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뽀빠이의 팬이 된 이유

2009. 8. 15. 14:49세상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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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고향에 갔을 때의 일이다. 오전에 찾아뵌다고 하고 일이 생겨 점심을 먹고 떠났는데 피서철이라 차들이 많이 막혔다.
평일이라 집에는 팔순 아버지 혼자 계셨다. 형과 형수님은 맞벌이를 하느라 나갔고 조카는 방학중에 아르바이트 하느라 일찍 나가고 없었다.
집안에 들어서니 적적한 집안에 TV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안방으로 들어서니 TV를 틀어놓으신 채 잠이 들으셨다.
가만히 주방 있는 곳으로 나와 시장에서 사간 물곰을 손질해 냄비에 올려놓았다.
유독 물곰탕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올때마다 탕을 끓이곤 한다.
무와 파..그리고 고춧가루만을 넣은 채 끓이는 물곰탕을 처음에는 드시지 않으셨다.
"뭔 고기가 이렇게 흐물흐물해....씹히는 맛도 하나도 없는 것이 이상해...."
그러던 아버지가 틀니를 하고 부터는 입맛이 싹 가신듯 하다.
노인이 되면 씹는 즐거움과 입맛이 변한다더니......
한참 물곰탕이 끓고 있는데 아버지가 나오셨다.
"언제 왔냐?..."
"예,,,얼마 안되었어요....좀더 주무시지 그러셨어요..."
"늘 틈새 잠인데 뭘 또 자......"
물곰탕이 다 끓자 이른 저녁식사를 하면서 반주로 소주를 몇 잔 마셨다.
예전에 아버지는 늘 맥주컵으로 소주를 드시곤 하셨는데 지금은 작은 것으로 잔이 바뀌었다.
그때 TV에서 늘 푸른 인생이라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이제 그만 상 치워라......뽀빠이가 간다 봐야 한다..."
"뽀빠이가 간다가 뭔데요 아버지...."
"아, 뽀빠이 몰라...옛날 군대 프로그램에 나오던 그 뽀빠이 말이야...."
"아,우정의 무대를 진행하던 그 뽀빠이 말이예요?...."
"그래 그 뽀빠이가 진행하는 거 엄청 재미있다....."


그래서 처음 보게된 프로그램 뽀빠이가 간다는 '늘 푸른 인생'이라는 프로그램 속에 있는 것인데 고령화 사회를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삶을 통해 어르신들께는 희망과 변화의 기회를 얻고 젊은이들에게는 인생의 지혜와 교훈을 얻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뽀빠이가 간다',  '찾아라 시니어스타', '내가 좋아하는 우리 소리'등 세 코너가 진행되는데 그중 유독 뽀빠이가 간다가 재미있다는 것이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웃음 속에 진한 슬픔과 눈물이 배어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엄마나 어머니 또는 아버지로 부르는 뽀빠이 이상용씨의 진행은 구수하고 아들처럼 친근했다.



"엄마, 남편은 어디다 버리고 오셨어?"
"남편이 더 있다 가라 했더니 딴년 얻으러 갔는가봐...."
"몇 년 전에...."
"35년...."
"그럼 40살에 혼자 되셔서 혼자 31년을 혼자 사셨어?"
"결혼 후 1년만에 늑막염이 걸려서 병원도 못가고 앓다가 20년만에 하늘나라로 갔어 애기들만 7남매 낳아놓고...."
"아픈데 애기는 어떻게 그렇게 많이 났어 엄마..."
"그냥 났어 내가..."
"내가 신랑한데 어떻게 애를 그렇게 잘 만들어 했더니 신랑이 그러데....."
"거기도 아프겠어 내가?..."

또 다른 할머니와의 대화

"엄마는 언제 혼자 되셨어요..."
"하도 오래되어서 잘 기억이 안나네....중국으로 깨를 팔러 가라고 했더니....뒷산 숲으로 깨를 팔러 갔는지 가서는 안오네...."

지금도 깨를 팔러 간다는 의미가 잘 모르지만 뒷산 숲은 할아버지의 무덤을 이르는 듯했다.아픈 과거를 이야기 하면서 울고 웃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웃다가 눈물이 그렁그렁 해지곤 했다.
쌍둥이를 키우면서 굶어서 눈뜨고 있어도 하늘이 캄캄해 결국 아이 하나를 주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며 바람 피우던 남편 때문에 첩과 한 방에서 잠을 잤다는 이야기, 아이를 낳고 미역국을 끓여 주었는데 동네 개미들이 미역국 속에 들어가 지금도 그 힘으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 6.25 전쟁 당시, 하마터면 폭격 맞아 죽을 뻔한 아들이 시어머니덕에 살은 이야기 등등...

TV 속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웃다가 때로는 눈물이 그렁그렁하시는 아버지....
모든 것이 풍족해진 요즘 아버지가 살던 어린 시절의 찢어진 가난과 슬픈 삶의 이야기 속에 해학과 역설적인 슬픔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했다.
형과 형수님이 출근하고 나면 늘 혼자 계시는 아버지에게 뽀빠이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아들같은 대화 상대였고 또 함께 울고 웃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경로당에서 만나는 친근한 이웃처럼 느껴지는 듯했다.
아버지 덕분에 알게된 늘 푸른 인생의 한 코너인 " 뽀빠이가 간다"가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 쭈욱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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