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삶 배숙자를 아시나요?

2008. 9. 15. 22:33세상 사는 이야기

이번 추석에 오랜만에 막내가 명절을 세러 왔습니다. 사업실패로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고 연락마저 끊겼던 동생의 소식을 알게 된 것은 수년이 지난 후였지만 그간 고향집으로 날라오는 각종 채무변제 안내서와 독촉장 때문에 아버지와 큰형님이 참 많이 시달림을 겪었습니다.
그동안 신용불량자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던 동생이 선택한 것은 인천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무역선의 보따리무역상인 따이공이었다고 합니다.따이공은 무역의 일반적인 절차인 주문,구매,선적,통관,판매까지 보따리 상인들이 직접 담당하는 것을 말하는데.그중에서도 동생은 초기 자본이 없어서 직접 물건을 구입해서 판매하는 것이 아닌 물건 심부름을 하고 받는 것으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일이 많아서 벌이가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품목 수가 적어지고 1회 통관량도 80kg에서 50kg로 줄어들면서 수입이 시원찮았다고 합니다.
초기에 고추와 참깨등 농산물로 톡톡히 재미를 보았지만 이제는 들여와도 수익을 남기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수익을 남기는 사람들은 원산지를 속여서 팔아먹는 몇몇 상인들 뿐이라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유혹하는 것이 밀수였는데 작퉁 술과 시계를 들여올 때 마다 개당 만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악착같이 벌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이를 악물고 돈을 저축하던 동생은 아는 사람의 부탁으로 물건 심부름을 했다 밀수범으로 인천세관에 체포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단순가담자이고 초범이라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고 풀려나 인천을 떠나 속초항으로 거주를 옮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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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작된 선상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배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을 노숙자에 빗대어  배숙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현재 속초에서 동춘항을 타고 따이공을 하는 사람은 대략 80여명 정도 되는데 요즘은 벌이가 영 시원찮다고 합니다.
모든 경비를 제외하고 2~3만원도 손에 쥐기 힘든데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배를 탈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돈을 벌어서 번듯한 내 가게를 갖고 싶은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소원인데 그런 큰돈을 벌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예전에 따이공을 1년정도 하다가 지금은 주유소에서 쥬유원으로 일하는 사람은 따이공이야기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습니다.
"갑자기 사업을 말아먹고 친구의 소개로 1년 했는데 그것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다.속초에서 자루비노에서 내려 비포장도로를 타고 2시간 정도 달려야 훈춘에 도착하는데 대부분 식품을 갖고 들어와 한국에서 판매를 하곤 했습니다. 초창기에 따이공을 한 사람은 한달에 2~300만원 번적도 있다고 했는데 나는 100만원 이상 벌어본 적이 없어요"
 "지금은 자루비노에서 훈춘으로 가는 길이 포장이 되어 조금은 편해졌다고 하지만 점점 수익성이 낮아져 고민이라고 합디다"
"배숙자로 지내는 동안 잠이 오지않아 독한 중국 술을 많이 마셔 속을 버려 한참 고생했지요...."
"몇해전 까지만 해도 달러 환치기를 하며 재미를 본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단속이 심해서 그것도 여의치 않은가 봐요....궁여지책으로 관광 가이드도 하면서 살길을 모색하지만 앞으로 더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으로 들여와 수익을 남길 수 있는 품목이 없어서 걱정이라는 동생.
다행히 가족의 도움으로 오랜 신용불량자 생활에서 벗어났지만 나이가 40이 넘은 나이에 이직할만한 곳이 없어 시름에 잠겨있습니다.
영업용 택시를 하려고 알아봐도 요즘 영업용 택시 기사들 모두 죽을 맛이라고 합니다.아무리 열심히 해도 사납금을 넣고 하루에 2~3만원 밖에 손에 쥘 수 없는데다 과로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에 망설이며 다시 배에 오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배숙자 생활 6년에 늘은 것은 나이밖에 없다며 씁쓸하게 웃던 동생 모습에 지금도 마음 한 켠이 무너져 내리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