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감상) 징소리 /문순태

2008. 1. 1. 13:33마음의 양식 독서


1.

방울재 허칠복(許七福)이가 고향을 떠난 지 삼 년 만에 미쳐서 돌아와 징을 두들기며 댐을 막은 뒤부터 밀려드는 낚시꾼들을 쫓아 댔다.

  덩실덩실 춤을 추며 징을 두들기는 칠복이의 모습은 나무탈을 쓴 도깨비 같다고들 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된 것은 고향을 잃은 서러움, 아내를 빼앗긴 원한 때문이라고들 했다.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고향에 여섯 살 난 딸아이를 업고 불쑥 바람처럼 나타난 그는, 물에 잠겨 버린 지 삼 년째가 되는 방울재 뒷동산 각시바위에 댕돌같이 앉아서는, 목이 터져라고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대는가 하면, 혼자서 고개를 끄덕거려 가며 오순도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중얼거리다가도, 불컥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찔러 보고, 창자가 등뼈에 달라붙도록 큰 소리로 웃어대고, 느닷없이 징을 두들기며 겅중겅중 도깨비춤을 추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의 성질이 염병을 앓아 귀머거리가 된 사람처럼 물렁해지고, 바보처럼 느물느물해진 거였다. 황소같이 힘이 세고 성깔이 왁살스럽던 그는, 도깨비 춤추듯 징을 두들기다가도 방울재 사람들이 쫓아와서 한마디만 질러 대도 슬그머니 징채를 감추고 목을 움츠리는 거였다.

  "덕칠아 봉구야, 싸게싸게 갈치배미 나락 베러 가자."

  징 징 징...... 징 징 징......

  칠복이는 징을 치며 장성호(長城湖) 물이 넘칠넘칠 떡갈나무 밑동을 핥아 대는 호숫가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가 징을 치고 겅중거릴 때마다 졸래졸래 아비를 따라다니는 여섯 살 난 그의 딸이 징소리에 맞춰 춤을 추듯 옴죽거렸다.

  구름 한 가닥 없이 청명한 하늘에서는 명주실처럼 윤기 있는 늦가을의 햇볕이 선득선득 꽂혀 내리고 고속도로가 뻗고 산들이 삐끔하게 트인 장성읍 쪽으로 아슴히 보이는 댐 위에서부터 삽상한 바람은 수면을 조리질하듯 천천히 훑어 올라왔다.

  "덕칠이, 봉구, 팔만이 몽땅 뒤졌는겨 살었는겨?"

  칠복이는 부릅뜬 눈으로 호수를 찔러 보며 계속 징을 치고 목청껏 방울재 친구들의 이름을 불렀다.

  호숫가에 띄엄띄엄 한가하게 낚싯줄을 드리운, 얼추 헤아려도 여남은 명이 넘을 것 같은 낚시꾼들은 난데없는 징소리에 벌떡벌떡 일어서서는 울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얼굴로 각시바위 쪽의 칠복이를 꼬나보았다.

  징 징 징...... 징 징 징......

  마치 하늘 어느 한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떼지어 울부짖는 소리와도 같은 징소리는 호수 안통 방울재 골짜기를 샅샅이 줴흔들었다.

   "이봐, 빨리 꺼지지 못해?"

  앙바틈한 체구에 챙이 길쭉한 빨간 운동모자를 비뚜름하게 눌러쓴 낚시꾼 하나가 실팍한 돌멩이를 집어 들고 무섭게 노려보며 소리를 치자, 칠복은 잽싸게 참나무 뒤로 몸을 피하고 잠시 조용해지더니, 이내 다시 징채가 부러지도록 힘껏 휘둘러 댔다. 그때 징소리는 징징징 우는 것이 아니고 와글바글 사뭇 방울재 골짜기의 너덜겅을 호수로 허물어 내리는 듯싶었다.

   "저 미친놈이 끝내 훼방이여!"

  낚시꾼들 대여섯 명이 당장 칠복이를 잡아 물속에 처박을 기세로 각시바위 쪽으로 뛰어 올라갔으나, 칠복이는 참나무를 끼고 이리저리 피하며 잠시도 징채를 멈추지 않았다.

  단숨에 칠복이를 붙잡지 못한 낚시꾼들은 더욱 화가 치밀어 씩씩거렸고, 칠복이는 칠복이대로 신이 나서, 딸아이마저 팽개친 채 두레패 상쇠놀음 하듯 고개까지 까닥거리며 겅중겅중 뛰었다.

  빨간 모자의 낚시꾼이 긴 작대기를 후려치는 바람에, 칠복이는 헉 외마디소리와 함께 아기다복솔 위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작대기에 허리를 얻어맞고 쓰러진 칠복이는 징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가슴에 꼭 안았다.

  칠복이가 꼬꾸라지자 대여섯 명의 낚시꾼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발길로 엉덩이를 걷어차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의 품에서 징을 빼앗으려고 했으나 그는 솔가지에 얼굴을 묻고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올린 채 고슴도치처럼 몸을 도사렸다.

  아비를 따라다니며 징소리에 맞춰 깡총대던 딸아이가 아빠를 부르며 울음을 터뜨리자, 그들은 비로소 발길질을 멎었다.

  "미친 사람이니 용서해 줍쇼!"

  그때, 호숫가에 가건물을 지어 놓고 낚시꾼이나 댐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들을 상대로 술이며 매운탕을 끓여 파는 방울재 남자 셋이 허위허위 뛰어 올라와서 칠복이를 가로막아 서며 사정을 했다.

"아는 사람이우?"

  낚시꾼이 물었다.

  "한마을 사람이구먼유."

  검적검적 점이 많은 얼굴이 발그레하게 술이 오른, 삐쩍 마른 봉구는 연신 허리를 굽적거렸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이란 말이우?"

  "없어졌지라우."

  "없어지다니 뭐가요?"

