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칼 들고 남편 찾아온 아내 왜?

2012. 1. 10. 07:00세상 사는 이야기

당구장에서 만난 지인의 아내

임진년 새해를 맞이한지 벌써 일주일이 지나고 이제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맘 때면 그동안 뵙지 못한 친척과 친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뜨곤 하는데 저 역시도 고향 떠난지 25년만에 귀향한 친구를 만난다는 생각에 벌써 부터 마음이 설렙니다.

고향을 떠난 후 연락이 닿지 않던 친구를 다시 만난 건 지난 해 추석 때였습니다.
너무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회포를 풀고 음식점을 나온 친구가 옛날 생각이 난다며 당구 한 게임 하자더군요.
예전에 처음 당구를 배울 때 부터 호적수였으니 한 판 붙기로 하고 바로 근처에 있는 당구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당구장 문을 열고 들어서다 깜짝 놀랐습니다.
당구장 카운터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예전에 알고 지내던 지인의 아내였는데 문득 고향을 떠날 때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습니다.

"어머,,안녕하세요?"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지인의 아내...
"아..오래 전 카페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여기에....."
"5년전 카페를 그만두고 지금은 당구장을 하고 있어요..."
"사장님은 어디 가셨나요?"
"오늘 모임 때문에 일찍 나갔어요.."
엉겁결에 인사를 나누고 친구와 함께 당구를 치면서도 자꾸 옛이 떠올라 집중이 안되더군요.


부엌칼을 들고 나타난 지인의 아내 왜?

그때가 아마 고향을 떠나기 2년 전이었던 1992년 겨울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겨울이면 마땅한 일거리가 없던 사람들이 소극장에 모여 화투를 치거나 포커게임을 벌이곤 했습니다.
나보다 오래 전에 이곳에 정착한 지인은 오랫동안 도박을 해왔는데 가구점을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상인회에 가입한 나는 얼굴도 익힐 겸 사람들과 만나 술 한 잔을 하다 자연스레 화투와 포커게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한 판이 조금씩 커지고 귀가 시간도 점점 늦어져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에 들어가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혼이었던 아내의 불만도 커지고 부부싸움도 잦아졌습니다.
갖은 핑계와 거짓말로 아내를 속이고 도박을 하던 어느 날 지인의 아내가 갑자기 들이 닥쳤습니다.
화가 잔뜩난 모습의 지인 아내.....아!....그런데 손에 부엌칼이 들려 있더군요....
순간 사태를 짐작한 지인이 재빨리 컴컴한 극장 안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빨리 못나와 이 나쁜 놈아..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다시는 도박하지 않겠다고 약속한지 하루도 안됐는데 여기서 또 이짓을 하고 있냐 인간아?"
"약속한대로 손목을 잘라줄테니 빨리  나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지인의 아내에 놀라 모두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려고 할 때 지인의 아내가 이렇게 소리치더군요.

"또 한 번 내 남편하고 도박을 하는 사람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다음 번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바로 경찰에 신고할테니 그리들 아세요..."

지인이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도박을 좋아해 지인의 아내가 참다 참다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 같았습니다.


독해 보였던 지인 아내 덕분에...  

그 일이 있은 후 지인 얼굴을 한동안 볼 수 없었고 다른 사람들도 극장에서 도박을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무섭고 단호했던 지인의 아내......
그 모습을 보면서 내 아내도 지인 아내와 똑같은 마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해 겨울 왜 그리 담배도 많이 피고 밤새도록 도박에 빠졌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올해로 도박을 끊은지 18년 담배를 끊은지는 13년 되었습니다.
그때 부엌칼을 들고 나타났던 지인 아내가 독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은인으로 여겨집니다...ㅎㅎ.....

당구장 카운터에 앉아 열심히 뜨개질을 하고 있던 지인 아내...
그때 일을 까맣게 잊은 것일까요?.

아니면 알면서 애써 모르는 척 해준 것일까요. 
당구장을 나설 때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을 이번 설날에 또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