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 독서(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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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웃음 이동호 웃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그 사람을 바라보면 마음이 가볍고 즐겁습니다 그후 고향을 떠난지 몇 십년 어느덧 이순의 강을 지나 고향에서 문득 그 사람을 다시 만났습니다 벌써 여든이 넘은 할머니는 얼굴에 온통 주름투성이 였는데 웃는 모습은 늘 한결 같았습니다 주름진 얼굴 위에 웃음은 왜 늙지 않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얼굴로 보여지는 웃음이 아니라 마음으로 웃는 웃음 때문이었지요 사람들이 모두 할머니처럼 마음으로 웃을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상상만으로도 참 유쾌한 하루입니다
2007.12.03 -
해바라기
해바라기 이동호 짝사랑을 해본 사람은 안다 한여름 볕이 왜 저토록 뜨거운가를.... 제 가슴이 시커멓게 타는 줄도 모르고 오직 한 곳을 바라보고 섰는 나도 저 해바라기처럼 오직 그대만 바라보는 꽃이고 싶다
2007.12.03 -
매미
매 미 이동호 천 날을 땅 속에서 속울음 울다 설움 끝에 걸린 햇살을 타고 지상으로 향하는 소리꾼 맴 맴 맴 마침내 터진 혼의 소리 득음이다
2007.12.03 -
자유
자유 이동호 두 해 동안 기르던 새를 날려 보냈다 남아있는 빈 집에 바람이 왔다가고 아침 햇살이 머물다 갔다 새가 날아간 뒤 새보다 자유로운 건 새가 아닌 새의 집이었다
2007.12.03 -
가장 아름다운 그림
가장 아름다운 그림 이동호 어머니는 이름 없는 화가였다 하지만 나는 집안 어디에서도 붓이나 물감을 볼 수 없었으므로 어머니가 화가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모심는 날 새참을 이고 논두렁을 걷고 감자꽃 흐드러진 고랑 사이를 오가며 한여름 뙤약볕 아래 호미질 하고 늦은 밤 호롱불 아래 침침한 눈으로 내 양말을 꿰매시던 어머니 잠시도 쉴틈없으시던 어머니는 언제 내 가슴 벽에 저토록 생생한 그림을 그려 놓으셨을까 지금도 어머니 그리운 날에는 살아 생전 평생 마음으로 그린 가장 아름다운 그림 한 폭 내 가슴 벽에서 꿈틀거리곤 한다
2007.12.03 -
바퀴벌레
과실치사 이동호 오후 세 시 창밖에 유월 햇살이 뜨겁다 점심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배가 헛헛하다 가장 간편한 게 무얼까 식빵을 토스트기 위에 올려 놓는다 갑자기 토스트기 안에서 무언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덜컥 소리와 함께 빵이 튀어 오르고 아무 생각 없이 빵을 집어드는 순간 빵에 박혀있는 곤충의 다리 하나 조심스럽게 토스트기 안을 들여다본다 벌렁 누운 채 죽어있는 바퀴벌레 세 마리 한동안 쓰지 않던 토스트기 안에서 남아있던 빵 부스러기를 포식하다 무방비 상태로 전기구이가 되었다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살상을 했다는 것 빵을 휴지통에 버리고 토스트기 안의 시체들을 양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완전범죄를 모의한 나 그때 창밖에서 주시하던 햇살이 내게 총을 겨누었다 당신을 과실치사 및 ..
2007.11.29 -
갈대
갈 대 이동호 가을에는 그대 마음 속에서 서걱이는 바람소리로 눕고 싶다 오랜 기다림으로 마지막 눈물 한 방울 마저 가을 햇살에 내어주고 가만히 몸을 흔드는 저 들녘의 갈대처럼 나를 비움으로써 더 가벼워지도록 나를 버림으로써 더 자유로울 수 있도록 가을에는 그대 마음 속에 숨어 지는 노을로 편지를 쓰고 싶다 모든 것을 다 주었으므로 더 이상은 기다림이라는 이유로 더 이상은 그리움이라는 이유로 당신을 구속하지 않겠노라고 그리하여 다시 오는 가을에는 그대가 떠나는 길목에서 하얗게 부서진 웃음이 되어 마음 편히 그대를 바라보고 싶다
2007.11.29 -
건빵
건 빵 이동호 심심풀이로 건빵을 먹다가 건빵에 뚫린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단추 구멍보다 작은 구멍 속엔 파란 하늘과 가을 설악산과 텅 빈 바닷가 그 위로 잿빛 갈매기 끼룩끼룩 날고 있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작은 구멍 하나에도 세상이 가득 담겨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는 이 희열감 팍팍한 건빵을 먹다 덤으로 얻은 즐거움 세상이 아름답다
2007.11.29 -
나는 평온할 것이다
나는 평온할 것이다 이동호 나는 잠들어있다 잠 속에 꿈꾸는 나를 풀어 논 넥타이가 내려다본다 넥타이 속에는 아직 빠져 나오지 못한 내 정신이 헐떡이고 있다 나보다 나이가 열 살이나 어린 김과장은 내 눈에 가시다 아니다 김과장 눈에 내가 가시다 눈치없이 명퇴도 안하고 자리에 앉아 있는 건 비굴한가 김과장의 조소가 목을 조르지만 조소 뒤에서 웃는 가족을 생각하며 오늘도 나는 꿋꿋하게 견뎌냈다 잠에서 깨어난 아침 출근을 서두르며 넥타이를 매는 사이 밤새 목 졸린 내 정신이 비로소 이불 속에 눕는다 그가 출근해서 돌아올 때까지 오늘 하루도 나는 평온할 것이다
2007.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