  "방울재가 없어졌지라우. 몽땅 물에 쟁겨 뿌렸어유. 남은 것이라고는 저 뒷골 감나무뿐인갑네유."

  봉구는 황새처럼 목을 길게 뽑아 그들이 서 있는 발부리 아래, 찰랑찰랑 허리가 물에 잠긴 채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 접시감나무를 가리켰다.

  "그러면 우리가 낚시질하고 있는 여기가 바로 방울재라는 마을이었단 말이우?"

  나이가 지긋하고 턱끝이 도끼날처럼 날캄한 낚시꾼이 흥미가 있다는 말투로 물었다.

  "그렇구먼유. 우리덜 지붕 위에다 낚시를 던지신 거나 마찬가지지유."

  "지붕 위에서 낚시질이라!"

  빨간 모자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선생님들, 이 사람은 우리가 데려갈랍니다요."

  "다시는 여기 못 오게들 허쇼."

  "염려 놓으십쇼. 다리 모갱이를 작씬 분질러 놓겠으니께유."

  방울재 사람들은 왁살스럽게 칠복이의 어깻죽지를 잡아 일으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신들린 사람처럼 겅중대며 징을 두들기던 그 기세는 어디로 숨어 버렸는지, 그는 징을 가슴에 소중하게 두 팔로 꼭 껴안은 채 겁먹은 얼굴로 큰 눈을 뒤룩거렸다.

  "미친 사람은 묶어 둬야 합니다. 에잇 재수 없어!"

  낚시꾼들은 방울재 사람들이 칠복이를 끌고 내려가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다짐을 받고 나서 다시 낚시터에 앉았다.

  "좀 올렸습니까요?"

  칠복이를 끌고 내려간 줄 알았던 빼빼마른 봉구가 빨간 모자 옆에 엉거주춤 무릎을 세워 앉으며 물었다. 그는 기왕 예까지 올라온 김에 매운탕 손님 하나라도 미리 잡아 두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슬그머니 뒤에 처진 거였다.

  "미친놈이 나타나서 훼방을 놓는 바람에 김 팍 새버렸소."

  "옘병헌다고 미쳐 갖고 없어져 뿐진 고향에는 끄덕끄덕 돌어올 꺼유!"

  "고향엔 찾아온 걸 보니 미친 사람인 아닌 게로군요."

  "오락가락혀유."

  봉구는 어룩어룩 때가 묻은 흰 와이셔츠 주머니에서 새마을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잠시 고개를 돌려 주막으로 끌려 내려가는 칠복이의 뒷모습을 보았다.  봉구와 칠복이는 방울재 안에서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였다.  그들은 마을이 없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방울재에서 앞뒷집에 나란히 처마 맞대고 살면서 너냐 나냐 친동기간처럼 가까웠었다.  봉구는 부자였고 칠복이는 가난했지만 봉구는 칠복이 앞에서 조금도 있는 티를 보이지 않았다.

  "저 미친놈이 또 징을 치고 지랄해 싸면 어디 낚시질을 하겠소?"

  "아닙니다유. 그런 염려는 붙들어매십쇼. 앞으로 물가에 얼씬 못 하게 헐 꺼잉께유. 저놈이 날마다 훼방을 치면 낚시꾼들이 안 올 게고, 그라믄 우린 굶어죽을 껀디 그대로 내버려두겠어유?"

  봉구는 입에서 담배를 빼들고 사뭇 흥분한 어조로 다급하게 말했다.

  "왜 미쳤답니까?"

  낚시꾼은 그냥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땜 때문이지라우. 고향을 잃고 도회지로 나갔다가 마누라꺼정 도둑맞고 오장이 회까닥 뒤집혔다고 허드만유."

  "마누라를 도둑맞아요?"

  빨간 모자는 조금씩 깐닥거리는 찌를 향해 시선을 팽팽하게 던지며 물었다.

  "가난흐고 못난 촌놈 마다흐고 잘난 도회짓놈흐고 배가 맞은 거지유. 어이쿠 물었네요. 감잎은 되느만유."

  빨간 모자가 아이들 손바닥만한 붕어를 낚아올리자, 봉구는 빠른 솜씨로 낚싯줄을 잡아 낚시에서 붕어를 빼 구덕에 넣고 입감까지 끼워주었다.

  "그래서 미친 게로군!"

  "고향 잃고 마누라꺼정 뺏겼으니 안 미치게 생겼남유?"

  "미인이었소?"

  낚시꾼은 흥미있다는 듯 피시시 웃음을 머금어 날리며 물었다.

  "촌에 미인이 있간디유? 새끼 하나만 낳으면 철푸턱 엉덩판만 커지고 무신 매력이 있어야지유. 그래도 그 칠복이 여편네는 얼굴도 반반하고 도회지 바람을 묵어서 촌티는 벗었지라우. 칠복이헌티는 좀 과헌 여자지유."

  "마누라 뺏기고 원, 챙피해서 지랄한다고 고향엔 와요?"

  "그러다마다유. 하지만, 오죽했으면 고향에 뭐 볼거 있다고 다시 왔겄남유? 결국 우리덜도 도회지에 나갔다가 발을 못 붙이고 다시 돌아와서 이르케 낚시꾼들 덕으로 살어가고 있습니다만요, 으디 갈 데가 있어야지유. 굶어죽어도 고향 선산에 뼈를 묻어야겠다는 생각 땜시....."

  봉구는 푸우 한숨 섞인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멀고 회한에 가득한 눈으로 산자락 모퉁이 옛날 창평 고씨(昌平 高氏) 제각이 있던, 펀펀한 곳에 즐비하게 늘어선 매운탕집 주막들을 바라보았다. 지난봄까지만 해도 선산을 버리고는 죽어도 방울재를 떠나지 않겠다면서 처음부터 집을 뜯어 옮기고 그대로 눌러앉은 박팔만이네를 제하고, 다섯 집박에 안 되었는데 벌써 열한 집으로 늘어났다.

