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기억하는 최강 구두쇠 아주머니

2012. 1. 11. 10:45세상 사는 이야기

여성시대에서 흘러나오던 구두쇠 이야기

어느 덧 아내의 나이가 오십을 훌쩍 넘었다.

아줌마 소리를 들은지는 이미 오래고 어느덧 할머니 소리르 듣곤 하는데 그럴 때 마다 아내는 얼굴을 찌푸리곤 한다.
미대를 다니는 아들 둘을 뒷바라지 하려면 아직도 몇년은 더 고생해야 한다며 혀를 끌끌 차는 아내....
그런데 며칠 전 아침 출근길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양희은과 강석우의 여성시대를 듣게 되었다.
마침 그때 주제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구두쇠 혹은 수전노에 대한 사연을 낭독하는 시간이었는데 그것을 듣던 아내가 불현듯 생각난 듯 어릴 적 구두쇠 아주머니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아내가 기억하는 구두쇠 아주머니

아내가 초등학교를 다닌 곳은 강릉이었다.
주변에 경포대와 경포 호수 그리고 바다가 가까운 곳에 있는 학교를 가려면 날마다 2km를 걸어가야했다.
학교를 가는 길은 한적한 숲길로 커다란 노송들이 자라고 있어 어릴 적 혼자 다닐 때는 무서웠다고 한다.
아내가 살던 마을엔 여섯 가구가 살았는데 살만하다는 사람들이 살던 기와집이 두 채 나머지는 모두 가난한 소작농이었다고 한다.

아내의 집뒤의 기와집은 당시에 머슴을 부릴 정도로 재력이 있는 집이었는데 찔러서 피도 나오지 않을 만큼 구두쇠였다고 한다.

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아주머니는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법도 없고 집밖을 나오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늘 절간처럼 조용했고 머슴만 날마다 청소하랴 농사지랴 분주했는데 어느 날 검불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아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뒷집 머슴이 아버지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투는 이유가 마당에 떨어진 검불이었다고 한다.
검불이란 소나무 잎이 말라 떨어진 마른 솔잎을 말한다. 


땔감이 귀하다고 마당에 떨어진 검불까지....

마땅한 땔감이 없던 당시 가을이면 겨울에 방을 지필 땔감이 필요했는데 소나무 숲으로 된 곳이라 자연스레 검불로 겨울 을 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뒷집 아주머니 땅에서 늘어진 소나무 검불이 자연스레 아내 집 마당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었는데 머슴을 시켜 마당에 있는 검불을 긁어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주머니의 명령이니 할 수 없이 머슴은 갈퀴를 들고 아내 집 주변의 검불을 긁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마당을 긁다가 아버지와 실랑이가 벌어진 것이라고 했다.

있는 집에서 너무 한다고 불같이 화를 내던 아버지 모습에 뻘쭘해진 머슴이 가만히 서있자 담넘어로 얼굴을 비친 아주머니가 머슴을 다그쳤다고 한다.
"우리 집 소나무에서 떨어진 검불을 긁어 오라는데 뭔 말이 그렇게 많노....퍼뜩 긁어 온나..."
그말에 아버지는 더 이상 따질 수 없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그집 전답을 소작하고 있었고 아버지도 그집 전답을 부치고 있던 때라 밉보이면 그것마저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끼는 것과 야박한 것은 분명 다른 것인데 너무 하네....
그때 마을 사람들이 수근거리던 소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는 아내.
골프장이 들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고향집...그 솔숲길이 지금은 너무 그립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