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지게꾼과의 대화 "요즘 가장 힘들어"
2008. 11. 19. 08:56ㆍ세상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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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는 한 달에 두세번 정도 서울에 간다. 아내를 돕기 위해 운전사로 따라가는 것인데 사실은 어쩔 수 없이 아내를 도울 수 밖에 없는사연이 있다. 4~5년전 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의류점을 하고 있었다. 모두 영세업자였지만 1주일에 관광버스가 두 번 서울을 갈 정도로 장사꾼이 많았는데 조금씩 줄어들더니 한 달에 두 번 가던 관광버스마저 25인승으로 바뀌고 그것마저도 운행이 어려울 정도로 지방의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했다.
버스운송회사는 고유가에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인원이 맞지 않으면 운행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아내의 부탁을 들어주다 보니 이제는 전속 운전사가 되어 버렸다.
함께 가니 아내가 마음이 편해서 좋다고 하고 따라다니며 물건을 들어주니 힘이 들지 않아서 좋다고 한다.
그렇게 아내의 전속 운전사가 된지가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개인사업을 하다보니 짬을 내서 오후에 갔다 새벽에 떠나 집에 도착하면 보통 7~8시가 되는데 오다가 졸릴 때면 차를 세우고 틈새 잠을 청한다. 그러나 몸은 늘 녹초가 되곤 한다.
어제도 서울에 다녀왔다. 서울에는 겨울 상품을 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아내가 물건을 구입하는 사이 나는 사우나에서 3시간 정도 잠을 잤다. 늘 차에서 잠을 자곤 했는데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차에서 잘 수가 없었다.
히타을 틀어놓고 잠자기가 거북해 차라리 사우나에서 마음놓고 쉬는 것이 편했다.
새벽 한 시에 사우나에서 나와 아내가 봐놓은 물건들을 찾아 물건 보관소에 갖다 놓았다. 겨울옷이라 부피가 커서 물건이 많아 보였다. 아내를 기다리는 사이 상가 앞에 서성거리는 지게꾼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저씨...요즘 경기가 어때요?"
힐끔 쳐다보던 아저씨가 퉁명스럽게 대답을 한다.
"보면 모릅니까?.....일이 없어 놀고 있지 않습니까..."
"시간이 너무 늦어서 한가한 건가요?..."
"지금 시간이 제일 바쁠 땐데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요.."
"경기가 안좋으니 힘들어도 푼돈 아끼려고 그냥 들고 갑니다. "
"4~5년 전만해도 지게꾼들 너무 바빠서 골병든다고 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너무 힘들어 집에 들어가면 녹초가 되곤 했는데 ...오히려 그때가 봄날이었어요...."
"요즘은 한 사람이 4~5만원 손에 쥐기도 힘듭니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기다려도 일거리가 없어요.."
"지방상인들이 올라와 물건 배달을 시켜야 하는데 그것마저 딱 끊겨 버렸어요..."
한번 배달을 하면 얼마나 받으시나요?
"가까운 거리는 한번 가는데 5천원을 받고 좀 먼곳은 7천원을 받습니다."
"경기가 좋으면 사람들이 물건을 가져갈 때 지게꾼을 부르지만 경기가 나쁘면 힘들어도 지게꾼을 부르지 않습니다.."
"요즘은 바퀴달린 가방을 끌고 다니거나 손구르마를 가지고다니며 직접 물건을 나릅니다."
"이곳에서 20년이 넘게 지게꾼으로 살았는데 요즘처럼 힘든 경우는 없었어요.."
"몇 푼 손에 쥐어도 고물가와 고유가 때문에 생활이 되지 않습니다....그렇다고 집에 퍼질러 앉아 있을 수도 없고 나이 육십에 다른 직장을 구할 수도 없으니 죽은 맛입니다..."
동대문이나 남대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는데 매장에서 판매하는 아가씨, 물건을 보관해주는 청년,상가의 주차나 질서 유지를 해주는 젊은 친구들 그리고 물건을 대신 구입해서 보내주는 사입자와 물건을 배달하거나 심부름을 해주고 심부름 할 때 마다 2~3천원씩 받는 사람등 다양한 사람들이 의류상가에서 생활하는데 지방 경기가 안좋으면 바로 직격탄을 맞는 곳이 이곳 의류 상가들이다.