  새로 생긴 방울재 매운탕집들 앞으로는 아카시아 숲이 휘움하게 울타리처럼 둘러쳐져 있고, 아카시아 숲 너머로는 호남고속도로와 연결되는 좁장한 신작로가 뻗쳐 들어오고, 그 길을 따라 낚시꾼들이 타고 온 자가용차들이 집 둘레 여기저기에 번쩍번쩍 햇빛을 쪼개어 날렸다. 봉구의 눈에는 모든 것이 슬프고 어쭙잖게만 보였다.

  말이 보상금이지, 보상가격을 책정해 놓고도 일이 년 뒤에야 지불을 받고 보니, 이미 인근 농토값은 몇 배로 뛰어올라 대토(代土) 잡기에 어려웠고, 도회지로 나가서 살자 해도 전세방을 얻고 나면 자전거 하나 사기도 힘든지라, 아무 짓도 못 하고 솔래솔래 곶감꼬치 빼먹듯 하다가는 두 손바닥 탈탈 털고 영락없이 알거지가 되고 만 집이 어디 한두 사람인가.

  봉구 그 자신도 보상금 받아 가지고 읍에 나가서 버스정류장 옆에 가게를 얻어 쌀집을 냈으나 어찌 된 셈인지 남는 것은 없고 옴니암니 본전만 까먹게 되어 전셋돈이나마 가까스로 건져 다시 방울재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지붕 위에서 낚시질을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합니다."

  빨간 모자 낚시꾼은 뚜벅뚜벅 곧잘 말을 걸어왔다.

  "사람들꺼정 한꺼븐에 잼겨 뿐 거이 더 마음 아프구먼유."

  "누가 빠져 죽었나요?"

  "죽은 거나 매한가지라우. 수십 년 동안 얼굴 맞대고 정붙이고살아온 방울재 사람들을 시방 어디에 가서 찾을 겁니까유. 살아 남은 사람들은 몇 집 안 되지라우."

  "예끼 여보슈, 난 또 무슨 소리라구!"

  "선생님들은 우리 속 몰라유."

  "땜이 원망스럽겠군요."

  "으째서유?"

  "고향을 삼켜 버렸으니까요."

  "워디가유. 아무리 배우지 못혔어도 우리가 그러키 앞뒤 꽉 맥힌 멍충이들이란가유? 땜이 생겨서 많은 농민들이 가뭄 모르고 농사 잘 짓는 거이 을매나 잘헌 일인가유? 우리도 그 정도는 압니다유."

  "그렇다면 됐습니다."

  "그래도 고향이 없어져 뿔고 정든 사람들이 뿔뿔이 풍지박산되야 뿐졌는디 으찌."

  "딱하게 됐습니다."

  "그라니께 우리는 뿌리 없는 나무여라우. 우리헌티 땅이 있소, 기술이 있소?"

  빨간 모자가 대꾸를 해주지 않자, 봉구는 고개를 들어 다시 매운탕 집들 위로 내리뻗은 고속도로를 바라보았다. 자동차들이 바람처럼 쌩쌩 내달았다.



2

  호수 위에 검실검실 어둠이 내렸다. 호수를 한아름 보듬은 산 그림자가 칙칙하게 내려앉기 시작하면서 하늘의 구름들이 낮게 흐르더니 바람이 드세어지고 수면이 거칠어졌다.

  어둠이 두꺼워지고 바람이 거칠어지자 낚시꾼들은 하나 둘 돌아가버렸다.

  어둠이 무겁게 찌누르는 호수에는 휘휘 하고 음산한 그림자들이 일렁이는 듯싶었다. 마치 방울재 사람들의 그림자 같았다.

  칠복이는 조금 전 빨간 모자 낚시꾼이 앉았던 자리에 무릎을 세우고 두 손바닥으로 턱을 받쳐 들고 앉아서 우두커니 수면 위에 우줄거리는 칙칙하고 휘휘한 그림자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딸아이가 두 팔로 아비의 세운 무릎을 껴안고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호수에서 사각사각 나락 베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말소리도 들렸다. 방울재와 방울재 사람들의 모습이 한눈에 죄 보였다. 금줄을 두른 마을 앞 윗당산의 늙은 팽나무와, 방울재에서는 칠복이 혼자만이 들어올린 큰 들독이 보였고, 이엉을 입힌 돌담과 판놀이네 탱자나무 울타리, 군데군데 말라붙은 쇠똥이 널린 고샅들, 빨간 고추가 널린 초가지붕이며, 두껍다리 옆 그의 집도 보였다. 외양간에 매여 있는 송아지가 음매 하고 우는 소리, 꿀꿀대는 돼지, 꼬꼬댁꼬꼬닭이 알 낳는 소리, 바람 모퉁이 공터에서 아이들이 공치기를 하며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시끌시끌한 소리, 고샅이 쩡쩡 울리도록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소리, 이 자식 저 자식 죽일 놈 살릴 놈 욕을 퍼부어대며 싸우는 소리들이 귀에 쟁쟁하게 들려 왔다.

  발그무레하게 꽃이 핀 살구나무 가지들 사이로 훨쩍 열린 순덕이네 싸리문과 살구꽃처럼 환한 순덕이의 탐스러운 얼굴도 보였다. 순덕이와 함께 만나곤 했던 상엿집 모퉁이의 아카시아 숲속에서는 그때처럼 휘휘한 바람 소리가 들려 왔다.

  "아빠 추워, 집에 가아."

  딸아이가 몸을 웅숭그리며 칭얼대자 그는 무릎을 열어 가랑이 사이에 넣고 꼭 안았다.

  칠복이는 갈 곳이 없었다. 호수 속에 그의 집이 보였으나 물에 뛰어들 수가 없었다.

  "저기 물 속에 우리집이 뵈이쟈?"

  칠복이는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피이, 우리집이 어딨어?"

  "저어기, 물 속에. 바보야 우리집도 안 봬?"

