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굣길에 손가락 잘린 친구 이유가 기가 막혀
2009. 8. 17. 20:56ㆍ세상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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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란 어떤 의미일까?.....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 마다 생각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성격이 급한 친구 혹은 느긋한 친구....과시욕이 많고 지기 싫어하는 친구 또는 겸손한 친구....집이 가난해 늘 남루했던 친구와 만석집이라 늘 부유했던 친구....다양했던 친구들 만큼이나 어릴 적 많은 추억이 남아있습니다.
그중에 오늘은 과시욕이 많고 지기 싫어하는 친구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 친구는 워낙 과시욕이 많고 승부욕이 강해서 아무도 그 친구에게 내기를 하거나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아서 한번 혼난 친구들은 그 친구가 이야기 할 때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그 일례를 몇 가지 들어보면 학교가 끝난 후 아이들과 편을 갈라 칼싸움이나 총싸움을 하다 지게 되면 자신이 이길 때 까지 계속 하자고 우겨 나중에는 지겨워서 져주거나 그냥 몰래 집으로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또 한번은 동네에서 스케이트를 가장 잘 타는 친구가 자기를 무시했다며 아버지를 졸라 스케이트를 사서 스피드 대결을 청했다가 무참히 깨졌는데 스피드 게임에서 지자 얼음과 얼음 사이를 점프해서 강을 건널 수 있다며 호기를 부리다 강물에 빠져 큰일날뻔 하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스케이트를 탄 친구에게 이긴다는 것이 무모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지고는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화를 자초하곤 했습니다.
친구의 이런 성격을 아는 친구들은 늘 입조심을 하거나 본의 아니게 왕따 아닌 왕따를 시켰습니다.
무엇이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앞장서는 친구 때문에 재미보다는 승부욕만 자극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승부욕은 결국 큰 화를 불렀습니다.
버스 안내양이 있던 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갓입학한 나와 친구들은 아침 등굣길이면 버스를 타기 위한 전쟁을 치르곤 했습니다. 문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꽉 찬 버스에 매달려 '오라이~' '발차~'를 외치던 안내양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 우리집은 시내버스가 서는 정류장 옆에 있었는데 건너편에는 요즘 카센타라고 할 수 있는 빵구집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늘 속초 고성 양양등 영동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건어물차량이나 생물을 싣고 가는 차량들이 차량 정리를 하는 곳이었는데 버스가 올때 까지 빵구집 마당에서 기다리곤 했습니다.
그곳에는 강건너에 사는 다른 마을 아이들이 섶다리를 건너 이곳에서 기다리다 차를 타곤 했습니다.
사고가 난 그날 아침 나는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고 강건너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으악'하는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깜짝 놀라 길 건너 빵구집으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아이들이 삥 둘러 서있고 가운데 친구 녀석이 오른쪽 손을 부여잡고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친구의 손가락이 잘렸다며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빵구집 주인이 수건으로 친구의 팔을 동여매고 잠시 쉬고 있던 건어물 차에 친구를 태우고 병원으로 떠났습니다.
떠나고 난 후 들은 이야기는 정말 어이없고 기가 막혔습니다.
강 건너 아이들이 차를 기다리는 사이 다른 때 보다 일찍 집에서 나온 친구는 빵구집 앞에서 떠드는 아이들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이야기가 빵구집에 있는 자동차 바람 넣는 기계인 콤프레샤에 돌고있는 벨트 이야기 였는데 한 아이가 자신의 삼촌이 돌아가는 벨트를 손으로 잡아 기계를 멈출 수 있다는 무용담이었다고 합니다.
"야,니네 이 기계 이름이 뭔지 알아?"
"아니 몰라, 뭔데...."
"공기를 주입해주는 콤프레샤라는 기계인데 이 옆에 돌아가는 벨트 보이지...."
"응!...."
"우리 삼촌은 돌아가는 벨트를 맨손으로 잡을 수 있어!!..."
"에이, 거짓말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 것을 어떻게 잡아!!!....."
