에는 나이든 사람들이 입을 옷이 없어서 남대문에서 점퍼 두 개를 구입했다. 흰색 점퍼 하나와 군청색 점퍼를 구입했는데 집에 와서 입을 때 마다 불편한 점이 있었다. 색상도 마음에 들고 따듯해서 좋은데 한 가지 쟈크가 너무 뻑뻑해서 옷을 입었다 벗을 때 너무나 힘들고 불편했다. 군청색은 괜찮은데 흰색 하프점퍼가 쟈크 불량이라 힘들게 올려서 입고 난 후 벗으려면 툭 타개지는 ..
2008.11.20 -
동대문 지게꾼과의 대화 "요즘 가장 힘들어"
아내와 나는 한 달에 두세번 정도 서울에 간다. 아내를 돕기 위해 운전사로 따라가는 것인데 사실은 어쩔 수 없이 아내를 도울 수 밖에 없는사연이 있다. 4~5년전 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의류점을 하고 있었다. 모두 영세업자였지만 1주일에 관광버스가 두 번 서울을 갈 정도로 장사꾼이 많았는데 조금씩 줄어들더니 한 달에 두 번 가던 관광버스마저 25인승으로 바뀌고 그것마저도 운행이 어려울 정도로 지방의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했다. 버스운송회사는 고유가에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인원이 맞지 않으면 운행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아내의 부탁을 들어주다 보니 이제는 전속 운전사가 되어 버렸다. 함께 가니 아내가 마음이 편해서 좋다고 하고 따라다니며 물건을 들어주니 힘이 들지 않아서 ..
2008.11.19 -
물토끼를 아시나요?
어렸을 적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많은 추억이 있을 것이다. 도회지에서 느끼지 못하는 시골스러움....그것들이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고 그리움이 되었다. 어릴 적 자라던 시골에 가도 옛날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산골 구석구석 집들이 들어서고 골짜기도 예전 같지 않다. 그래서 고향에 가도 고향의 참맛을 느끼지 못한다. 벌써 또 한 해가 다 지나간다. 대청봉에 눈이 내리고 낙엽비가 우수수 내리는 겨울의 초입이다. 내게 있어 겨울이면 생각나는 것들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고구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에 우리집은 유난히 고구마를 많이 심었다.논농사는 없고 밭농사만 짓다보니 조와 보리 그리고 고구마를 많이 심었다. 겨울이면 웃방에는 미군 드럼통이 4개가 놓였고 그 속에는 가득 고구마가 담겼다. 겨우내..
2008.11.17 -
도시에서 연탄재와 장작을 다시 보니 걱정이
올 겨울은 유난히 힘든 겨울이 될 것 같다고 합니다. 실물경제가 추락하고 그 여파로 지방경제는 아사직전에 몰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나마 정규직 공무원이나 고정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은 그나마 낫지만 일용직이나 임시직은 늘 하루가 가시방석이라고 합니다. 일거리는 줄어들고 그러다 보니 인원을 감원하거나 쓰지 않아 길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도시에는 고철과 폐지를 줍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고 합니다. 고철과 폐지가격의 폭락으로 하루벌어 하루 살기마저 힘든데 설상가상 닥처온 겨울은 몸과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했습니다. 하루종일 고철과 폐지를 줍던 할아버지는 5천원을 벌었지만 요즘은 가격 폭락으로 2~3천원 벌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베이징 올림픽 폐막을 기점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고..
2008.11.17 -
수능 망친 아들과 술한잔 했습니다.
어제는 수능을 마친 아들과 술한잔했습니다. 기숙사에서 짐을 빼오는 동안 말이 없던 아들이 손님을 만나고 집에 들어오니 아내와 함께 울고 있었습니다. 수능을 망쳐서 너무 속상하다며 고등학교 3년동안의 속내를 털어 놓았다고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고등학교에 갔는데 막상 가보니 학교에서는 전문적인 예술인의 키우는 것도 아니고 수능을 대비해서 학업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너무나 후회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고집해서 갔으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교과를 쫓아 가려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3학년이 되어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져 열심히 했지만 이미 뒤쳐진 것을 열세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합니다. 아내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자식 공부는 아직 부모의 철저한 관리만이 성적을 올릴 수 있는데 아이를 너..
2008.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