  "이잉 엄마아....."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벼락 맞어 뒈질 년!"

  그는 아내의 골통을 박살내기라도 하려는 듯 큰 돌을 집어 호수에 던졌다. 풍덩 하는 소리에 딸아이가 흠칠 놀랐다.

  "이잉, 엄마한테 간다고 해놓고....."

  "그래그래, 네 엄마는 저기 물 속에 있다. 물 속에 있는 엄마한테 갈래?"

  칠복이는 버럭 고함을 지르며 딸을 떠밀어 내려고 겁을 주자 아앙 큰 소리로 울어댔다.

  "개만도 못한 녀언......"

  그는 고개를 뒤로 젖버듬히 잦혀 별도 없이 시꺼먼 하늘을 쳐다보며 퍼허 하고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토해 내고 나서 다시 물에 잠긴 방울재를 내려다보았다.

  족두리를 쓰고 원삼을 입은 순덕이의 모습이 보였다. 청실홍실을 드리운 합환주를 입에 댈 때 순덕이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신랑인 칠복이를 훔쳐보면서 다른 사람이 눈치 안 채도록 싱긋이 웃어 보일 수 있을 만큼 여유를 보여 주었다.

  삼 년 동안 식모살이를 하면서 도시 바람을 쐰 때문인지, 순덕이는 시골 처녀답지 않게 바라지고 슬거운 데가 있었다. 그런 순덕이를 방울재 칠복이 친구들은 너무 화딱 까졌다거니, 생긴 게 맷맷하여 어딘가 온전치 못한 여자라거니 하며 칠복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녀를 헐뜯고 은근히 훼방을 놓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칠복이 생각은 그렇지가 않았다. 매사에 생각이나 행동거지가 굼뜨고 사리가 분명한 순덕이가 꼭 필요했다.

  결혼을 한 지 한 달도 못 되어 순덕이는 도회지로 나가서 살자고 하였다. 그 말에 칠복은 섬찟한 무서움을 느꼈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마저 병으로 죽어, 외할머니 치맛자락에 가려 눈칫밥 먹고 자라서 장가를 들 때까지, 방울재에서 삼십 리도 못 떨어진 정읍장과, 징병신체검사할 때 읍에 갔다 온 일 외에는 여지껏 대처 바람을 한 번도 마셔 보지 못한 그로서는 도회지에 나가 산다는 것은 마치 방울재 개울의 미꾸라지를 목포 앞바다에 넣는 것이나 진배없는 일인지라, 그 말을 들을 땐 가슴이 울렁거리고 눈앞이 캄캄했던 거였다.

  "전답도 없이 이런 촌구석에서 멀 바라고 사꺼시요."

  순덕이는 입버릇처럼 이렇게 되뇌곤 했었다.

  "우리도 논밭을 장만하면 될 거 아닌감."

  칠복이 생각에, 그녀가 한사코 도회지로 나가 살자고 한 것은 그녀 말마따나 전답이 없는 탓이라고 헤아리고, 뼈가 으스러지도록 밤낮을 안 가리고 일을 했다. 외가에서 장성하도록 머슴 노릇을 하다시피 해 주었는데도 외숙부는 그가 장가들자 겨우 개다리 초가삼간에, 방울재 큰애기들이 하룻밤 오줌만 싸질러 대도 새끼내가 넘치고 물난리가 나서 농사를 망친다는 하천부지 자갈논 일곱 되지기를 떼어 주었을 뿐이었다.

  "십 년 안에 방울재에서 일등 가는 부자가 될 꺼잉께 두고 보드라고잉."

  칠복이는 외양간과 돼지우리를 지어 해마다 배냇소를 기르고 힘에 부치도록 고지품을 빌려, 결혼한 지 삼 년 만에 문서 없는 하천부지 자갈논 서 마지기를 사들였다. 그대로만 간다면 그의 장담대로 십 년 안으로 방울재 일등 부자는 안 되어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 포실하게 전답을 마련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던 차에, 방울재에 댐을 막아 전답이 몽땅 물에 잠기게 된다는 것을 안 칠복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람 하나쯤 죽인다 해도 가슴을 꽉 메운 불덩이 같은 응어리가 없어질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랑게 머이라고 합뎌. 우리는 방울재에서 살 팔자가 못 된 거 아니오. 끙끙대 쌓지만 말고 언능 도회지로 나갑시다."

  칠복이의 매지매지 오장육부가 무클하게 녹아내리는 속마음을 알 턱이 없는 순덕이는 얼씨구나 싶은 얼굴로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홧김에 서방질하더라고, 칠복이는 문서 없는 전답에 대해서는 보상 한품 못 받은 채 광주시로 옮겨가, 임업시험장 옆 산동네 꼭대기에 쥐구멍만한 사글셋방을 얻어 들었다.

  낯짝이 좋은 아내는 방울재를 떠나온 날부터 신바람나게 싸대 쌓더니, 사흘 만엔가 큰 식당 주방에서 일을 하게 되었으며 날마다 새벽같이 집을 나가서는 통금시간이 다 되어서야 돌아오곤 했다.

  칠복이는 밤낮 방구석에서 딸아이와 노닥거릴 수만도 없기에 일자리를 찾아다녀 보았지만, 찾아가는 곳마다 무슨 기술이 있느냐는 물음이었고, 그때마다 그는 농사짓는 기술뿐이라고 부끄럼 없이 대답해 주곤 했다.

  "농사짓는 기술도 기술이우? 차라리 마누라 배 타는 기술이 있다고 그러슈 원!"

  칠복이의 부끄럼 없는 대답에 그들은 기분 나쁘게 킬킬대고 웃어댔다.

