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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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에 찍힌 남대문 옷 도둑들 대범하네..
지난 주에 1년만에 남대문 의류상가에 다녀왔습니다. 예전에 한 달에 두 번 남대문 상가를 다니곤 했는데 동대문 의류타운이 번창하면서 점점 가는 횟수가 뜸해지다 지난 해에는 단 한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남대문 의류상가가 동대문에 밀렸다는 반증이겠지만 아동복 시장만큼은 아직도 남대문에 손님이 많았습니다. 새벽 3시에 남대문에 도착해 인근에 주차를 하고 아내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기 위해 의류타운으로 들어섰습니다. 1년만에 왔는데 주변은 변한 곳이 없더군요. 변한 것이 있다면 상가 입구에 볼썽 사납게 붙여진 도난 사진이었습니다. 몇 년을 이곳에 드나들었어도 상가에서 옷을 도난당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지난 해에는 유독 옷 도둑이 기승을 부린 듯 여러장의 사진들이 붙어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사진을 ..
2012.05.25 -
직원 검색은 되고 문화재는 검색이 안되는 문화재청 홈페이지
문화재청 홈페이지는 문화재에 관심있는 많은 국민들이 남녀노소 이용하는 곳이다. 특히 문화재에 관심있는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학습교재로 자주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는데 며칠째 검색이 되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통합검색을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계속 'internal sever error"라는 메세지가 뜨면서 검색이 되지 않았다. 자료 검색을 하기 위해서 늘 이용하던 곳이라 짜증이 났지만 곧 되겠지 하면서 참았는데 이틀이 지나도록 통합검색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동대문,남대문,불국사,등 유명 문화재를 검색하려고 해도 뜨지 않는 문화재청 홈페이지......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작위로 직원 검색을 해보니 잘되었다. 요즘 포털사이트나 홈페이지에서 검색 ..
2009.06.24 -
단골 국밥집이 고전하는 이유 알고 보니....
며칠 전 아내와 함께 서울에 갔다. 봄신상품이 나왔다는 말에 올라가는 날 평일이라 차는 밀리지 않았지만 강풍 때문에 차량이 휘청거려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다. 9시 무렵 동대문에 도착해 새벽 2시 무렵 일을 마췄다. 이곳은 화요일이면 일본 중국 대만 등지에서 오는 외국인들이 많아 영어와 일어 중국어 안내방송이 쉬지않고 흘러나왔다. 동대문 운동장이 철거되면서 쫓겨난 노점상인들은 신당동 쪽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찾지 않아 매출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물건을 싣고 남대문에 도착하니 이곳은 동대문과는 분위기가 전혀다르다. 우선 북적거리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대부분 상가들은 문을 닫았고 쟝띠모아,마마아동복, 삼익타운,메사 부르뎅 등 지방사업자에게 도매를 하는 상가도 썰렁하기 이를..
2009.03.23 -
눈물나게 고마운 시골 음식점 아주머니
아내와 함께 서울에 갈 때 마다 들리는 집이 있습니다. 속초에서 서울 가는 길목에 있는 음식점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신남에서 두촌가기 전 백두산 휴게소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시골막국수라는 집이 있습니다. 이 집의 주 메뉴는 막국수와 청국장 그리고 비지장입니다. 이집에 다닌 지도 3년이 넘었는데 그 이유는 아내보다는 내가 더 이 음식점을 좋아한다는 점 때문입니다.처음에는 비지장의 맛에 변해서 지금은 줄곳 청국장만 시켜 먹습니다. 왜냐하면 이집의 청국장이 내게는 약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평소 술을 좋아하는 나는 장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이른바 만성 과민성 대장증세가 있습니다.그래서 늘 약을 먹곤했는데 이집의 청국장을 먹고나면 몰라보게 장이 좋아졌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효과를 금새 느끼니 음식이 아닌..
2009.03.18 -
옷가게 하는 아내가 세일하지 않는 이유
아내가 옷가게를 시작한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아니 처음 시작했던 아동복 가게를 합치면 벌써 15년째다. 내가 가구점을 하다 건강상의 이유로 업종 전환하고 시작한 옷가게는 그야말로 굴곡이 많았다. 처음 시작했던 아동복 대리점이 개업한지 3개월만에 회사의 고의 부도로 막심한 손해를 보고 그때부터 남대문에서 도매로 아동복을 구입해 소매하기 시작했다. 결혼하기 전에 의상실에서 근무했고 패션 감각이 남달랐던 아내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잘 적응했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건물이 팔렸고 계약기간 만료로 가게를 비워주게 되었다.할 수 없이 다른 가게를 알아보게 되었고 지금의 상가 내 점포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전한 뒤에는 아동복을 접고 숙녀복으로 업종을 변경했다.그런데 처음이라 그런지 손..
2009.02.02 -
시장을 방문한 한총리 상인들의 반응은?
