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120년 넘은 빨래터가 있다.

2008. 8. 12. 13:51사진 속 세상풍경

요즘 도시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세상이 각박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또 세상은 자기 살기에만 바뻐 주변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러다 나이들어 문득 뒤돌아보고 돌아갈 곳 없음에 가슴 저미기도 한다 . 내게도 지난 추억은 늘 그립고 가슴 아프고 아련하다. 그럴 때먄 문득 고향을 찾고 싶어진다.
고향을 가지 못할 때에는 고향을 닮은 곳에 가서 잠시 머리를 식히곤 하는데 그곳 중에 한 곳이 오늘 찾아간 빨래터다. 내가 어릴 적에 동네에도 샘물이 콸콸 솟는 샘물아래 빨래터가 있었다. 동네 아낙과 어머니는 한겨울에도 이곳에서 빨래를 했고 여름에는 등목을 하거나 목강을 즐기기도 했다.
물론 샘통을 건드리지 말라는 동네 어르신의 지엄한 분부를 잘 따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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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속초시 설악동 장재터라는 마을인데 양양에서 대포동 가기 전에 설악산 가는 곳으로 차량으로 10분정도 올라가다보면 왼편으로 양양으로 갈 수 있는 다리가 있다. 노송들이 즐비한 그 길을 따라 가다보면 정겨운 마을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설악동 장재터 마을이다. 마을 담이 모두 돌담으로 쌓여있어 친근함을 주는데 담쟁이 위로 호박넝쿨이 덮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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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넘은 밤나무가 속이 파인 채로 서있는 빨래터가는 길...주변에는 노송들로 가득차 있고 나무와 나무 사이로 차량들이 지나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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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하게 눈에 들어오는 빨래터 이곳은 이 마을의 최고령 할머니가(92세) 태어나기 전 부터 샘터가 있었고 그 아래 빨래터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에서 김장을 하거나 집안의 큰 일이 있을 때는 요긴하게 사용하는 빨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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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빨래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빨래판...고목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언제나 시원한 이곳에서 수다를 떨 수 있었던 동네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빨래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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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샘물 아래 개울처럼 자갈들이 쭈욱 깔려있어 냉장고가 없을 때는 항아리에 김치며 각종 음식을 물에 담궈 놓아 동네 아저씨들이 네것 내것 없이 먹고 싶은 대로 먹곤 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해주시는 아주머니 말로는 아침에 나와보면 음식을 넣어놓은 항아리가 모두 비어 둥둥 떠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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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 샘터와 빨래터를 보수했고 그 뒤 20년 전에 다시 한 번 개보수를 했다고 한다.
올해 피서객이 많아 이마을에도 숲이 좋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동네 사람들이 밑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아이를 데리고 와 샘통에다 아이 발을 담그는 몰지각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샘통에는 절대 발을 담그지 않는다고 한다.모두 그 아래 빨래터에서 모든 일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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콸콸 쏟아지는 샘물......오랜동안 마르지 않은 샘물처럼 이곳 마을은 언제나 숲과 나무와 넉넉한 인정이 남아있는 곳이라고 했다. 샘물 아래에 손을 담궈보니 서늘했다.
비가 내리는 날 찾아가서 그런지 빨래터는 축축하게 젖어있고 마을도 한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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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송들이 즐비한 그곳 아래 정자가 한 채 .....이곳에 누워 있으면 설악산 통바람이 시원하게 쏟아져 더위를 모르고 산다고 한다. 도시에 아직도 120년이 넘은 빨래터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세탁기가 등장하면서 하나 둘 사라진 빨래터가 아직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 역시 놀라웠다.
잊혀져 간 고향의 풍경을 내가 사는 가까운 곳에서 만나는 즐거움 .....그것이 장대비를 맞으며 찾아간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