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 용 그려준 동네 형 알고보니.....

2008. 11. 10. 22:16세상 사는 이야기

가족과 함께 모처럼 사우나에 들렀다. 콘도에 있는 사우나는 바닷가 가까운 곳에 있어 맑은 해수에 몸을 담그면 오래도록 몸이 촉촉해서 너무 좋다. 버블스파를 하고 황토사우나실로 들어가 땀을 쭉 빼고 해수탕에 들어가면 정말 개운하다.
아들과 함께 서로 등을 밀어주고 난 후 사우나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세 사람이 서서 사우나를 즐기고 있었는데 그 중 한명의 등에는 용이 한 마리 꿈틀거리고 있었다. 다른 곳은 깨끗한데 등쪽에만 어지럽게 용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의 일이 생각났다.
당시 나는 학교에서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으로 소문이 나있었다.초등학교 때 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여 대회 나갈 때 마다 상을 탔고 중학교 때에는 포스터나 만화를 잘 그려 3년내내 미화부장을 맡아 환경정리하느라 애를 먹곤했다.
있는 집 아이들은 3km 되는 등하교 길을 신나게 달려가곤 했는데 나는 늘 걸어다녔고 어쩌다 친구가 가방을 자전거에 실어주면 자전거를 따라 열심히 뛰어가곤 했다. 다행히 중학교 3학년 때에 버스가 다녀 편하게 등하교를 할 수 있었다.
졸업을 앞둔 그 해 겨울 방학 때의 일이다.집에서 집안 일을 도우려고 마당을 쓸고 있는데 불쑥 동네 형이 찾아왔다.
"야, 네가 이 동네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린다며?..."
대뜸 저 혼자 이야기를 시작한 동네 형은 다짜고짜 등에 용을 그려달라고 했다.
어디서 구했는지 용 그림이 그려진 것을 내어 놓으며 이것과 똑같이 그려 달라고 했다.
"아이고 멀쩡한 피부에 왜 낙서를 해요..."
"친한 친구와 내기를 했는데 아무도 그려주지 않아 네게 부탁하는 거야....그리고 네 그림 솜씨면 잘 그려줄 거라고 믿어.."
싫다고 해도 날마다 와서 채근하는 형은 고등학교를 다니다 스스로 그만두고 일찌감치 사회로 나가 취직을 했다.
무엇을 하는지는 몰라도 늘 깔끔하게 차려입고 다녀 동네 아이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는데....
날마다 당시 가장 맛있다는 맘모스빵과 음료를 사들고 오는 형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허락을 했다.


"대신 잘못 그려도 나를 탓하지 말아요....."
"걱정하지마....이 그림대로 그대로 그려주기만 하면돼..."
그리고는 그림그리는 연필로 먼저 본을 뜨기 시작했다.
몸이 비대해서 처음에는 원하는 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한 시간여 동안 연필로 용을 그리고 난 후 펜으로 선명하게 용을 그려 넣었다.
양 어깨의 중앙에서 시작된 용머리와 엉덩이 꼬리뼈 부근까지 내려온 용꼬리가 제법 욱일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닮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용의 비늘을 그려넣는 것으로 끝이 났는데 쉬엄쉬엄 약 다섯 시간이 걸렸다.
거울을 들여다본 형은 아주 만족스러운 듯 씨익 웃었다.
"고맙다...정말 고마워..."
그리고 까맣게 잊었던 그림을 다시 보게 된 것은 다음해 여름 강변에서 였다.
당시 우리 마을 앞에는 하천이 큰 것이 있었는데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친구들과 함께 수영을 하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온 형을 만났는데....아뿔사 형의 친구들 등에는 하나같이 용이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그것도 물 속에 들어가서도 지워지지 않는 용......
그제서야 그때 내가 그려준 것이 문신을 하기 위해 그린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때 네가 그려준 그림이 제일 나 보이지?..."
하면서 씨익 웃던 형.......그랬다 형은 읍내에 술집에 취직해 단체로 문신을 하게 되었고 날짜가 촉박해지자 용그림을 구해서 내게 부탁을 했던 것이었다. 당시 시골에서는 조폭이나 깍두기라고 하지 않고 깡패라고 했는데 형이 바로 깡패생활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부모가 돌아가시고 일가친척이 없다보니 아예 고향을 떠난 후로는 소식을 들을 수 없던 동네 형....문득 사우나에서 문신을 한 사람을 보면서 31년 전 일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림 그리기를 너무 좋아했지만 가난과 아버지의 반대로 포기했던 화가의 꿈..... 지금은 아들이 미대입시를 준비중인데.. 아들이 원하는 길이니 적극 밀어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