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어머니 서랍 속 35만원 알고 봤더니....

2010. 2. 10. 09:19세상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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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어머니 돌아가신지 3년이 넘었다.
해마다 겨울방학 때면 겨울 바다가 보고 싶다며 둘째 아들인 내게와 머물던 것과 늦게 종교에 귀의해 열심히 성당에 다니던 생각이 새롭다.
해가 바뀌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을 저미게 하는데 지금도 가장 가슴 아픈 기억이 하나 있다.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 어머니의 옷장 속에 깊숙히 박혀 있던 현금 35만원 때문인데 그것은 그해 추석 때 자식들이 드린 용돈 중에 일부였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평생 경제권을 쥐어 보지 못한 어머니.....
농사일과 옹기를 굽는 가마터 일을 병행하시던 아버지는 겨울이면 어머니와 함께 먼곳으로 항아리를 팔러 가시곤 했다.
팍팍한 살림살이를 헤쳐나가기 모든 경제권은 아버지가 쥐고 계셨고 어머니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셨다.
그래서 아들 사형제가 결혼한 뒤에는 늘 아버지 용돈과 어머니 용돈을 따로 드리곤 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허투로 돈을 낭비하신 것은 아니었다. 
자식들의 학비와 사업을 한답시고 대출낸 것 때문에 원금과 이자를 내느라 늘 살림살이가 쪼들렸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어머니는 평생 아버지께 손을 벌린 적이 없으셨다.
집안 일은 집안 일대로 농사일은 농사일대로 하시면서 틈나는대로 모내기나 산나물을 채취해 자급자족 하시곤 했다.
가마터 일 때문에 농사일을 제대로 할 수 없으셨던 아버지 때문에 아들 사형제는 늘 어머니 농사일을 도와 드려야 했는데 그중 가장 힘든 농사일은 바로 담배농사였다. 
이른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담배잎을 딸 때면 얼굴과 머리에 끈적한 진액이 묻어 났고 잎을 줄에 끼어 말리던 작업은 손이 무척이나 많이 갔다.

                                                               < 어머니가 쓰시던 40년된 화로 ............>

농사중에 특히 손이 많이 가고 힘이 들다는 담배와 차조기 그리고 고추농사를 짓느라 형제들은 여름에도 그 흔한 바캉스며 천렵도 제대로 가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가마터에서 일하시고 어머니가 농사를 지으셔도 살림살이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형제가 줄줄이 고등학교와 대학을 들어가면서 학자금 대출을 받게 되었고 대출 원금과 이자를 내느라 늘 허덕였다.
그렇게 평생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하신 어머니는 나이가 드신 후엔 류머티스 관절염과 고혈압때문에 늘 고통스러워하셨는데 자식들이 걱정할까 몰래 혼자 앓으셨다.
모든 어머니가 다 그렇듯이 자식을 위해서는 한없이 자비로우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인색해 몸이 아파도 병원 가기를 꺼리셨다. 
병원 가기를 거부하던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에서 관절염 수술을 받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종합검진을 받았을 때는 나타나지 않던 협심증으로 2007년 12월 73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돌아가시고 난 후 어머니 영정 사진을 꺼내려고 장농을 뒤적이다 서랍 속에서 하나 둘 나오는 흰 봉투를 발견했다.
그 속에는 평소에 자식들이 드렸던 용돈이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이미 꺼내 쓰신 빈 봉투도 보였고 아직 쓰지 못한 봉투도 여럿 눈에 띘는데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은행을 들려본 적 없던 어머니에게 옷장 속 서랍이 바로 금고였던 셈인데 마땅한 벌이가 없던 어머니가 자식이나 손주들 생일이나 학교 입학과 졸업할 때마다 건네 주시던 10만원은 모두 자식들과 며느리가 드린 용돈을 아꼈두었던 것이었다.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가 이승에 남긴 돈 35만원....
젊었을 때는 홀시어머니의 고된 시집살이를 하셨고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후에도 극진하게 모셨던 어머니....
아버지와 자식들 그리고 손주를 위해서라면 가장 큰 후원자이면서 내조자셨던 어머니...
동네에 일이 있을 때면 발벗고 나서 손맛 좋은 요리솜씨를 뽐내시던 어머니....
쌀과 김치 감자 고구마 마늘과 같은 식품과 들기름 참기름 고추가루등 손수 농사 지은 것을 아들 사형제에게 바리바리 싸보내주시던 어머니......
물질의 풍요로움 보다 마음의 풍요를 남겨주고 싶으셨던 어머니 생각을 하면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생각나곤 한다.
어머니가 흰봉투 속에 남긴 35만원을 아버지께 내밀자 어머니 영정사진이 너무 낡았으니 다시 만들라고 하셨다.
반쪽을 잃으신 후 부쩍 기력이 쇠약해지신 팔순의 아버지.....
아버지를 뵐 때 마다 더욱더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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