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에서 아들뻘 청년과 다툰 사연

2010. 2. 5. 11:23세상 사는 이야기

어제 저녁 서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달에 두 번 의류점을 하는 아내를 돕기 위해 서울에 갑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관광버스가 다녀 그것을 타고 다니다 경기침체와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관광버스가 다니지 않게 되면서 부터 자연스레 아내와 함께 동대문과 남대문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처음 다닐 때는 피곤해서 며칠동안 고생을 했는데 요즘은 익숙해진데다 서울 춘천 고속도로 개통과 이어서 동홍천 고속도로까지 뚫려서 조금은 편안하게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야간 운전은 늘 힘들고 피곤합니다. 그래서 동대문에 도착하면 유어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늘 24시 사우나에서 잠시 잠을 청하곤 합니다.
예전 동대문 운동장이 철거되기 전에는 주차비용이 저렴하게 들었는데 이곳에 디자인 센터를 건립하면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비싼 주차료를 물곤 합니다. 보통 한 번 다녀올 때 마다 주차비용만 25000원에서 3만원이 들곤합니다.
주차비용이 아까워 대로변에 차를 세웠다 딱지를 끊긴 적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아마도 지방에서 물건을 하러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같은 경헙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는 입춘이 코앞인데도 매서운 강추위가 맹위를 떨쳤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사우나로 가는데 한기가 온몸으로 파고 들었습니다.


내가 늘 가는 곳은 남성전용 사우나인데 이렇게 추운 날이면 사람들로 붐비고 그럴 때 마다 잠을 설치곤 합니다.
수면실에는 늘 코를 고는 사람들이 있어 깊은 잠을 잘 수가 없는데 어제도 방마다 코를 고는 사람들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 지하에 있는 사우나로 향했습니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온탕에 몸을 담그고 반신욕을 하는데 젊은 청년이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20대 초반의 앳딘 얼굴로 보아 아마도 아들뻘 되는 듯 합니다.
요란하게 몸을 씻는 모습을 뒤로 하고 핀란드식 건조사우나실로 들어가 앉았습니다.
그곳에는 벽면에 TV가 설치되어 있는데 늘 YTN 뉴스가 나오곤 합니다.
이번 설연휴를 앞두고 물가가 치솟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는데 아까 그 젊은 청년이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입에 칫솔을 물고 들어와서는 열심히 이를 닦습니다.
기분이 상했지만 못본 척하고 TV를 보고 있는데 입에서 흘러내린 치약들이 바닥에 뚝뚝 떨어집니다.
보다 못해 한 마디 던졌습니다.
"칫솔질은 밖에서 하면 안되겠습니까?"
잠시 움찔 하더니 못들은 척 칫솔질을 하는데 나무 바닥에는 하얀 거품들이 연신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기분이 언짢은 듯한 표정이 역력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으니 입에 흰 거품을 물고 내게 말을 하더군요
"아저씨,맘에 안들면 옆에 있는 사우나실로 가시지요?"
마치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표정으로 쏘아보는 청년을 보며 순간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감정 속에는 따끔하게 혼내주고 싶은 마음과 훈계했다가 괜한 봉변을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아내의 잔소리가 떠올랐습니다.
"제발 남의 일에 참견 좀 하지마...그런다고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닌데..."
예전 밤늦은 시각 술취한 청년들이 남의 상가 셔터를 발로 마구 차는 것을 말리려다 봉변을 당한 적이 있었거든요.
또 짧은 순간 요사이 주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요즘 한 달 사이 내가 사는 곳에서 두 건의 끔찍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는 친구와 술을 마시다 말다툼이 벌어졌는데 사소한 일로 친구를 끔찍하게 칼로 찔러 죽인 사건이었고 또 다른 사건은 사흘 전 여자 친구와 사귀는 것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의 부모를 끔찍하게 살해하고 여자 친구도 목졸라 살해하려고 했던 사건이었습니다.
모두 참을성 없고 사려깊지 못한 행동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는데 칫솔질 하는 청년의 표정에서도 무언가 불만이 가득찬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 옆에 있는 사우나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유리 사이로 청년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는데 한참을 칫솔질을 하다 밖으로 나가더니 바로 냉탕에 몸을 던졌습니다.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청년은 물속에서 가글을 모두 끝낸 듯 태연하게 탕을 빠져 나갔습니다.
청년이 나온 사우나 바닥에는 보기에도 역겨운 양치의 흔적들이 하얗게 묻어 있었습니다.
간혹 사우나실에서 때를 미는 사람들은 보았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양치질을 하는 것을 본적이 없는 터라 너무나 불쾌했습니다.
물 한 바가지를 떠서 뿌리고 난 후에도 자국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수면실에서 코를 고는 사람이야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사우나실에서 칫솔질을 한다는 것은 양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기사 요즘 부모가 이야기해도 말빨이 서지 않는 세상인데 낯선 사람이 하는 말에 고분고분 따라주거나 사과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우나를 즐기려던 짦은 시간.... 청년은 청년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에게 아주 불쾌하고 불편한 시간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