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면 생각나는 세뱃돈 1원

2010. 2. 11. 09:46세상 사는 이야기

며칠 지나면 민속 명절 설날이다.
해마다 이맘 때면 설날을 기다리며 마음 설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곤 한다.
먹을 것이 풍요롭지 못했던 1960년도 후반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것은 추석과 설날 그리고 크리스마스였다.
이때만큼은 배를 곯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중 크리스마스 때는 성당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네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성탄 전야에 틀어주던 영화도 못보고 성당 근처에도 가지 못해 속상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또 설날 때에는 아침 일찍 마을을 돌며 세배를 드렸는데 당시만해도 동네에서 가장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 집에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온마을 사람들이 세배를 드리기 위해 줄을 서있곤 했다.
당시 마을에 가장 연장자는 집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살고 계셨는데 백발이 성성했고 하얀 콧수염이 인상적이셨다.
연세가 90이 넘으셨는데도 너무나 정정하셨는데 늘 다정다감해서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할아버지집에서는 계절마다 시향을 지냈는데 그때마다 음식을 풍성하게 장만해서 동네 아이들에게는 떡과 다식 약과 사탕등을 나누어 주곤 했다.
시향은 계절마다 나누는 제사를 말하는 것으로 시제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설날이 가까워질 무렵이면 눈이 엄청나게 많이와 초가집이 하얗게 변했고 기와집에도 눈이 가득 쌓여 온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굴뚝에서는 설날 음식을 장만하느라 하루종일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을 만들기 위해 남자들이 눈을 치우느라 정신없었다.
그리고 설날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세배를 다녔는데 당시 친구 아버지집에 세배를 가면 세배돈으로 십원이나 오원을 주었다.
당시에는 오백원 백원 오십원 십원 오원 일원권 지폐와 주화가 동시에 통용되었는데 설날이면 세뱃돈으로 오십원에서 백원정도를 모을 수 있었다.
용돈이 궁했던 그 시절 평소에는 부대 인근에서 빈병이나 고철을 주어서 고물상에 팔거나 인근 사격장에서 탄피를 주워 팔곤했었다.
동네 형들 중에는 탄피를 주우러 갔다가 잘못되어 팔을 잃은 형도 있었고 전신 화상을 입은 형도 있었다.
용돈을 스스로 자급자족하던 시절이라 설날 받는 세뱃돈이 그만큼 소중했는데 설날 세배를 다니다 보면 유일하게 세뱃돈 1원을 주는 분이 있었다.
바로 가장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였는데 동네 마을뿐만 아니라 이웃동네에서까지 아이들이 세배를 오다 보니 세뱃돈의 기준을 엄격하게 정해놓으셨다.
국민학생은 저학년은 1원 고학년은 2원, 중학생은 5원, 고등학생은 10원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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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뱃돈이 너무 적다고 투덜대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정해진 규정이 있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세뱃돈을 주실 때 꼭 따뜻한 덕담을 해주셨는데 국민학교 저학년들은 꼭 할아버지 무릎에 앉히고 반짝이는 1원짜리 은화를 쥐어주시며 따뜻한 말 한 마디를 해주시곤 했다.
"아이고 요녀석 그동안 많이 컷네.....그동안 고추도 많이 여물었나 한번 만져볼까?..."
웃으시면서 고추를 만지려고 하면 도망치려고 발버둥치면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씩씩하게 자라거라 내년에 또 보자..."
하시곤 했다.
해가 바뀔수록 덤담도 조금씩 달라졌지만 세뱃돈은 늘 정해진 규칙대로 주셨다.
당시 1원이면 누가 사탕이 두개였다.
단단하지도 아주 달지도 않은 누가사탕은 캬라멜과 같았는데 입안에 넣고 있으면 천천히 녹아서 오랫동안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40년이 넘은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때는 세뱃돈에만 집착했는데 지금은 돈 1원 보다 무릎에 앉히고 덕담을 해주시던 그 모습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지고 또 그리워진다.
요즘 설날은 마치 의례행사를 지내는 것처럼 무미건조하고 정이 많이 사라진 듯하다.
고향에 가도 세배도 다니지 않고 가족이 모여 송편이나 만두를 빚는 모습도 볼 수가 없고 아이들은 설날을 세뱃돈 받는 날로 생각하는 듯해 마음이 씁쓸해지곤 한다.
엣날 세뱃돈 1원을 주시던 덕담 할아버지처럼 올해는 자녀들과 조카에게 세뱃돈을 줄 때 따뜻한 덕담 한 마디 꼭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