어제 아내와 함께 동대문과 남대문으로 물건을 하러 갔었습니다. 구정 전에 한 번은 다녀와야 한다면서 채근해서 다섯 시쯤 떠났는데 중간에 저녁을 먹고 도착한 시간은 오후 8시 무렵이었습니다. 디자이너 클럽 앞에 반품할 물건을 내려놓고 유어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잠시 쉬기 위해 광희시장 건너편 남성 사우나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샤워를 하고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난 시각은 12시 무렵이었습니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가려는데 휴게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들렸습니다. 방금 동대문시장에 한승수 국무총리와 일행들이 이곳을 다녀 갔다고 합니다. 15일 밤 늦게 동대문시장을 찾아 시장 현황을 보고받은 뒤 자정을 넘긴 시간에 남대문으로 이동했다고 한다.설 대목을 앞둔 `장바구니 물가'를 점검하고 상인들을..
2009.01.16 -
난생처음 폭주족과 마주쳐 보니...
동대문과 남대문 새벽시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날은 주차문제 때문에 잠을 설쳐서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졸릴까 염려가 되었다. 동대문 운동장이 사라지면서 그곳에 주차하던 차들이 마땅히 주차할 곳이 없어 도로에 세워 놓았다 딱지를 끊기기 일쑤다. 물건하러 와서 벌써 세번째 주차위반 고지서를 받았다. 요즘 중구청은 기초질서 문란행위를 잡는다며 밤새도록 경찰들이 도로를 지키고 있다. 일요일에도 예외는 없었다. 이리저리 쫓겨다니다 유어스 지하주차장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남대문에는 그나마 주차하기 좀 수월하다 주차장이 많지 않지만 새벽시간에는 무료로 댈곳이 많다. 차를 대고 차안에서 2시간 정도 틈새 잠을 자다 일을 마친 아내와 선지해장국을 먹고 내려가는 길이었다. 동국대 앞을 지나 장충체육관 사거..
2008.12.15 -
쇼핑몰 갔다 삐끼에 위협당한 아들
일요일 아들 얼굴도 보고 시장도 보려고 겸사겸사 서울에 올라갔다. 놀토가 낀 주말이라 그런지 차량이 엄청 밀렸다. 속초에서 서울까지 약 4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사실은 아들이 머물고 있는 고시원에 들러 주인 아주머니도 만나보고 시장을 볼 요량이었는데 차가 밀리는 바람에 아들보고 동대문으로 나오라고 했다. 한 시간 후 친구와 함께 나온 아들과 저녁식사를 하러 청계천 주변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고기가 먹고 싶었는지 메뉴도 보지 않고 대뜸 "돼지갈비 시켜 주세요" 한다. 저녁식사를 먹으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아내가 아들에게 " 참 너 먼저 점퍼하고 구두 미리 봐두었니?" 하고 묻자 아들이 캥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가긴 갔었는데 거기 갔다가 삐끼한테 잡혀서 혼났어...." "아니, 어디를 갔었..
2008.12.15 -
1년전 A/S 맡긴 겨울점퍼 아직도 못 찾았습니다.
다음 달이면 꼬박 1년이 다 되어 간다. 옷을 산 집에 A/S를 맡기고 아직도 못찾은 것이...... 아내와 나는 한 달에 두세번 서울에 물건을 하러 간다. 숙녀복 의류점을 하는 아내를 돕기 위해 운전기사로 자청한 내게 가끔 미안하다며 옷을 사오는 아내 ....그런데 내 스타일이 아닌 너무 젊은 옷을 사와 함께 보고 사기로 했다. 동대문에는 나이든 사람들이 입을 옷이 없어서 남대문에서 점퍼 두 개를 구입했다. 흰색 점퍼 하나와 군청색 점퍼를 구입했는데 집에 와서 입을 때 마다 불편한 점이 있었다. 색상도 마음에 들고 따듯해서 좋은데 한 가지 쟈크가 너무 뻑뻑해서 옷을 입었다 벗을 때 너무나 힘들고 불편했다. 군청색은 괜찮은데 흰색 하프점퍼가 쟈크 불량이라 힘들게 올려서 입고 난 후 벗으려면 툭 타개지는 ..
2008.11.20 -
동대문 지게꾼과의 대화 "요즘 가장 힘들어"
아내와 나는 한 달에 두세번 정도 서울에 간다. 아내를 돕기 위해 운전사로 따라가는 것인데 사실은 어쩔 수 없이 아내를 도울 수 밖에 없는사연이 있다. 4~5년전 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의류점을 하고 있었다. 모두 영세업자였지만 1주일에 관광버스가 두 번 서울을 갈 정도로 장사꾼이 많았는데 조금씩 줄어들더니 한 달에 두 번 가던 관광버스마저 25인승으로 바뀌고 그것마저도 운행이 어려울 정도로 지방의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했다. 버스운송회사는 고유가에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인원이 맞지 않으면 운행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아내의 부탁을 들어주다 보니 이제는 전속 운전사가 되어 버렸다. 함께 가니 아내가 마음이 편해서 좋다고 하고 따라다니며 물건을 들어주니 힘이 들지 않아서 ..
2008.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