  그는 막일이라도 해보려고 새벽마다 양동 큰다리께 품팔이시장에 나가보았지만 팔려 나가는 것은 언제나 미장이, 도배장이, 타일공 따위의 경험이 있는 기술자들이고, 해가 머리 위에 벌겋게 떠오르도록 남는 것은 칠복이와 같은 무거리들뿐이었다. 그런대로 지난 가을까지는 재수가 있는 날이면 질통꾼이나, 목도꾼, 모래와 자갈을 창서 부리는 일 등 기술 없이 뚝심으로 하는 일에 간단히 팔려 나다니기도 했었는데, 날씨가 쌀쌀해지면서부터는 도무지 막일꾼 구하는 사람도 없어, 긴 겨울을 콧구멍만한 방에서 늙은 곰 겨울잠 자듯 처박혀 살았다.

  칠복이는 아내가 벌어다 준 돈으로 가만히 앉아서 몸 편하게 살면서도 방울재의 봉구네 사랑방을 못 잊어 자나깨나 풀이 죽어 있었는데, 아내는 무슨 좋은 일이 그리 많은지 하루하루 얼굴에 생기가 돌고 새벽에 집을 나갈 때는 그 주제꼴에 얼굴 토닥거리며 화장을 하고 미장원에 들락거리며 모양을 내는 데 유난을 떠는 것 같았다.

  봄이 오자 칠복이는 양동 품팔이시장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혼자서 고향인 장성으로 돌아가, 수몰이 안 된 가까운 마을에서 모내기 일을 해 주었다. 농사철이라 농촌에서는 하루도 쉴새없이 바빠서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었으며, 방울재 사람들이나 방울재 사람들의 친척들이 더러 있어서 그런지, 도회지에서 막일하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해서 좋았다.

  광주에서는 도회지의 찌꺼기가 된 듯싶어 집 밖에 나가기가 그렇게도 부끄럽고 무서웠었는데, 비록 방울재는 아니지만 산과 들이며 하늘, 나무 한 그루 풀이파리 하나까지도 낯익어 조금도 뜨아하거나 부끄러운 마음이 없었다.

  칠복이는 장성댐 아랫마을에서 모내기 한철 농사일을 하고, 다시 여름에는 장성읍 과수원에서 살충제도 뿌리고 사과며 복숭아도 따주어 이십만 원을 손에 쥐고 광주로 돌아왔다. 그는 아내를 설득해서 방울재는 없어졌더라도 다시 시골로 들어갈 결심이었다. 생각지도 않게 시골에는 그런대로 일거리가 많았고, 댐 아랫마을 노루목에 머슴으로 들어가면 소작논 다섯 마지기를 떼어 주고 식구들이 따로 한집에서 살 수 있게 문간채를 내어 주겠다는 집도 있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아내와 같이 다시 시골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내가 끝까지 싫다고 한다면 코뚜레를 뚫어서라도 끌고 가야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공글리며, 아내가 기다리고 있을 광주로 가기 위해 마지막 밤버스를 탔다.

  시골에 돈벌이를 하러 내려간 뒤에 한 달에 한두 차례씩 잠깐잠깐 아내와 딸아이 얼굴을 보고 오긴 했으나, 식구들 데리고 다시 시골로 돌아갈 가슴 부푼 생각 때문인지 여느 때와는 달리 쿵덕쿵덕 심장이 마구 뛰었다.

  버스에서 내린 칠복이는 큰맘 먹고 사과 한 꾸러미와 저육 한 칼을 떠서 달랑달랑 들고 산동네를 향해 마음 졸이며 숨가쁘게 내달았다.

  그는 아내가 식당에서 집에 돌아올 시간과 맞추기 위해 일부러 느지막이 밤버스를 탄 거였다. 합동주차장에 내려 대합실 시계를 보았더니 아내가 돌아오기는 약간 이른 것 같아 식당으로 찾아가서 같이 들어갈까 하다가, 아내가 먼저 집에 올라온 다음에 슬그머니 밤손님처럼 들어가 깜짝 놀래 주려고 지싯지싯 늑장을 부렸던 거다.

  산동네 꼭대기까지 허위허위 단숨에 추어 올라간 칠복은 잠시 집앞에서 미적거리다가 까치발을 하고 손을 넣어 소리 안 나게 판자 대문을 따고 살금살금 그들이 세들어 살고 있는 작두샘 가에 있는 방쪽으로 갔다. 불이 꺼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아내가 돌아오지 않았거나, 아니면 벌써 돌아와 잠을 청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칠복이는 일부러 뒷문으로 가서 살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가 더듬더듬 천장을 더듬어 때걱 전기 스위치를 돌렸다. 방에 불이 켜지는 순간, 칠복이의 눈이 확 뒤집히면서 앞이 깜깜해져 버렸다. 분명 그의 아내 임순덕이 외간 남자와 발가벗은 채 한덩어리가 되어 있지 않겠는가. 이 장면을 보는 순간 그는 하늘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놀라움과 울분으로 온몸이 떨리면서 피가 뚝 멎어 버리는 것만 같았다.

  아내와 남자가 펄떡 놀라 일어나 앉는 것과 함께 칠복이는 우르르 부엌으로 뛰어나갔다. 헉헉 숨을 몰아쉬며 식칼을 들고 다시 방으로 뛰어들어왔을 때 아내와 남자는 이미 방 안에 없었다. 신을 꿸 결를도 없이 판자문을 박차고 골목까지 뛰어나갔으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칠복이는 눈이 뒤집혀 식칼을 들고 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니다가 경찰에 붙들려 경찰서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까지 했는데, 보호실에 갇힌 그는 이미 정신이 온전하지가 못해 더럭더럭 고함을 지르고 길길이 뛰었다.

  다음날 산동네에 돌아와 보니 딸아이 혼자 집 밖에서 발을 뻗고 얼굴에 흙범벅이 된 채 목이 쉬도록 울고 있었다. 그날부터 칠복이는 딸아이를 등에 업고 아내를 찾아 나섰다. 식당에도 가보았지만 그날밤 이후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같이 도망친 남자가 누구인가도 알 길이 없었다. 아내를 찾다가 지친 그는 이제라도 돌아와 주기만 한다면 용서를 해줄 생각이었다. 아내가 그렇게 된 것은 모두 칠복이 자기 탓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못났기 때문에 아내가 식당에 나가게 된 것부터가 잘못이 아니겠는가 싶었다.

