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농사 망친 형님의 뼈 있는 한 마디..

2010. 10. 5. 09:41세상 사는 이야기

지난 주에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적어도 2주일에 한 번은 고향에 가는데 연로하신 아버지를 뵙고 또 혼자 농사를 짓는 형님 일을 도와 주러 갑니다.
그런데 요즘 형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1년 동안 고생한 쌀농사 수확을 포기해야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태풍도 피해가고 일조량도 괜찮았는데 이상하게 잎만 무성하고 쌀알이 박히지 않았습니다.
늘 짓고 있는 고추농사와 옥수수 그리고 올해 처음 심은 야콘도 다 괜찮은데 왜 쌀농사만 이럴까....
곰곰히 생각하던 형님이 무심코 한 마디를 던지더군요...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셨다면 이렇게 형편없지 않았을텐데....'

사실 그동안 농사일을 해온 것은 형님이지만 실질적인 농사일을 진두지휘 한 것은 팔순 아버지였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형님이 전적으로 농사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힘든 일은 품삯을 주고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말부터 기력이 떨어지신 아버지가 농사일을 접고 난 후 올 처음 형님 혼자 농사를 지었는데 결과는 너무나 쓰라렸습니다.


멀리서 보면 잎이 무성한 것이 농사가 잘 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면 성한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2주일전 고향에 갔을 때 논의 모습입니다.
앞에만 고개 숙인 쌀알이 보이고 다른 곳은 쌀알이 박힌 곳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곳은 가운데 두 곳만 성해보입니다.


그렇다면 고개 숙인 곳은 괜찮을까요?
장화를 신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것마저 성한 것이 없습니다.


한창 여물어 가는 벼에 검은 혹 같은 것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형님 말로는 일명 깜부깃병이라고 하는 흑수병에 걸려서 그렇다는군요...
벼 속에 검은 가루가 생기는 전염병이라고 하는데 일단 발병하면 고치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동안 옥수수 깜부기나 보리 깜부기는 봤지만 벼에도 깜부기가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1500평 되는 논에 듬성듬성 자라고 있는 쌀알.....그마저도 이놈의 깜부깃병 때문에 수확을 할 수 없다고 하네요.


한 다랑이의 논만 그런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짓고 있는 세 곳 모두 똑같습니다.
예전과 똑같이 농사를 지었을 뿐인데 사상 최악의 농사가 되었다며 허탈해 하는 형님
농사는 정성인데 날마다 논을 둘러보며 마음을 주던 팔순 아버지의 손길이 닿지 않아 흉작이 되었다며 한 마디 합니다.

'그동안 밭농사는 어렵고 논농사는 쉽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잘못 생각했어...'
'아버지의 연륜과 경험이 이렇게 소중한 줄 정말 몰랐어....'

때로는 지나치게 잔소리 하는 아버지 때문에 화도 났었고 시도때도 없이 논으로 달려가시던 아버지 마음을 농사를 망치고 난 후에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고합니다.

여든 여덟번의 손길이 가야 비로소 한톨의 쌀알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허투루 생긴 것이 아니라며 소중한 교훈을 얻은 것으로 위안을 삼겠다며 씁쓸하게 웃는 형님 모습을 보니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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