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삶의 멘토였던 행복전도사 최윤희

2010. 10. 9. 12:07세상 사는 이야기


어제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아침 식사전 습관처럼 컴퓨터를 켜고 자리에 앉는 순간 눈앞에 최윤희 부부가 자살했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전국을 돌며 행복을 전파하던 행복전도사 최윤희씨의 죽음을 접한 아내가 전기에 감염된 듯 몸을 부르르 떨며 컴퓨터 앞으로 다가와서는 움직일 줄 몰랐다.

10년전인가 서점에서 우연히 사다준 책 한 권..."행복 그거 얼마예요?"를 접하고 나서부터 열렬한 팬이 되었던 아내...
그녀의 신간이 나오면 바로 주문할 정도로 열렬한 팬이 되었고 자신의 롤모델이라며 입버릇처럼 이야기 하던 아내에게 그녀의 죽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 그 자체였다.
어떤 상황에도 좌절하지 않고 당당히 일어선 최윤희씨의 자전적 삶의 이야기를 통해 행복한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늘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된 아내....

나와 결혼한 후 아내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무일푼으로 시작해 일어설만하면 불행이 찾아들었다.
가게가 경매로 넘어가고 힘들게 의류 대리점을 열었을 때는 개업도 못하고 공중분해되어 큰 손실을 입었다.
업친데 덮친 겪으로 마지막이라고 여겼던 사업마저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해 더 이상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었다.
그 힘든 과정을 특유의 모성애로 견디던 아내에게 최윤희씨의 책은 가뭄 속 단비처럼 달콤했고 삶의 희망을 던져준 씨앗이었다.
그런 그녀가 운명을 거부하고 스스로 삶을 마감했으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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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무렵 아내의 가게에 들렀다.
가게를 정리하던 아내가 먼저 말을 건넨다.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내리네....행복전도사가 떠난 것을 알기 때문인가?..."
"그러게 가을비라서 그런지 더 기분이 착 가라앉네.."
"최윤희씨 책 한 권 가져가도 될까?"
"없어.... 오늘 동네 아줌마들이 다 빌려 갔어...."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비는 그치질 않는다.
마치 살아서 그녀가 남긴 희망의 말들이 빗방울로 쏟아지듯이....

운명이라는 녀석은 성격이 참 이상하다
내가 운명에 복종하면 나를 지배하려들고 내 위에 군림하는 왕이 되려고 한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운명을 얕잡아보고 무시하고 한 수 제쳐버리면 나한테 무릎을 꿇고 꼼짝도 못하는 하인이 된다.


절망과 희망은 일란성 쌍둥이다
언제나 함께 붙어 있다.
우리가 어느쪽을 보느냐에 따라서 인생은 희망이 되기도 하고 절망이 되기도 한다
어떤 비참한 역경속에서도 희망의 비상구는 반드시 있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것.
인간이 위대한 것은 눈물을 웃음으로 뒤집어버릴 수 있다는 것..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냄새가 향기가 되기도 하고 향기가 냄새가 되기도 한다

나폴레옹은 말했다
.

지도자는 희망을 파는 상인이다!
나는 살짝 수정해서 말하고 싶다.
진짜 멋진 리더는 희망을 무료로 분양해주는 사람이다!
그렇다. 진짜 멋진 리더는 주변 사람들의 능력을 풀가동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눈, 비 그리고 사람.
이 세 가지는 멀리서 보아야 아름답다
창을 통해 바라볼 땐 그지없이 아름다운 눈과 비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흙탕물로 변하고 질퍽여서 처치 곤란일 때가 많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세히 알면 알수록 실망하기 쉽다


만약 아무 생각없이 막무가내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마치 유효기간이 지난 통조림처럼 페기처분될 수도 있다.
아니 당연히 폐기처분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스스로 푸르게 푸르게 만들어 간다면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비한 효과를 드러내는 산삼처럼 많은 이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칡뿌리를 씹어본 사람은 안다.
처음엔 씁쓸하지만 오래오래 씹을수록 묻어나는 단맛의 감미로움....
잊혀지지 않는 음악 같은 맛....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고통도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칡뿌리 같은 것이다.

칭찬그라를 남발하고 살자.
남발이라는 단어는 대게 부정적인 뜻에 쓰인다.
공약남발, 돈남발, 마약남발, 사기남발,.....
막무가내 펑펑쓰고 낭비하는 것. 그러나 칭찬만은 얼마든지 남발해도 좋다.
너와 내가 또 우리가, 세상이 모두 다 행복해지는 복권과도 같은 효력을 지녔다.

나는 엄청 인물덕을 보고 사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혹시 대단한 절세미인? 이렇게 오해하실 분이 있을지 몰라
빨리 말하겠다. 나는 나 스스로 나를 포기한 사람이다. 물론 생김새에 국한해서만 여기서 포기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마음을 비웠다는 뜻이다.
얼굴 덕분에 정신이 한차원 높아진 셈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경지는 도인들이나 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일치감치 얼굴 따위가 뭐 그리 대단한가!로 방향을 돌린 것이다.
내가 아직도 얼굴에 매달려 살아왔다면 얼마나 불행했을까 . 그리고 인생의 폭이 얼마나 좁아졌을까....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나는 지금 충분히 자유롭고 넘치도록 행복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