  아내를 찾아다니느라고 시골에서 벌어 온 돈마저 모두 깨먹어 버리고, 얼마 안 남은 산동네 사글셋방값마저 찾아 쓴 칠복이는, 방울재에서 나올 때 나눠 가진 굿물인 징 하나만을 들고 거렁뱅이 신세가 되어 떠돌음했다.

  칠복이는 거렁뱅이 신세가 되어 떠돌음하면서도 방울재에서 가지고 나온 징을 마치 그의 딸아이만큼이나 애지중지하였으며, 밤에 잠을 잘 때는 꼭 그 징을 베고 잤다. 그런데 그 징을 베고 잘 때마다 이상하게 그 징에서는 마치 방울재 할미산 너덜겅이 와르르 허물어지면 방울재 사람들의 한 사람 한 사람 우는 소리가 아슴하게 흐느껴오곤 했다.

  그때마다 방울재에 살던 시절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칠복이는 징에서 고향 사람들이 그를 오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들은 뒤 딸아이를 업고 꼬박 하루를 걸어 방울재에 닿았다.

  "아빠, 배고파잉....."

잠이 든 줄로만 알았던 딸아이가 부스럭부스럭 상반신을 출썩거리며 칭얼대기 시작했다.

  "천벌을 받을 녀언....."

  칠복이는 다시 돌멩이를 집어 호수에 던지며 욕을 퍼부어 댔다.

  "아빠... 배고파아."

  "그려그려, 마을로 내려가자."

  칠복이는 딸을 업고 일어서며 별 없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따금씩 빗방울이 얼굴에 떨어졌으나, 그때마다 그의 정신은 더욱 맑아졌고, 정신이 맑아질수록 고향과 아내를 잃어버린 큰 슬픔이 목울대에 꽉 차올랐다.

  "우리집으로 가아....."

  "우리집? 물 속에 있는 집으로?"

  "아빤 늘 그 소리뿐이네!"

  "그러믄 어떤 지 말이냐?"

  "순자네 집 같은 거!"

  순자는 봉구의 딸이다.

  "그래 그러믄 순자네 집으로 가자."

  "순자네말고, 우리집으로 가아....."

  "바보 멍충아, 이 세상이 다 우리집이라고 생각혀!"

  칠복이는 딸아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며 검정 우단에 보석 몇 알이 흩어진 듯 불빛이 반짝이는 매운탕집들 쪽으로 내려갔다. 바람이 드세고 빗방울까지 비쳐 밤낚시꾼들은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칠복이가 후미진 솔수펑 모퉁이를 돌아 불빛이 출렁이는 매운탕집들 가까이 왔을 때 빗방울이 후두둑 떡갈나무 잎들을 요란하게 두들겼다.

    3

  봉구네 집에는 매운탕집을 하는 방울재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그들은 장사가 안 되는 날이면, 옛날 방울재 윗당산머리 봉구네 사랑방에 모여 놀던 버릇대로 밤만되면 찾아왔다.

  하나, 이날 밤 모임은 좀 달랐다. 이날 밤에는 칠복이 문제로 모인 것이었다.

  "당장 쫓아버려야 혀. 옛정도 좋지만 살과 봐야 헐 꺼이 아닌감!"

  올봄에, 혼기가 다 찬 두 딸과 중풍에 걸려 기동을 못하는 병든 아내를 끌고 방울재로 다시 돌아온, 회갑줄에 앉은 강촌영감이 아까부터 와락와락 성깔을 부려 가며 큰소리였다.

  "차마 워치크롬 쫓아낼 거여."

  봉구였다. 옛날에 위아랫집에서 처마 맞대고 살아온 정 때문에, 강촌영감의 의견에 찬성을 하지 못했다.

  "봉구 말도 일리가 있재잉. 고향에 찾아온 사람을 워치기 쫓아낼거요잉."

  덕칠이도 칠복이와 가깝게 지내 왔던 터라, 쫓아내자는 데에는 어딘가 마음이 꺼림칙했다.

  "제정신 갖고, 먹고 살겄다고 헌담사 워떤 무지막지헌 놈이 고향 찾어온 사람을 쫓아내자고 허겄어?"

  "암, 그러고 마니!"

  "옴짝달싹 못허게 묶어 놓으면 으쩌겄소?"

  덕칠이였다. 그는 봉구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묶어 놓으면 징을 치고 지랄염병은 안 헐 거 아닌고?"

  "자석이 말짱헐 때는 암시랑 안 허다가도 날씨만 꾸무럭헐라치면 발광이니...."

  "그랑께 미쳤재."

  "오늘 낮에도 나헌티 찾아와서는 여편네 찾으러 가겄담서 새끼를 좀 맡어 달라고 허등만."

  "그럴 때는 제정신이 든겨."

  "좌우당간에 낚시터에서 미친놈이 징 치고 훼방친다는 소문이 나면 낚시꾼이 얼씬도 안 헐 거고, 그렇게 됨사 우리는 굶어죽는거 아닌가."

  강촌영감은 칠복일 쫓아내자는 의견을 조금도 꺾지 않았다.

  "그눔에 징을 뺏어서 물 속에 던져 베리까?"

  "그러다 살인나게?"

  아무도 칠복이에게서 징을 빼앗지는 못했다. 며칠 전에도 그가 낚시꾼들 사이를 강변 덴 소 날뛰듯 하며 징을 두들기고 소리소리 질러, 방울재 사람들이 몰려가서 징을 빼앗아 감춰 버렸었는데, 그때 칠복이는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쇠스랑을 휘두르며 징을 내놓지 않으면 찍어 죽이겠다고 어찌나 무섭게 어우르는 바람에 슬그머니 두엄자리 속에 감춰둔 것을 꺼내 주지 않았던가.

