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면 난폭해지는 아들 어떻게 하나...

2010. 2. 24. 08:18세상 사는 이야기

어제는 아내와 함께 서울에 다녀왔다.
갑자기 날씨가 풀린 탓에 봄상품을 해야 한다고 보채는 바람에 예정에도 없이 서울에 다녀 오느라 평소보다 더 피곤했다.
사무실에 나갔다 조금 일찍 집으로 들어와 쉬려고 하는데 친구로 부터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는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친구와 같은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나와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며 반주로 소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이야기한 것이 술에 관한 이야기였다.
함께 온 사람중에 한 사람은 몸이 안좋아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로 부터 심혈관질환이 있는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중에 고지혈증이 가장 심각해 몸 관리를 잘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술잔을 받지 않았다.
술잔이 돌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가장 연장자인 형님이 자신의 아들 이야기를 하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형님의 아들은 올해 나이가 서른 아홉인데 평소에는 지극히 내성적이라서 말이 없다 술만 먹으면 난폭해져 걱정이라고  했다.
어릴 때 부터 말수가 적은데다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사교성이 부족했던 아들이 성인이 되면서 술을 배우게 되었는데 평소에는 샌님처럼 말이 없다 술만 들어가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 걱정이라고 했다.
술에 취해 횡설수설 하거나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인사불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기분 나빴던 일들을 가슴에 묻어 두었다가 술만 취하면 한꺼번에 쏟아내며 행패를 부린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점점 도가 지나쳐 몇번이나 내쫒은 적도 있었지만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알콜 중독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소에 문제아도 아닌데 왜 술만 들어가면 마치 짐승처럼 난폭해지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부모에게 욕을 하는 것은 다반사요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술이 깰 때 까지 난동을 부린다고 했다.
형님 아들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어릴 적 우리집에서 함께 자라던 사촌형이 떠올랐다.

어릴 적 백부님과 백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우리집에 와있던 사촌형은 성격이 내성적이었다.
가정 환경 탓인지는 몰라도 늘 위축되어 자신감이 부족했고 별로 말이 없었다.
평소 학교 공부에 도통 관심이 없던 사촌형은 급기야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가출을 했고 그곳에서 술담배를 가까이 하게 되었다.
그런데 평소에는 집에 들어오지 않던 사촌형이 꼭 술이 취하면 집으로 와서 행패를 부리곤 했다.
어머니에게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심한 욕을 해대고 동네 사람들이나 눈에 띄는 사람에게 무작정 시비를 걸기도 했다.
이상한 것은 그런 다음날 술이 깨면 마치 돌부처처럼 말이 없고 유순해졌다.
지난 밤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하며 사과를 하곤 했다.

지금은 술을 완전히 끊은 채 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있는데 지금도 그때 이야기를 꺼내면 부끄러워 얼굴을 숙이곤 한다.
술을 끊게된 계기가 지금의 형수님을 만나면서 약조를 했는데 술을 다시 입에 댈 때는 이혼한다는 각서를 쓰고 나서 딱 끊었다고 한다.
알콜 중독자가 아니라서 끊는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는데 가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술을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지만 어렵게 이룬 가정이 깨질까 이를 악물고 참는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형님 아들과 사촌형님이 성격이 거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기분 나빴던 일들을 꽁하고 있다가 술만 들어가면 줄줄이 사탕처럼 풀어내며 난동을 피우는 모양새가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말이 없고 착한 아들이 왜 술만 마시면 짐승처럼 난폭해지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형님....
그동안 병원에서 치료도 받고 다양한 방법으로 술을 끊도록 했지만 자신의 의지가 부족한 탓인지 늘 같은 행동을 되풀이 하고 있다고 한다.
술주정이나 주사는 술을 완전히 끊지 않는 한 고칠 수 없다는 사촌형님의 말이 지금도 새록새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