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2007. 12. 29. 11:02사진 속 세상풍경

“이 이쁜 것을”…태안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태안 좋아요” 연말연시 봉사하고 회 먹고 어민돕는 사람들
[손혁기의 태안 리포트]“이 이쁜 것들이 …이 이쁜 것들이…”
조경미씨는 "갈매기가 돌아오면 바다가 살아. 물 나고 드는 것을 새들이 우는 것으로 알 수 있거든"이라며, 바다가 다시 살아날 것임을 굳게 믿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오전 태안군 파도리 해수욕장. 갯바위에 앉아 바위를 닦던 조경미씨(충남 아산시 풍기동)는 “이 이쁜 것들이…. 이 이쁜 것들이…” 라며 연신 헝겊을 문지르고 어루만졌다.

20살 꽃다운 나이에 도회지로 나가 이제는 대학에 다니는 딸까지 두었지만 조 씨에게 파도리 해수욕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즐거운 놀이터였다.

“전에는 홍합, 굴, 전복도 많이 먹고 낙지, 게가 지천이었어요. 지난 여름에도 홍합 따서 먹었는데요. 바닷바람이 차도 굴이랑 홍합을 캐면 얼마나 재밌는데요.”

7일 허베이스피리트호 원유유출 사건이 터지고 매일 TV에 고향 마을이 비췄지만 회사 일에 갈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만 더했다. “뉴스를 보면서 매일 울었어요. 어머니는 어찌 지내실까. 저 바다는 또 어쩔까.”

조경미씨 가족은 크리스마스 징검다리 휴일을 파도리에 보내기 위해 준비를 단단히 했다. 남편 김정식씨는 며칠씩 특근을 해서 24일 연가를 냈고, 조경미씨는 어머니 드릴 반찬을 준비했다. 지혜 양도 학교를 쉬었다. 대학 다니는 첫째는 바빠 내려오지 못했지만 세 식구가 나란히 일요일에 태안으로 향했다.

특근을 해서 연가를 내고, 어머님이 드실 반찬을 준비하고, 딸은 학교를 하루 쉬면서 조경미씨 가족은 특별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냈다.

평소 같으면 어머니 신남연씨(파도리)가 미리 따 놓은 굴과 전복으로 고향의 정을 느꼈겠지만, 내려오자마자 조경미씨 가족들은 장화를 신고, 고무장갑을 끼고 바닷가로 나섰다. 24일에도 이른 아침을 먹고 바닷가로 나와 헌옷으로 갯바위에 붙은 기름을 닦아냈다.

“갈매기가 돌아오면 바다가 살아. 물 나고 드는 것을 새들이 우는 것으로 알 수 있거든. 그 새소리를 듣고 (엄마가) 나와서 굴을 땄어.”

손을 부지런히 놀리면서도 조경미씨는 딸 지혜양에게 살아있는 바다를 그렇게 알려줬다.

송년회·크리스마스 연휴·연말연시를 태안서 자원봉사로…

크리스마스 징검다리 휴일을 맞아 태안반도에는 조 씨 가족처럼 기름 제거 자원봉사로 특별한 연휴를 보내려는 일반 시민, 단체, 직장인 등 4만여명이 찾았다. 가족, 연인, 친구, 직장동료와 함께 태안을 찾은 이들은 그동안 손길이 닿지 않았던 이름없는 바닷가를 찾아 기름 상처를 씻어냈다. 특히 이날은 물이 가장 많이 드는 ‘사리’로 오후 2시면 방제작업을 할 수 없어 이른 새벽에 서두른 이들이 많았다.

이날 파도리 해수욕장에서 방제작업을 벌인 고양시 교육청 직원 45명도 6시에 출발해 점심도 미루며 갯바위에 붙은 기름을 닦아냈다. 고양시 교육청 장쇠중씨는 “기름묻은 바위를 보면 배고픈 것도 모르겠다. 2시면 작업을 못 한다니까 그때 마치고 먹으면 된다”며, 헌 옷을 든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홍정순씨 부부는 드는 물에 쫓기면서도 기름묻은 바위를 헌 옷가지로 닦아냈다.

1시가 지나 물이 들자 자원봉사자들의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곳곳에 보였다. 인천에서 건설자재개발업체를 운영하는 홍정순, 안중식씨 부부는 24일 징검다리 휴일을 맞아 회사도 쉬고 태안을 찾았다. 23일 하루를 공주에서 하루를 쉬고 24일에는 아침부터 어은돌 해수욕장에서 기름을 닦아냈다.