  "병신 같은 놈, 제 여편네 단속을 그렇게 잘했더라면 뺏기지 않았을 것잉만!"

  봉구는 램프불 주위에 새까맣게 달라붙은 벌레들을 멀뚱히 바라보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걱정이 되어 한마디 뱉는다.

  "오늘 밤에 당장 쫓아 베려!"

  강촌영감이 벌떡 일어나서 큰 소리로 내질렀다.

  "쫓아낸다고 갈 놈이우?"

  "안 가겠다고 버티면 어쩔 거유."

  덕칠이는 친구 된 입장이라, 참으로 난감하여 딱부러지게 매듭을 짓지 못하고 봉구의 눈치만을 살피는 듯싶었는데, 봉구 역시 강촌영감 말대로 당장 쫓아내자는 말을 못하고 지싯지싯 말꼬리를 흐렸다.

  "끌고 가서 차에 태워 보내 베려. 안 가겠다면 꽁꽁 묶어서 버스에 태우면 될 거 아니라고!"

  강촌 영감의 말에 모두들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조금 있으면 잠자리 찾어올 테니께, 그때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쫓아 베리는 거여!"

  이때 칠복이가 아이를 등에 업고 고개를 길쭉하게 빼어 내밀어 봉구네 술청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 부녀는 비를 맞아 머리칼이 능수버드나무처럼 휘주근하게 젖어 있었다.

  "다들 여기 있었구만. 그러고 보니 옛날 봉구네 사랑방 친구들은 다 모였네그려."

  칠복이는 아이를 평상에 내려놓고 손으로 머리의 빗방울을 훔쳐 뿌리며 반가운 얼굴로 두렷두렷 주위 사람들을 살폈다. 모두들 아무 말도 없이 칠복이만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어이 봉구, 우리 딸내미 식은밥 한 덩이 주소. 뱃속에 왕거지가 들앉았는지 쥐창시만헌 것이 밤낮 처묵어도 배가 고프다고 지랄이니!"

  칠복이는 바보처럼 벌룸벌룸 이를 드러내놓고 웃으며 스스럼없이 봉구에게 한마디 던지고는, 평상 모서리에 철부덕 걸터앉아 소맷자락으로 촉촉하게 젖은 머리털을 닦고 문질렀다.

  "칠복이 나 좀 보세!"

  강촌영감이 시비투의 가시걸린 목소리로 칠복이를 불렀다. 칠복이는 버릇대로 벌쭉 웃으며 강촌영감 쪽으로 얼굴을 돌렸고, 봉구와 덕칠이는 강촌영감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 터라, 고개를 돌려 외면하려고 하였다.

  "저 불렀어유?"

  "자네 말이시, 우리가 이러고라도 묵고 사는 거이 배가 아픈가?"

  "영감님....."

  봉구가 강촌영감의 옆구리를 찔벅거리며 심한 말을 막으려고 했다.

  그 사이 까무잡잡한 얼굴에 광대뼈가 유난히 툭 불거진 봉구 아내가 결코 달갑잖은 얼굴로 칠복이 부녀의 상을 내왔는데, 그래도 밥그릇이 무춤하고 반찬도 자기네 식구들 먹는 그대로였다.

  "칠복이 자네는 정신이 멀쩡헐 때는 방울재 사람이 영락없는디, 정신이 나가면 꼭 옛날 우리 마을에 불두더지(불도저) 들이댄 공사판 사람 같당께로."

  강촌영감의 말에 칠복이는 왕방울눈을 꿈벅거릴 뿐이었다.

  "어차피 고향이 없어졌는디, 고향 사람이라고 있겄는가? 자네 입장은 딱허지만두루 어쩔 수 없어."

  강촌영감은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괴로운 얼굴로 고개를 돌려 버린 채 말이 없었다.

  "옘병헌다고 낚시질허는 디 가서 징을 치고 지랄여!"

  마지못해 봉구는 혼자말처럼 입 안에서만 웅얼웅얼할 뿐이었다.

  "당장 오늘 밤에 떠나게!"

  "오늘 밤에유?"

  칠복이는 뒤룩거리는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얼굴로 강촌영감과 친구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매정헌 사람이라고 헐지 모르재만, 오늘 밤 우리덜 정을 싹둑 짝두질허는 수밖에 도리가 없네."

  강촌영감도 내심은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것만큼이나 괴로웠다. 그는 말을 하면서 연신 담배를 삐억삐억 빨아댔다.

  "괜시리 없어진 고향 짝사랑허지 말어. 고향이고 여편네고 잊어뿔 건 냉큼 잊어뿌리야 살기가 쉬워!"

  "강촌영감님, 부탁입니다유. 지발 쫓아내지만 마셔유. 다시는 훼방치지 않겠구먼유. 이렇게 빌께유."

  칠복이는 우르르 강촌영감에게로 달라붙어 어깻죽지며 팔을 붙들고 애원하다가는 그대로 땅에 무릎을 꿇고 비대발괄 빌어대는 게 아닌가.

  이 모습을 본 봉구와 덕칠이, 강촌영감까지도 목울대에 모닥불이 타오르면서 시울이 시큰시큰했다.

  "안 가겠다면 덕석몰이를 혀서라도 내쫓을 꺼여!"

  강촌영감은 담배 연기를 허공에 토해 내며 결연히 말했다.

  "봉구, 덕칠이, 팔만이 나를 내쫓지 말어. 고향에서 내쫓기면 워디로 갈 것인감. 이보게덜 내 사정 좀 봐줘!"

  칠복이는 무릎을 꿇은 채 친구들의 아랫도리를 두 팔로 덥썩 껴안으며 통사정을 해보았으나 그들 방울재 친구들은 도시 말이 없었다.

