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간 아들 강도 용의자가 되었습니다.

2008. 11. 23. 23:06세상 사는 이야기

먼저 이글은 11월 23일 일요일 아들이 실제 겪었던 일입니다. 학원을 다니던 아들이 점심 식사로 삼각김밥을 사러 마트에 들렀다. 편의점 강도 사건의 용의자로 몰렸던 하루의 일과를 적은 글입니다.
이글은 결과적으로 아들이 용의자의 누명을 벗고 형사팀장의 사과전화로 매듭지었지만 다시는 아들과 같은 사람이 생기면 안되겠다 싶고 용의자로 몰렸을 때 받았을 충격과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할 줄 모르는 관행들을 바로 잡고 싶어 쓰는 글임을 밝혀드립니다.

토요일 오후에 고향에서 모임이 있고 김장도 한다는 소식에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전날 술을 과음한 탓에 조금 늦은 9시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시각이 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갑자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울면서 하는 말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습니다.
학원 점심 시각이라 마트에 삼각 깁밥을 사 먹으러 들어갔는데 다짜고짜 형사 두 사람이 와서는 "다 알고 왔다" 하면서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랍니다.
"왜 그러세요..."
아들이 깜짝 놀라 잔뜩 겁을 먹고 물었더니 대뜸
"네가 사는 곳이 어디냐..."묻더랍니다.
"고시원인데요..."
"그곳으로 가자.."
자초지종도 이야기 하지도 않고 겁에 잔뜩 질린 아들은 길 건너 고시원으로 갔고 고시원 방으로 들어온 형사들은 아이의 짐을 모두 뒤졌다고 합니다.
아이는 영문도 모르는체 겁에 질려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고 거짓말 탐지기 이야기까지 하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합니다.
한 시간여 동안 공포에 휩싸였던 아들이 용의점이 없어 일단 학원으로 돌려보냈는데 풀려난 아들이 내게 전화를 한 것이었습니다.삼각 김밥 사러갔다가 용의자로 몰려 점심도 못먹고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 밖에 안난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리가 띵해졌습니다. 수능이 시험을 망쳐서 상심한 아들이 학원에 가서 혼자 고생하는 것이 너무 안쓰러워 내일 반찬을 만들어 올라가려고 했는데 이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란 말인가....
아이를 진정시키고 자초지종을 들어보고 마트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오늘 아들이 용의자로 지목되었는데 그것을 알고 있냐고 물으니 알고 있다며 내일 가면 당시 CCTV를 볼 수 있느냐 물으니 당연히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곳에 형사가 전화번호를 남겼다며 가르쳐 준 번호로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들을 어떤 증거로 용의자로 지목했습니까.."
"며칠 전에 난 편의점 강도사건 때 CCTV에 찍힌 인상착의가 너무 비슷해 조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확실하지도 않은데 아이에게 다짜고짜 <다 알고 있다>라면서 범인인 듯 추궁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수사관행상 용의자로 지목하게 되면 추궁을 하게 되고 그때 얼굴 표정을 보면 감각적으로 범인인지 아닌지 알 수 있고 알리바이를 통해서 범인을 색출하기도 합니다.
"CCTV를 확보하고 계신다고 하니 내일 올라가겠습니다. 마트와 경찰서를 방문해서 아이가 용의자로 몰린 것에 대해 확실하게 알아보겠으니 먼저 아이를 진정시키고 학원으로 돌려보내십시오."
전화를 끊고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요일이라 차량이 밀려 3~4 시간이 걸릴 것을 생각하고 올라가려니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그런데 떠나고 얼마되지 않은 시각에 전화가 왔습니다.
형사의 상사라는 분이 전화를 걸어와서는 보고를 받았고 자세히 검토해보니 아들이 용의자가 아닌 걸로 밝혀졌다며 올라오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하더군요..
"여러가지 정황과 CCTV를 잘 관찰해보니 아들이 용의자가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아버님께서 올라오실 필요가 없겠습니다."
그래서 요모조모 자세히 따져 물으니 자신들의 일의 성격상 불가피한 일이었으니 이해해 달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해합니다. 그러면 용의자가 아닌 것이 밝혀졌다면 이제껏 아이가 받은 충격과 상처와 가족의 고통은 그냥 감수하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족에게는 사과하지 않아도 되니 가까운 곳에 있는 아이에게만이라도 분명히 사과하고 마음에 안정을 시켜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거듭 미안합니다.사과하면서 반드시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학원에 전화를 걸어 형사들이 와서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할 것이라고 이야기 해놓았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하고 아이가 마음에 상처받지 않도록 잘 다독여 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8시가 넘어서 온 문자 메세지 한통은 또 나를 실망시켰습니다.


"공부가 방해될 것 같아 안갔으니 이해 바랍니다..."
이것이 내게는 '결국 누명이 벗어졌으면 되지 왠 이리 호들갑이냐'는 듯이 느껴졌습니다.
모든 사건이 일어날 때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용의자를 추궁하고 취조하고 나중에 아니면 말고 식으로 하는 것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또 여타 다른 곳에서도 아들보다 더 심한 용의자로 몰렸다가 풀려난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고 그로인해 상처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입장은 왜 생각해주지 않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직업상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해 주십시오. 미안합니다."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근무하는 직원들의 고통도 이해해주십시오."
이런 말조차도 내가 마트에 전화하고 형사와 통화하고 올라가서 분명히 잘못된 시시비비를 분명히 밝히고 따지겠다고 하자 부랴부랴 다시 확인하고 문제가 커질 것 같으니 올라오지 말라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어쩔 수 없는 관행이라면 앞으로 아들처럼 용의자가 되었다 풀려나는 경우 좀더 세심하게 배려해주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놀라 우황청심환을 사먹고도 진정이 안되고 나 역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하루..............
아이가 두고두고 마음의 상처로 남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