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고함치며 욕하는 아내

2008. 6. 8. 12:14세상 사는 이야기

약 석 달쯤 된 것 같군요. 갑자기 아내가 운동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이라고는 질색하던 아내가
그것도 혼자서 산으로 아침운동을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산이라고 해봐야 낮은 야산이라 그리 힘든 곳은 아니지만 소나무가 무성해서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산책로로 이용하는 곳이지요.
오늘은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벌써 아내가 운동을 가고 난 후였습니다. 일요일날 아내와 함께
운동가보리라 마음 먹었던 나는 부랴부랴 아내가 다니는 길로 따라가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오가는 곳을 지나 한적한 곳으로 내려가는데 어디선가 메아리처럼 귀에 익은 소리가 들립니다.
"너,00 인생 똑바로 살아 00"
"날아가는 까마귀, 너 자꾸 짖지마"
"00년아. 믿은 내가 정말 바보였어"
아, 이건 분명 아내의 목소기가 분명합니다.
조심스럽게 샛길을 따라 걸어가 보았습니다.
그곳은 누군가의 무덤이 있는 곳인데 그 길옆에 퍼질러 앉아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살면서 아내에게 잘못한 일이 많은 나는 덕럭 겁이 나더군요.
가만히 들어보니 그것은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가슴 속에 치민 화를 날마다 이곳에 와서 뱉는 것이었습니다.
듣는 동안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처럼 내 가슴에 박힙니다.
그동안 문학하네 하면서 기껏 돌팔이 시인밖에 못된 주제에 아내에게 늘 큰 짐을 지어준 것을 고
스란히 혼자서 감내해온 아내. 내 앞에서는 내색을 안하면서 굳세게 잘도 견딘다 했는데 이곳에 와서
화를 다스리는구나.
모르는 척 산책로를 돌아 산을 오르니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입니다. 6월 밤꽃 향기가
코끝을 자극합니다.
"제발 사고 치지 말고 살아요, 돈 버는 것 억지로 되는게 아니니 욕심을 부리지 말고 살아요"
아내의 말이 자꾸 귀에 잉잉 거립니다.
사업을 하는 족족 잘 되지 않아서 그동안 있던 것 다 잃어버렸으니 아내맘이 오죽하겠습니까
그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아내를 위로할 말이 딱히 없습니다.
그래도 내 앞에서는 기 안죽이려고 애쓰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럽지요.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벌써 와 있습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아침을 차리고 있습니다.
"요즘 또 무슨 안좋은 일 있어?"
아침을 먹으면서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왜, 내 얼굴이 그렇게 보여?"
"응!"
"요즘 손님하고 구설수에 휘말려 너무 힘들어"
"옷 가게만 오면 자꾸 물건을 훔치는 손님이 있는데 그 손님이 옷을 참 잘 사는 사람이라서 그냥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너무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서 친한 언니에게 언뜻 그 말을 했었어"
"그 언니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 남에 말 다른 사람에게 옮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어떡하면
좋으냐고 자문을 구하려고 이야기 한 것인데 그것을 쪼르르 달려가 이야기 했나봐."
그 손님이 와서 변호사를 사서 고소하네 뭐네 하면서 난리를 치고 편지까지 보냈다고 하더군요.
아내가 화나는 것은 손님보다는 믿고 이야기 했던 그 언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손님은 현직 선생님인데...다른 옷가게서도 그런 소문이 돌곤했지요.....생리중일 때만 도벽이
있는가 보다고 수근 거리곤 했는데 아내의 집에 드나들면서도 똑같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니 아내도
속이 상했겠지요.
"어차피 ,엎어진 일이니 잊어버려, 손님이 옷이 맘에 안들어 다른 집으로 갔다고 생각하고 맘 편하게 생각해"
위로가 되지도 않을 말을 하면서도 그 모든 잘못이 내게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더군요.
늘 장사를 그만두고 싶다면서도 고등학생 아들 둘 교육 때문에 손을 놓지 못하는 아내
언제쯤 아내가 산 속에서 혼자 욕하며 화를 다스리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이 다 나로인해 생긴 것이니 이번 사업만큼은 꼭 성공해서 맘 편하게 해주고 싶은 생각 뿐인데...
날마다 산을 오르는 아내.......자신의 운동 때문이 아니라 마음에 화를 다스리러 가는 것을 알고 부터
제 마음이 점점 무거워집니다.
혹시 산길을 걷다 고래고래 고함치며 욕하는 여자 목소리를 들으시거든 부디 이해해주시길......
작은 몸으로 혼자 감당하지 못할 화를 뱉으며 발버둥치는 제 아내의 무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