  칠복이는 소리 내어 울고 싶었으나 이를 응등물고 참아 냈다. 강촌영감의 말마따나 고향이 없어져 버린 판국에 고향 사람인들 남아 있을 리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칠복이 자신이 참 알 수 없는 일은 때때로 그의 눈에 방울재와 방울재의 옛 사람들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이면서, 그가 영락없이 방울재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살고 있는 환각에 정신을 가늠할 수 없게 된 거였다. 방울재를 삼킨 호수의 물도 거대한 댐도 보이지 않고 낯익은 하늘, 반갑게 맞아 주는 마을 사람들만이 눈에 가득 들어오고, 그럴 때는 정월 대보름날 밤 메기굿을 할 때처럼 어깨가 들썩거리면서 겅중겅중 춤을 추고 싶어져 징을 찾아 들고 나서는 거였다.

  그러다가 온몸이 흠뻑 땀에 젖은 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방울재와 낯익은 사람들은 온데간데없고 호수의 물만이 그를 삼킬 듯 넘실거리고 댐은 더욱 하늘 닿게 높아지는 듯싶었다.

  "자네 정신 말짱허니께 허는 소리네만 좋은 얼굴로 헤어지세. 지발 부탁이니 지금 떠나도록 히여."

  강촌영감이 볼멘소리로, 그러나 약간은 사정조로 말하고 나서 칠복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일으키려고 했다.

  "낼 아침 떠나라 허고 싶네만, 정은 단칼에 자르는 거이 좋은겨."

  칠복이는 아이를 어고 천천히 일어서서 희끄무레한 램프 불빛에 비춰보이는 침울하게 가라앉은 마을 사람들의 얼굴들을 하나하나 가슴속 깊이깊이 새기며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의 눈에서는 금방 눈물이 소나기처럼 주르륵 쏟아질 것만 같았다.

  "핑 서둘러 나가면 광주 나가는 버스를 탈 꺼여!"

  강촌영감이 앞서 술청을 나가며 하는 말이다. 강촌영감을 따라 칠복이가 고개를 떨구고 나갔고, 뒤이어 봉구와 덕칠이, 팔만이가 차례로 몸을 움직였다.

  봉구네 주막에서 나온 그들은 칠복이를 앞세우고 미루나무가 두 줄로 가지런히 비를 맞고 늘어서 있는 자갈길 구신작로를 향해 어둠 속을 걸었다. 그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칠복이의 등에 업힌 그의 딸아이가 캘록캘록 기침을 하자, 바짝 뒤를 따르던 봉구가 잠바를 벗어 덮어씌워 주었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졌고 호수를 훑고 온 물에 젖은 가을 바람에 으스스 몸이 떨렸다.

이따금씩 고속도로에서 자동차들이 헤드라이트로 눅눅한 어둠의 이 구석 저 구석을 쿡쿡 쑤셔 대는 바람처럼 내달았다. 자동차의 불빛이 길게 어둠을 가를 때마다 칠복이를 앞세우고 걷는 방울재 사람들의 가슴이 마치 총을 맞는 것만큼이나 섬찟섬찟했다.

  신작로에 당도해서 조금 기다리자 읍으로 들어가는 헌털뱅이 버스가 왔으며, 그들은 서둘러 차를 세우고 칠복이를 밀어넣었다.

  "징헌 고향 다시는 오지 말어."

  봉구가 천 원짜리 두 장을 칠복이의 호주머니에 푹 쑤셔넣어 주며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칠복이가 무슨 말인가 하는 것 같았으나 부르릉 버스가 굴러가는 바람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들은 버스가 어둠 속에 묻히고 자동차 불빛이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말없이 돌아섰다.

  한사코 가기 싫다는 칠복이 부녀를 억지로 버스에 태워 쫓아보낸 그날 밤, 방울재 사람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후두둑후두둑 빗방울이 굵어지고 땅껍질 벗겨 가는 소리가 드세어질 무렵, 봉구는 잠결에 아슴푸레하게 들려오는 징소리에 퍼뜩 놀라 일어나 앉았다.

  "아니, 이 밤중에 무신 징소리당가?"

  그는 마른기침을 토해 내고 삐그덕 방문을 열어, 송곳 하나 박을 틈도 없이 꽉 들어찬 어둠의 여기저기를 쑤석여 보았다. 어둠 속 어디선가 딸을 업은 칠복이가 휘주근하게 비에 젖은 채 바보처럼 벌쭉벌쭉 웃으면서 불쑥 나타날 것만 같았다.

  그는 문을 안으로 걸어잠그고 자리에 들어 아내의 툽상스러운 허리를 꼭 껴안고 잠을 청하려고 했으나, 땅껍질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사이사이로, 징소리가 쉬지 않고 큰 황소 울음처럼 사납고도 구슬프게 들려 왔기 때문에 잠시도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어쩌면 바람 소리와도 같은 그 징소리는 바로 뒤란의 아카시아 숲께에서 가깝게 들린 것 같다가도 다시 댐 쪽으로 아슴푸레 멀어져 가곤 했다.

  "바람소린지, 징소린지."

  봉구는 벌떡 일어나 더듬더듬 담배를 찾아 성냥불을 붙였다. 그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몇 번인가 누웠다 앉았다 하며 담배만 피웠다. 자꾸만 귓바퀴를 후벼파고 들려오는 징소리가 오목가슴 깊숙이에 가시처럼 걸린 때문이었다.

  이날 밤, 팔만이도, 덕칠이도, 강촌영감도 다 같이 방울재 안통 여기저기서 쉴새없이 들려오는 징소리 때문에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징소는 점점 더 가깝게, 그리고 때로는 상여 소리처럼 슬프게 들렸는데, 그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한 방울재 사람들은, 그게 어쩌면 그들한테 쫓겨난 칠복이의 우는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들을 다 같이 했다. 그 생각과 함께 징소리가 더욱 무서워졌으며 아침을 맞기조차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