안타까운 밀물 “얼릉 나오이소. 얼릉 나오이소”

회사를 운영하느라 오랜만에 낸 휴가지만 사흘 중에 이틀을 태안에서 보낼 계획이다. 홍정순씨는 “크리스마스 아침에는 근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다시 나와야겠어요. 이것밖에 할 수 없으니 닦아내기라도 해야지요.“ 바닷물이 들어오자 “얼릉 나오이소. 얼릉 나오이소”라며 남편을 챙기면서도 정작 홍씨조차 손에 잡힌 기름 묻은 돌멩이를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방파제에 오르는 아내에게 손 조차 내밀지 않은 무뚝뚝한 부부였지만 어렵게 낸 3일의 연휴를 태안에서 보내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직접 자원봉사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원유유출 사고로 사람들이 외면한 관광지를 찾아 주민의 시름을 덜으려는 발길도 차츰 이어졌다. 민관군 총력 방제와 자원봉사 물결로 해안선이 제모습을 되찾아가면서 이제는 관광을 위해 태안의 횟집과 팬션 등을 찾는 것도 지역경제를 살리고 어민들을 돕는 길이다.

이날 오후 5시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 원유유출사고로 며칠 타르찌꺼기가 해안에 흘러들어 관광객 발길이 끊겼던 이곳에도 삼삼오오 낙조를 즐기려는 이들이 찾았다. 가족이나 연인들은 떨어지는 해와 할미할아비바위를 배경으로 카메라셔터를 눌렀다.

방제작업에 참여하고 원유유출사고 2주만에 다시 꽃지해수욕장에 좌판을 벌인 국정열씨.

22일부터 다시 꽃지 해수욕장에서 낙지와 해삼, 굴 등 해삼물을 파는 국정열씨(안면읍 승언8리)는 “아직은 잘 안 먹어요. 하루 10마리 넘게 팔던 낙지를 사흘 동안 4마리 팔았으니까요.”

횟집과 팬션 찾는 것도 지역경제 살리고 어민 돕는 길

24일 아침 꽃지해수욕장 할미할아비바위에서 잡은 해삼.
해삼 한 접시를 시키자 자연산 굴과 먹으면 100년을 산다는 말똥성게도 덤으로 얹어줬다. 말똥성게의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는데 국정열씨가 말을 이었다. “굴은 아침에 할미바위에서 딴 거고, 해삼도 그 앞에서 잡은 거에요. 맛있지요? 나도 매일 먹어보는 데 아무렇지도 않아요. 다음주에는 관광객이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전에는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없을 정도로 많았는데…”

국 씨의 말이 아니어도 수면에 닿아 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해는 바닷물을 시시각각 형형색색의 빛으로 물들였고, 그 빛에 조금씩 움직이는 듯한 할미할아비 바위는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했다.

징검다리 휴일을 맞아 꽃지해수욕장을 찾은 연인과 가족들.


■ “연말연시 모임 태안서…수산물 소비로 실의 빠진 어민 돕자”

“수산물을 먹는 것이 실의에 빠진 어민을 돕는 길입니다. 서해에서 올라온 해산물은 기름오염 되지 않은 먼 바다에서 잡은 것들이니 안심하고 드세요.”

정부는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어업인들이 용기와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충남지역 수산물에 대한 소비 촉진과 ‘연말연시 태안 지역 찾아가기’ 등 지역경제 활성화 지원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태안반도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횟집, 팬션 등을 찾아는 것도 지역 경제를 돕는 길이다.

태안의 산타클로스…24일 태안 모항항에서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자원봉사자들이 방제 작업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를 위해 우선 정부와 공공기관의 각종 행사와 모임 등을 태안 지역에서 개최하고, 해산물 시식회, 수산물 안전성 검사 및 선포식을 개최하는 등 이 지역 생산물 소비 촉진을 위한 대책을 수립·시행할 예정이다.

실제로 이들 지역 수산물은 어촌계와 위판장 등을 중심으로 정부와 자치단체,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수산과학원 등이 직접 나서서 철저한 안전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오염된 수산물이 유통될 확률은 전혀 없다.

정부는 사고발생 직후인 지난 7일 충남, 전북, 경기와 인천 등 지방자치단체에 오염된 양식수산물은 채취나 유통을 통제하도록 긴급 지침을 시달했다으며 지난 10일이후 수산물 안전대응반 11명을 편성 최초 출하단계인 위판장을 중심으로 수산물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지난 10일부터 태안군을 비롯해 충남, 전북 지역 7개 시.군의 수산물 위판장 25곳을 대상으로 품질검사에 나선 결과, 기름에 오염된 수산물은 1건도 발견되지 않았다. 특히 수산물이 기름에 오염될 경우 냄새와 색깔로 쉽게 판별이 가능하므로 오염 수산물이 유통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지난 17일 수산물 검사요원 23명을 투입해 충남과 전북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위판장 전체에 대한 일제 점검을 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국립수산과학원 소속 전문가 43명으로 구성된 현지 조사단을 파견해 생태와 오염 조사를 보다 과학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태안=글·사진 손혁기 (pharos@korea.kr) | 등록일 : 2007.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