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세식 양변기에 담긴 딸의 효심

2010. 11. 23. 01:04세상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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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에 김장을 담기 위해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해마다 고향에는 품앗이로 김장을 합니다.
집집마다 돌아가며 담는 김장김치 맛은 아주머니들의 수다와 어우러져 맛이 대부분 비슷합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양념을 버무리는 동안 형님과 나는 지난 밤 절여놓은 배추를 탁자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올해는 건조해서 배추가 제대로 자라지 않아 포기수는 많은데 김치 양은 작년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모든 준비가 끝난 오전 9시에 시작된 김장 담그기는 오후 한 시가 되어서야 모두 끝났습니다.
추운 날씨 탓인지 점심 수저를 제대로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손이 곱더군요.

김장을 다하고 난 후에 뒤처리도 남자인 형님과 제몫이었습니다.
물로 닦고 쓸고 옮기고 하다 보니 금새 몸이 무겁더군요.
청소를 끝니고 난 후 빌려온 고무통을 갖다 주기 위해 이웃집으로 향했습니다.
젖은 고무통이라 그런지 엄청 무겁더군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지만 무거운 고무통을 들고 걷다보니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마루에 고무통을 올려놓고 집으로 돌아가려다 급한 볼일을 보기 위해 화장실 문을 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푸세식이려니 생각하고 문을 열었는데 양변기 하나가 놓여있습니다.
  

"앗!....양변기로 바꿨네..."
'지난 번에 상수도 공사를 한다더니 집집마다 양변기로 바꾸었구나..'
하고 양변기에 앉으려고 하는데 양변기 속이 뻥뚫려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푸세식 양변기로구나..."
몸이 불편하거나 제대로 앉지 못하는 시골 사람들을 위해서 푸세식 양변기를 설치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지만
직접 이렇게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일반 양변기와 모양은 흡사하지만 푸세식 양변기 아래는 시원하게 뻥 뚫려있었습니다.
우선 급한 볼일을 보기 위해 푸세식 양변기에 걸터 앉았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서늘한 바람이 느껴졌습니다.
순간적으로 기분이 이상했지만 마음은 편안했습니다.
화장실 안에는 뚜레뻥 대신 푸세식 화장실에서 가장 곤욕스런 파리를 잡기 위한 파리채도 놓여있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푸세식 양변기를 놓은 딸의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연로하신데다 혈압이 높고 관절이 안좋은 부모님을 위해 이집 딸이 직접 화장실을 개조한 것이라고 합니다.
옛날 화장실에 타일을 붙이고 편안하게 볼일을 볼 수 있도록 푸세식 양변기를 놓아드렸는데 그 후 이집에 놀러왔다 푸세식 양변기를 사용해 보고는 하나 둘 푸세식 양변기로 바꿨다고 하더군요.
주말 마다 내려와서 온갖 집안을 일을 다하고 또 이번에 부모님 대신 품앗이 김장을 하기 위해 참석한 셋째 딸이야기를 들으니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낯설었지만 은근히 편했던 푸세식 양변기....
이야기를 듣고 보니 문득 이런 광고가 떠오르더군요...
"부모님께 0000보일러 놓아드려야 겠어요.."

앞으로는 또 하나 추가해야겠습니다.
"부모님께 푸세식 양변기 놓아드려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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