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별명이 건빵 회장님인 이유

2009. 8. 28. 13:48세상 사는 이야기

오늘은 초등학교 시절 어린이 회장을 했던 친구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릴 때 였는데 내 절친 중에는 늘 반장을 도맡아 했었고 6학년 때에는 어린이 회장을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때가 1972년이었으니 아마 약 36년이 된 것 같습니다.
검정 고무신에 보자기 책보를 둘러매고 다니던 아이들도 있었고 좀 잘 사는 아이들은 흰고무신이나 운동화 그리고 멋진 가방을 둘러메고 다녀 겉으로 봐도 집안 내력이 훤하게 보일 정도로 빈부의 격차가 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여러 마을에서 학교를 다니던 터라 그 작은 학교에서도 텃세가 심했던 시기였습니다.
그중 제가 사는 마을에 학교가 있었고 동창들 중에 유독 드센 친구들이 많았던 터라 다른 마을 아이들은 늘 기를 펴지 못했습니다.
다른 마을 아이들 중에 학교를 꿇어 늦게 들어온 아이들만 친구가 될 수 있을 정도로 텃세가 심해 당시 동네 형들도 '아,,,저 꼴통들 정말 대책이 안서는 녀석들이야....'하며 그냥 모른 척하기 일쑤였습니다.
동네에서 무언가 없어졌다하면 모두 우리 짓으로 여기고 실제로도 그런 일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한 번은 친구네 할머니가 애지중지 하는 닭을 잡아 먹은 후 날마다 논밭을 돌며 닭을 찾는 바람에 미안에서 다른 마을에 있었던 양계장에서 훔쳐다 닭장에 놓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닭서리를 갔다가 도사견에 물릴 뻔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또 동네에서 한 마리 밖에 없는 칠면조를 서리해 먹고는 하루종일 그 집에서 풀을 뽑았던 기억도 있었습니다.

그중에 매번 일을 만드는 친구는 역시 마을 이장집 아들이었습니다.
당시 동네 대부분의 땅이 그 친구 아버지 땅이었는데 대부분 마을 사람들은 친구집 소작농으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가장 무서운 것이 빽이었는데 시골 촌구석에서 이장을 하면서도 높은 분의 친척이라는 이유만으로 군수나 의원을 하려는 사람들이 부탁을 하러 오기도 했고 당선한 뒤에도 인사를 오기도 했습니다.
내 아버지도 신작로에 콩을 널었다가 경찰에 불려갔을 때 친구 아버지가 꺼내주기도 했습니다.

시골에서는 정말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던 아버지라 학교에서도 친구의 위세가 대단했습니다.
늘 반장은 따논 당상이었고 늘 우등상을 타고 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참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나보다 별로 잘 하는 것 같지 않고 수학도 나와 함께 나머지 공부를 한 적도 있는데 어떻게 우등상을 놓치지 않을까?....
또 장난도 심해서 여자 아이들 고무줄을 끊거나 아이스께끼를 밥 먹듯 하고...점심 먹을 때 책상 위에 올라 오줌싸기 등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장난을 쳤습니다.
아마 당시에 다른 녀석들이 그랬으면 몇 배는 더 혼쭐이 났을 것이라며 수근거리기도 했습니다.
또 한 번은 박정희 대통령이 비행기를 타고 지나간다며 도로 옆에 꽃을 심고 청소를 하는 날에도 이녀석만 쏙 빠졌더군요.....
그런 녀석이 긴장했던 경우가 딱 한 번 있었습니다.
바로 전교 어린이 회장 선거였습니다.
친구가 긴장을 한 것은 바로 5학년 때 전학온 강력한 라이벌 때문이었지요.
친구와 맞붙은 그 아이는 당시 군장교의 아들이었는데 축구도 잘하고 공부도 잘해 금새 인기를 독차지 했습니다.
키와 얼굴 등 외모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전혀 꿇릴 것 없는 그 친구에게 열광하는 여학생들과 다른 마을 학생들.....
눈에 보이게 확연히 두 파로 나뉘었고 사사건건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극명했던 것이 바로 어린이 회장 선거였습니다.
단 둘이 입후보 했는데 선거가 다가올수록 점점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을 감지한 친구는 고민 끝에 극약처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거전날 학교에 가는 길에 친구를 만났는데 천으로 가린 리어카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그게 뭐냐?..."
"응, 건빵...."
"아니, 건빵은 뭐하게...."
"학교에다 돌리려고....아 힘들다 뒤에서 좀 밀어라...."
밑도 끝도 없는 친구의 말에 리어카를 밀게 되었고 결국 각 교실을 돌며 배급을 했습니다.
당시 선거는 4학년 이상 선거를 했는데 교실을 돌 때 마다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건빵은 흔하지 않았습니다. 군용건빵 맛을 간혹 본 친구들도 있었지만 가게에서 사먹는 건빵이 더 맛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대통령 선거 때 박정희 대통령이 하사한 고무신을 받고 자랑하던 마을 사람들도 있었을 때였고 먹을 거리가 풍부하지 않던 때라 건빵 한 봉지의 위력이 대단했습니다.
물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배급해주던 옥수수빵이나 우유가 있었지만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양은 아니었습니다.
늘 허기가 진 아이들에게 건빵 한 봉지는 정말 일용한 한끼의 식사였습니다.
건빵하니 또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앞 강물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군인 부대에서 떠 내려오는 불은 건빵을 보고 흐트러지거나 남이 먼저 먹을까 그대로 때꾹물과 함께 입속으로 넣은 적도 있었습니다.
결국 선거결과 건빵을 돌린 친구가 어린이 회장에 당선되었습니다. 함께 회장선거에 출마했던 친구가 모든 면에서 앞섰지만 늦게 전학을 왔다는 점과 건빵이라는 뇌물의 힘에 낙선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하지만 당선된 친구도 그후 평생 좋지 않은 별명이 따라 다니곤 했습니다.
바로 건빵 회장님이었습니다.
그때는 뇌물을 돌려도 잡혀가거나 법의 처벌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던 시기라서 가능했으리라 생각하지만 지금도 뇌물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어제도 뉴스에서는 각 농수축협 조합장 선거에 대한 비리와 뇌물 때문에 얼룩진 선거 이야기가 나오더군요....25만원을 넣은 봉투에서 부터 음식접대 그리고 당선된 후 막강한 권한으로 비리를 저지르는 모습을 보니 눈쌀이 저절로 찌푸려지더군요.
내년이면 또 지자체 선거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내 친구가 뇌물로 어린이 회장 선거에서 당선되고 평생 건빵 회장님이 된 것처럼 앞으로 선거에 입후보하는 모든 사람들이 뇌물이나 접대등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당선되려는 마음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