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생각나는 은행나무 선생님

2010. 5. 15. 12:04세상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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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예전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슴에 꽃을 달아드리던 생각이 난다.
35년전 중학교 다니던 시절 체벌과 기합이 난무했지만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은 절대적이었다.
부모들도 자신의 자식이 잘못했기 때문에 체벌과 기합을 받았다며 오히려 자식을 혼쭐내던 시절이었다.
그때와 달리 요즘 스승의 날은 너무나 달라 보인다.
촌지문제 때문에 스승의 날 본래의 취지가 퇴색된 듯하고 교육계 비리로 인하여 스승의 날이 많이 위축된 듯하다.
하지만 내게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크게 느껴지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시다.
바로 중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었던 박현수 선생님이다.
아들 사형제가 모두 같은 중학교를 나왔는데 매일 3km가 넘는 비포장 도로를 걸어서 등교하다 2학년이 될 무렵 도로가 포장되고 시내버스도 다니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형이 졸업할 무렵 부터 셋째 동생이 졸업할 때 까지 한 학교에 근무하셨다.
정확히 기억 나지는 않지만 약 10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과목은 과학과 기술을 가르쳤는데 늘 필기를 많이 해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얼굴도 미남형이라서 남녀공학을 하던 그때 여학생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열정이 남다르셨던 선생님 하지만 불행하게도 학교에 다닐 때는 그 열정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했는데 세월이 흐를 수록 선생님 모습이 생각나곤한다.
당시에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던 것이 실습이었다. 그중에서도 버섯재배하는 과정을 직접 만들고 키우는 것을 너무나 싫어했다.
또 학교 뒷쪽에 묘목 밭에 각종 나무를 심고 나무에서 나온 톱밥을 이용해 새로운 친환경 합판을 만들려는 선생님의 열정이 너무나 싫었고 귀찮았다.
워낙 딱딱한 과목인데다 필기도 많지요 실습도 하니 이리저리 요령을 피우고 수업시간을 빼먹으려는 학생들도 많았었다.
그래도 꿋꿋하게 학생들을 설득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질 것을 강조하시곤했다.


그중에서도 지금껏 선생님을 기억하는 것중에 가장 가슴에 남는 것은 바로 은행나무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졸업할 때 마다 은행나무 한 그루씩을 나누어 주셨다.
형도 받았고 나도 받았고 또 동생도 은행나무를 받았다.
그토록 애지중지 키우던 은행나무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하나 하나 나누어 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한데 개중에 선물이 맘에 안든다며 버리는 학생도 있었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받았던 은행나무 .....
뒷마당에 삼형제의 은행나무가 자랄 때 마다 부모님은 늘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을 갖곤 하셨다.
그런데 졸업 후 2년만에 형의 은행나무를 누군가 캐가 두 그루가 남게 되었는데 주택을 새로 짓고 이사를 하면서 내 은행나무 나무 마저 목이 부러졌다.
버릴까 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흙으로 나무를 바르고 비닐로 칭칭 동여맸는데 다행히 살아났다.
지금도 그때의 상처가 큰 옹이로 남아있는데 그 은행나무가 효자목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무가 살아난 후 10년이 지난 후 은행이 달리기 시작했는데 수놈이었던 동생 은행나무와 암놈이었던 내 은행나무가 함께 있으면서 은행이 주렁주렁 달리는 모습에 가장 기쁜 것은 역시나 부모님이셨다.
한해에 은행을 팔아서 많게는 60만원의 소득을 올린 적도 있다고 했다.
또 잎사귀가 약재로 팔려나가면서 잎에서도 용돈이 생긴다며 부모님은 은행나무를 보며 효자목이라 부르기도 하셨다.
나중에는 중국산이 밀려오면서 가격이 떨어져 귀찮아지긴 했지만 여름에 그늘을 만들어주는 은행나무는 지금도 든든한 버팀목임에 틀림없다.
선생님이 주신 은행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자라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것처럼 아직도 고향을 지키며 노후를 보내시는 계신다.
세월이 지날수록 가슴에 더욱 감사하게 느껴지는 선생님......
선생님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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