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경찰을 위한 위안부가 있었다?

2008. 6. 25. 08:07세상 사는 이야기

올해 73세 되신 경비아저씨는 아내의 가게에서 경비를 본다.가끔 들를 때 마다 내가 겪지 못한 이야기를 해주시곤 하는데 이번에는 6.25 때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해주셨다.그때 아저씨는 열 다섯 살이었다고 한다.
원래 고향이 양양이었던 아저씨 가족은 해방과 더불어 서울로 가다 홍천군 서석면에 정착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목상을 해서 각지역을 돌아다니며 바쁘게 살았는데 예전에 여관을 하던 집에는 그곳의 경찰과 관공서 사람들이 머무르곤 했다고 한다.
그러던 1950년 6.25가 발발하고 남하하던 북한군과 내면 뱃재고개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때 국군의 식량을 조달했는데 국군의 후퇴와 함께 가족은 피난을 포기하고 산속으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그때 지리산 토벌군으로 갔다 돌아오지 않는 경찰의 아내도 있었는데 두 가족이 산에 숨어있다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밤에 몰래 집으로 내렸왔다고 한다.
그런데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인민군이 와서는 아버지를 잡아 갔다고 한다.
빨간완장을 찬 북한군 앞잡이가 아버지의 과거를 고해 불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고 한다.
특히 앞잡이에게 겉은 앞잡이 노릇을 해도 속은 변하지 말고 기다려라 대한민국이 꼭 승리할 것이라고 충고를 해준 것이 화를 자초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친척이 별판(별을 단 장성이라고 함)가족이고 경찰을 비호하고 군식량을 배급했다는 사실로 고발되었는데
며칠 뒤 팔순 할머니를 제외한 가족 모두 옛 파출소 유치장에 불려갔고 그곳에는 경찰부인도 잡혀있었다고 한다.
즉결 심판도 없이 밤에 불려 나가면 모두 죽여 파묻는 다는 이야기를 들은 가족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고 한다.
죽을 사람들은 마지막 식사 때 사제밥 한 그릇에 향을 피워주곤 했는데 밥 한톨 먹지 못하고 9일간 굶고 있던 가족 들에게 사제밥 3공기와 물 그리고 향을 피우는 것을 보고는 죽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마침 인민군복을 입은 세 명의 수상한 사람이 체포되었는데 밤새도록 조사를 벌이느라 가족들이 하루를 넘겼다고 한다.잡힌 사람들을 조사하다 국군이 다시 대대적으로 공습을 벌여 이곳으로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인민군들은 부랴부랴 짐을 싸서 후퇴하는 와중에 할머니가 갖다준 도끼로 나무로 된 유치장 문을 부수고 모두 옥수수밭으로 도망갔다고 한다.
다시 국군이 내면까지 밀어올리고 마을에는 다시 경찰이 치안을 맡게 되었는데 이상한 것은 경찰들의 행동이있다는 것이다.
피난을 가거나 혼자된 과부들은 경찰들이 겁탈을 하고 죽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는데 하루는 아저씨의 누님과 지리산 토벌을 갔다 돌아오지 못한 경찰 부인을 산으로 끌고 가서는 협박을 했다고 한다.
스스로 옷을 벗지 않으면 가족 모두 죽이겠다며 위협했는데 경찰부인은 끝내 거부하자 죽였다고 한다.
누님은 가족 모두를 죽인다는 협박에 눈물을 머금고 몸을 허락했는데 망신창이가 된 누님이 돌아와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리자 대노한 아버지는 경찰을 찾아 나섰고 이것을 안 경찰은 오히려 아버지를 체포해서 홍천경찰서로 끌고 갔다고 한다.
목상을 하면서 이곳저곳을 다니던 아버지는 전쟁이 나기 전에도 경찰이 혼자사는 과부들을 겁탈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자신의 딸까지 그럴 줄은 몰랐다며 노발대발 했는데.......
경찰은 오히려 아버지를 빨갱이로 만들어 죽였다고 한다. 그것도 치밀하게 계획하고 아버지를 풀어준 것처럼 소문을 내고 뒤를 쫓아 솔치고개를 넘을 때쯤 아버지를 죽이고 그곳에 파묻었다고 한다.
후환이 두려웠던 경찰이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라고 했다.
어려서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아버지가 월북한 인민위원장으로 되어 있었고 자신이 연좌제에 걸려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아저씨의 주변에는 늘 경찰들이 붙어다녔고 회사에도 취직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분한 마음을 짓누르지 못한 아저씨는 가슴을 쾅쾅 치며 진정시키곤 했는데.....
더 충경적인 것은 전쟁 때 갈곳없는 피난민 중 혼자남은 여자나 과부들은 따로 관리하며 겁탈을 서슴지 않았다고 하는데 설마 경찰이 그럴리가 했던 아저씨도 누님이 당하는 것을 보고는 확실하게 믿게 되었다고 한다.
남면 약덕원에서는 10여명의 여자가 경찰들에게 상습적으로 겁탈당하다 모두 죽여 파묻었다고 한다.
마치 일제시대 위안부를 둔 것처럼 ........
구체적으로 파출소 옆 방공호에 묻고는 그곳을 아예 콘크리트로 덮어 버렸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동안 수도없이 이런 사실들은 알리려고 했고 법원이나 변호사를 만나 보았지만 진술만으로는 범죄여부가 성립되니 않는다며 거절당했다고 한다.
살면서 억울한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남들에게 이야기해도 믿어주지 않는 현실.....그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이 글썽이는 아저씨....이렇게라도 이야기 하니 마음이 후련하다고 했다.
조만간 아저씨가 기록한 자료를 블로그를 통해 공개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