"다른 사람들은 겁이 나 못잡지만 삼촌은 운동신경이 뛰어나 잡을 수 있다고 했어........"
서로 거짓말이다 아니다 설왕설래를 하고 있는데 엎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그 친구가 불쑥
"나도 저 벨트를 잡을 수 있다"
며 교복 상의를 훌떡 벗었다고 합니다.
삼촌이 벨트를 잡았다는 아이를 제외하고는 전부 잡을 수 없다며 반대를 했지만 친구는 천천히 기계로 다가가 호흡을 가다듬고는 돌아가는 벨트를 잡으려고 손을 넣었다고 합니다.
그 순간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검지 손가락이 기계와 벨트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고 합니다.
손가락은 잘려진 것이라기 보다는 짓이겨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롤 너덜거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며칠 후 집으로 돌아온 친구는 약 한달여간 손가락에 붕대를 매고 다녔습니다.
나중에 붕대를 풀은 것을 보니 검지가 짓이겨진 탓에 손가락의 모양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검지의 손톱이 있던 마디는 거의 없고 손톱도 거의 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잘려진 손마디는 옹이처럼 굵어졌습니다.
남에게 과시하는 것 좋아하고 무모하리 만큼 엉뚱한 승부욕 때문에 생긴 불상사로 결국 군대도 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말뚝 상사였던 친구는 늘 아버지 제대복을 자랑하며 자신은 멋진 해군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하곤 했었는데...
친구가 손가락이 잘리고 난 후 친구들이 기피하는 것이 또 하나 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꿀밤 때리기 였습니다. 옹이가 진 것 같은 잘려진 손가락으로 꿀밤을 때리면 마치 돌에 맞은 듯 머리가 얼얼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서울로 전학과 함께 가족이 모두 떠나고 난 후 소식이 가끔 들었지만 얼굴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욱하는 성격과 남에게 과시하기 좋아하고 승부욕이 강한 것은 타고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친구들이 모이면 이야기 하곤합니다....차라리 어렸을 때 운동을 시켰다면 대성했을 것이라고.......
지금도 어디선가 그 성격대로 승부욕을 과시하며 살고 있을 친구...... 32년전 그때 그 친구가 문득 그립습니다.
그중에 오늘은 과시욕이 많고 지기 싫어하는 친구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 친구는 워낙 과시욕이 많고 승부욕이 강해서 아무도 그 친구에게 내기를 하거나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아서 한번 혼난 친구들은 그 친구가 이야기 할 때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그 일례를 몇 가지 들어보면 학교가 끝난 후 아이들과 편을 갈라 칼싸움이나 총싸움을 하다 지게 되면 자신이 이길 때 까지 계속 하자고 우겨 나중에는 지겨워서 져주거나 그냥 몰래 집으로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또 한번은 동네에서 스케이트를 가장 잘 타는 친구가 자기를 무시했다며 아버지를 졸라 스케이트를 사서 스피드 대결을 청했다가 무참히 깨졌는데 스피드 게임에서 지자 얼음과 얼음 사이를 점프해서 강을 건널 수 있다며 호기를 부리다 강물에 빠져 큰일날뻔 하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스케이트를 탄 친구에게 이긴다는 것이 무모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지고는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화를 자초하곤 했습니다.
친구의 이런 성격을 아는 친구들은 늘 입조심을 하거나 본의 아니게 왕따 아닌 왕따를 시켰습니다.
무엇이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앞장서는 친구 때문에 재미보다는 승부욕만 자극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승부욕은 결국 큰 화를 불렀습니다.
버스 안내양이 있던 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갓입학한 나와 친구들은 아침 등굣길이면 버스를 타기 위한 전쟁을 치르곤 했습니다. 문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꽉 찬 버스에 매달려 '오라이~' '발차~'를 외치던 안내양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 우리집은 시내버스가 서는 정류장 옆에 있었는데 건너편에는 요즘 카센타라고 할 수 있는 빵구집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늘 속초 고성 양양등 영동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건어물차량이나 생물을 싣고 가는 차량들이 차량 정리를 하는 곳이었는데 버스가 올때 까지 빵구집 마당에서 기다리곤 했습니다.
