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긴 두 아주머니의 별명 알고 보니 큰 아픔이......

2012. 2. 9. 06:00세상 사는 이야기

갑작스런 아내의 호출

몇 주전의 일이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의류점을 하는 아내로 부터 긴급한 호출 신호가 왔다.
아침까지 멀쩡하던 라디에이터가 고장이 났는지 추워서 견딜 수가 없다는 전화에 부리나케 달려갔다.
가게에 도착하니 평소에 안면이 있던 아주머니 한 분과 아내가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고 있었다.

6년 동안 사용하던 라디에이터가 고장나 지난해 말 새로 구입한 것이 벌써 고장났을리 없다는 생각에 이곳 저곳 살피다 보니 타이머 설정 스위치를 잘못 눌러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과 다르게 요즘은 타이머 설정만 해놓으면 저절로 켜지고 꺼지는 기능이 있는데 그것을 잘못 만져 전원이 나간 것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늘상 아내가 부탁하는 일들은 고장이라기 보다는 사용법을 몰라서 그런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점을 익히 알기에 아내는 A/S 기사를 부르기 전 먼저 나에게 부탁을 하곤 한다.
라디에이터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고 사무실로 가려는데 고맙다며 아내가 커피를 한 잔을 건냈다.


딱개와 빈궁마마의 만남.....

숙녀복을 파는 곳이라 오래 있으면 손님들이 불편할까 급히 뜨거운 커피를 다 마셨을 때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그런데 아내와 함께 있던 아주머니가 그분과 친한 듯 먼저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 아이고 빈궁마마 이제야 나오십니까?.."
"그래 딱개야 잘 있었니!....."
순간 그만 입에 머금고 있던 커피를 내뱉을 뻔 했다.
나이도 지긋하신 분들이 진지하게 별명을 부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픈 과거가 녹아 있는 두 아주머니의 별명.....

그런데 퇴근 후 아내에게서 들은 두 아주머니 이야기 속에는 너무도 큰 아픔이 있었다.
딱개라고 불리던 아주머니는 평생을 아파트나 콘도 상가를 가리지 않고 청소를 다녔는데 너무나 깨끗하게 잘 닦아 함께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딱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혼자 아이 둘 대학 졸업시키느라 한시도 쉴틈이 없었다는 아주머니의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별명에 녹아있는 듯했다.

또 다른 아주머니는 몇 해 전 자궁근종으로 자궁적출수술을 받았는데 아주머니들 사이에 자궁을 들어낸 사람을 빈궁마마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 서로 별명을 불렀는지 알 수 없지만 아내 가게에서 만날 때면 늘 이렇게 인사를 나누며 웃는다고 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서로 아픔을 보듬고 감춰줘야 하는데 오히려 아픈 과거가 녹아있는 별명을 스스럼 없이 주고 받던 두 아주머니.....
자신의 치부나 콤플렉스가 드러나는 별명을 부르며 서로 웃을 수 있는 두 아주머니의 여유를 이해할 순 없었지만 한편으론 남자보다 쿨하고 유쾌하게 사는 것 같아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