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살고 있는 고시원에 가보았더니....

2008. 11. 25. 00:20세상 사는 이야기

아들이 고시원에 간지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아들이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아니면 고시원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가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아들이 강도 용의자가 되어 서둘러 아들이 살고 있는 고시원에 가보게 되었습니다.
고시원하면 화재로 인한 대형참사와 묻지마 살인 때문에 아주 좋지 않은 인식이 있었고 또 사업하다 실패해서 고시원에서 1년을 살았던 선배의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터라 걱정이 앞선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선배가 살았던 고시원은 그야말로 쪽방촌 중에서도 허름하기 이를데 없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방도 건물의 모퉁이라서 부채꼴 처럼 생긴데다 마음대로 발을 뻗고 누울 공간도 없었다고 합니다. 발밑에 밥솥이 있었고 옷가지와 가방 때문에 아예 방정리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방에서는 바퀴벌레가 스물스물 기어다니고 벽지는 언제 도배했는지 모를만큼 누더기였다고 합니다.
그런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처음 아들이 고시원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극구 말렸지만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노라는 아들의 간곡한 부탁을 차마 내치지 못하고 허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다된 지금 김장김치와 밑반찬을 갖고 고시원을 가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홈페이지에 나왔던 모습이 아니고 헌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고시원이었습니다.
주인 아저씨의 안내로 아들의 방을 따라가는 동안 주인아저씨는 고시원에 대한 자랑이 대단했습니다.
이 건물은 아주 오래된 건물인데 새로 고시원을 리모델링하면서 불에 타지 않는 불연재로 내부 인테리어를 다 했다고 했습니다.
마치 대리석처럼 바닥이며 벽이 반들반들 했습니다.비상구도 양쪽에 있어 화재시에도 긴급하게 대피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들의 방으로 들어가 보고 나서는 정말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홈페이지에 나온 방보다 너무 좁을 뿐만아니라 아들이 다리를 쭉 피고 잘 수 없을 정도로 방이 협소했습니다.
혼자 서있는데 답답하고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선반과 TV 그리고 냉장고 하나 달랑있는 고시원은 가로 세로가 180cm 정도 되어 보였는데  성인 두 사람이 서있기 불편할 정도로 좁았습니다. TV와 냉장고 때문에 있으나마나한 의자는 방에 비해 엄청 커보였습니다.침대 옆 공간은 택배로 보내준 박스 때문에 움직이기도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월 35만원이 작은 돈이 아닌데 서울에서는 사람하나 맘편히 눕지를 못하는구나......이런 저런 생각으로 잠시 아들방을 둘러보는데 드라이기 앞에 삼각깁밥이 놓여있습니다.
아마도 밥을 해먹기 귀찮아서 늘 삼각김밥으로 때운 듯 합니다. 강도 용의자로 몰리게 된 것도 밤에 삼각김밥을 사러갔다가 CCTV에 찍히면서 곤욕을 치른 것을 보면 늘 인스턴트로만 끼니를 때운 듯 했습니다.


방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유일한 창문은 머리 하나 내밀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밖을 내다보았자 바로 반대편 방의 벽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그나마 저 창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질식할 듯 안은 답답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고시원 화재 사건 때문인지 화재시 비상벨과 휴대용 조명등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화장실은 함께 쓰도록 되어있는 공용화장실이 있었고 세탁실과 공동 취사실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좁아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오른쪽 선반 위에 삼각김밥은 먹다가 질려서 놓고 학원에 간 듯 했습니다. 이왕 고시원을 새로 리모델링 하려면 사람이 편히 발을 뻗고 잘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혹시 이글을 보시는 분 중에 아이를 고시원에 아이를 보낼 생각이시라면 아이와 함께 직접 가셔서 확인해보고 계약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왜냐하면 인터넷이나 홈페이지 상에 보여지는 것과 실제로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TV라도 없으면 잠시도 답답해서 생활 할 수 없다던 선배의 말처럼 아들이 살고 있는 고시원도 똑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시원을 선택한 아들처럼 이곳에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좁은 쪽방이나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오후 늦게 아들 방을 정리하고 돌아오면서 다리라도 쭉 뻗고 잘 수 있는 곳으로 옮겨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