그곳에는 강건너에 사는 다른 마을 아이들이 섶다리를 건너 이곳에서 기다리다 차를 타곤 했습니다.
사고가 난 그날 아침 나는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고 강건너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으악'하는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깜짝 놀라 길 건너 빵구집으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아이들이 삥 둘러 서있고 가운데 친구 녀석이 오른쪽 손을 부여잡고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친구의 손가락이 잘렸다며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빵구집 주인이 수건으로 친구의 팔을 동여매고 잠시 쉬고 있던 건어물 차에 친구를 태우고 병원으로 떠났습니다.
떠나고 난 후 들은 이야기는 정말 어이없고 기가 막혔습니다.
강 건너 아이들이 차를 기다리는 사이 다른 때 보다 일찍 집에서 나온 친구는 빵구집 앞에서 떠드는 아이들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이야기가 빵구집에 있는 자동차 바람 넣는 기계인 콤프레샤에 돌고있는 벨트 이야기 였는데 한 아이가 자신의 삼촌이 돌아가는 벨트를 손으로 잡아 기계를 멈출 수 있다는 무용담이었다고 합니다.
"야,니네 이 기계 이름이 뭔지 알아?"
"아니 몰라, 뭔데...."
"공기를 주입해주는 콤프레샤라는 기계인데 이 옆에 돌아가는 벨트 보이지...."
"응!...."
"우리 삼촌은 돌아가는 벨트를 맨손으로 잡을 수 있어!!..."
"에이, 거짓말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 것을 어떻게 잡아!!!....."
"다른 사람들은 겁이 나 못잡지만 삼촌은 운동신경이 뛰어나 잡을 수 있다고 했어........"
서로 거짓말이다 아니다 설왕설래를 하고 있는데 엎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그 친구가 불쑥
"나도 저 벨트를 잡을 수 있다"
며 교복 상의를 훌떡 벗었다고 합니다.
삼촌이 벨트를 잡았다는 아이를 제외하고는 전부 잡을 수 없다며 반대를 했지만 친구는 천천히 기계로 다가가 호흡을 가다듬고는 돌아가는 벨트를 잡으려고 손을 넣었다고 합니다.
그 순간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검지 손가락이 기계와 벨트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고 합니다.
손가락은 잘려진 것이라기 보다는 짓이겨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롤 너덜거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며칠 후 집으로 돌아온 친구는 약 한달여간 손가락에 붕대를 매고 다녔습니다.
나중에 붕대를 풀은 것을 보니 검지가 짓이겨진 탓에 손가락의 모양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검지의 손톱이 있던 마디는 거의 없고 손톱도 거의 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잘려진 손마디는 옹이처럼 굵어졌습니다.
남에게 과시하는 것 좋아하고 무모하리 만큼 엉뚱한 승부욕 때문에 생긴 불상사로 결국 군대도 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말뚝 상사였던 친구는 늘 아버지 제대복을 자랑하며 자신은 멋진 해군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하곤 했었는데...
친구가 손가락이 잘리고 난 후 친구들이 기피하는 것이 또 하나 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꿀밤 때리기 였습니다. 옹이가 진 것 같은 잘려진 손가락으로 꿀밤을 때리면 마치 돌에 맞은 듯 머리가 얼얼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서울로 전학과 함께 가족이 모두 떠나고 난 후 소식이 가끔 들었지만 얼굴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욱하는 성격과 남에게 과시하기 좋아하고 승부욕이 강한 것은 타고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친구들이 모이면 이야기 하곤합니다....차라리 어렸을 때 운동을 시켰다면 대성했을 것이라고.......
지금도 어디선가 그 성격대로 승부욕을 과시하며 살고 있을 친구...... 32년전 그때 그 친구가 문득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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