올들어 가장 추운 날씨에 두터운 옷들을 입고도 발을 동동 구르는 지게꾼과 음식을 배달하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빨리 경기가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즉 참고 살아왔는데 꾸역꾸역 참고 살다보면 좋은 날 오겠지요..뭐..."
그래도 희망 한 자락 부여잡고 서 있던 지게꾼의 웃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버스운송회사는 고유가에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인원이 맞지 않으면 운행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아내의 부탁을 들어주다 보니 이제는 전속 운전사가 되어 버렸다.
함께 가니 아내가 마음이 편해서 좋다고 하고 따라다니며 물건을 들어주니 힘이 들지 않아서 좋다고 한다.
그렇게 아내의 전속 운전사가 된지가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개인사업을 하다보니 짬을 내서 오후에 갔다 새벽에 떠나 집에 도착하면 보통 7~8시가 되는데 오다가 졸릴 때면 차를 세우고 틈새 잠을 청한다. 그러나 몸은 늘 녹초가 되곤 한다.
어제도 서울에 다녀왔다. 서울에는 겨울 상품을 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아내가 물건을 구입하는 사이 나는 사우나에서 3시간 정도 잠을 잤다. 늘 차에서 잠을 자곤 했는데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차에서 잘 수가 없었다.
히타을 틀어놓고 잠자기가 거북해 차라리 사우나에서 마음놓고 쉬는 것이 편했다.
새벽 한 시에 사우나에서 나와 아내가 봐놓은 물건들을 찾아 물건 보관소에 갖다 놓았다. 겨울옷이라 부피가 커서 물건이 많아 보였다. 아내를 기다리는 사이 상가 앞에 서성거리는 지게꾼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저씨...요즘 경기가 어때요?"
힐끔 쳐다보던 아저씨가 퉁명스럽게 대답을 한다.
"보면 모릅니까?.....일이 없어 놀고 있지 않습니까..."
"시간이 너무 늦어서 한가한 건가요?..."
"지금 시간이 제일 바쁠 땐데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요.."
"경기가 안좋으니 힘들어도 푼돈 아끼려고 그냥 들고 갑니다. "
"4~5년 전만해도 지게꾼들 너무 바빠서 골병든다고 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너무 힘들어 집에 들어가면 녹초가 되곤 했는데 ...오히려 그때가 봄날이었어요...."
"요즘은 한 사람이 4~5만원 손에 쥐기도 힘듭니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기다려도 일거리가 없어요.."
"지방상인들이 올라와 물건 배달을 시켜야 하는데 그것마저 딱 끊겨 버렸어요..."
한번 배달을 하면 얼마나 받으시나요?
"가까운 거리는 한번 가는데 5천원을 받고 좀 먼곳은 7천원을 받습니다."
"경기가 좋으면 사람들이 물건을 가져갈 때 지게꾼을 부르지만 경기가 나쁘면 힘들어도 지게꾼을 부르지 않습니다.."
"요즘은 바퀴달린 가방을 끌고 다니거나 손구르마를 가지고다니며 직접 물건을 나릅니다."
"이곳에서 20년이 넘게 지게꾼으로 살았는데 요즘처럼 힘든 경우는 없었어요.."
"몇 푼 손에 쥐어도 고물가와 고유가 때문에 생활이 되지 않습니다....그렇다고 집에 퍼질러 앉아 있을 수도 없고 나이 육십에 다른 직장을 구할 수도 없으니 죽은 맛입니다..."
동대문이나 남대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는데 매장에서 판매하는 아가씨, 물건을 보관해주는 청년,상가의 주차나 질서 유지를 해주는 젊은 친구들 그리고 물건을 대신 구입해서 보내주는 사입자와 물건을 배달하거나 심부름을 해주고 심부름 할 때 마다 2~3천원씩 받는 사람등 다양한 사람들이 의류상가에서 생활하는데 지방 경기가 안좋으면 바로 직격탄을 맞는 곳이 이곳 의류 상가들이다.
올들어 가장 추운 날씨에 두터운 옷들을 입고도 발을 동동 구르는 지게꾼과 음식을 배달하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빨리 경기가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즉 참고 살아왔는데 꾸역꾸역 참고 살다보면 좋은 날 오겠지요..뭐..."
그래도 희망 한 자락 부여잡고 서 있던 지게꾼의 웃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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