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피는 엄마 때문에 얼굴이 새카맣다는 아이

2010. 9. 6. 08:27세상 사는 이야기

지난 주 군대에 간 아들의 방을 청소하다 문득 초등학교에 다닐 때 쓴 일기장을 발견했다.
일기장을 보니 12년전 특기적성 교육을 하며 날마다 일기장 검사를 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대학을 졸업한 86년 이후에 나는 서울에서 학습지 회사와 학원에서 강사를 하다 94년 이곳에 내려와 학원을 운영하며 초등학교 특기적성 교육을 지도했었다.
지방이라 강사를 구하기 힘들어 관내 여섯 개 초등학교를 돌며 아침 저녁으로 강행군을 해야 했는데 수업이 끝나고 나면 입에 단내가 나곤 했다.

저학년인 경우에는 바다와 산 호수로 직접 나가 관찰하고 난 후 생생한 느낌을 쓰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커 현장학습과 체험학습을 자주 나가곤 했는데 학교에서는 사고 우려 때문에 적극 반대했지만 평소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이 없는 부모님들은 언제나 대환영이었다.

해수욕장에서 조개껍데기를 줍고 모래성을 쌓던 일.... 방파제에서 게를 잡고 난 후 쓰레기를 청소하던 일.....아이들과 함께 합동으로 환경 신문을 만들던 일 ....도자기 만들기 체험을 하고 난 후 돌아올 때 먹었던 순대와 떡볶이 그리고 라면 맛도 아직 잊지를 못한다.   



일기하면 생각나는 얼굴이 검은 아이

현장학습이나 체험학습이 없는 날에는 방과 후 교실을 빌려 수업을 하곤 했는데 그중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 일기 지도였다.
몇년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기검사가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고 지적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고 아직도 찬반 양론이 팽팽하지만 수업할 당시에는 일기지도가 글쓰기 지도에 중요한 수업의 일부분이었다.

무엇이든 강요에 의해 쓰는 것은 좋은 효과를 볼 수가 없는데 일기 역시 억지로 쓰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생각이 열려있는 아이와 닫혀있는 아이의 모습이 일기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게 마련이다.

일기 쓰기가 귀찮아서 그냥 날씨와 한 일만 쓰는 아이가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그날 그날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아이도 눈에 띘는데 그중 한 아이는 일기를 정말 잘 썼다.

아이가 생각하는 내 얼굴이 검은 이유는?

늘 한 장이 모자랄 만큼 빼곡하게 쓴 일기 속에는 가정에서 일어난 일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이 자세히 적혀 있었고 아이의 생각도 세세하게 나타나 있었다.
그중 아직도 기억이 나는 일기 내용이 있는데 바로 "내 얼굴이 검은 이유"..이다.

평소 다른 아이들 보다 얼굴이 새카만 아이는 종종 친구들의 놀림을 받아 속상하다는 이야기를 일기 속에 적곤 했는데 자신의 얼굴이 시커먼 이유를 엄마 때문이라며 이렇게 적어 놓았었다.

"엄마와 아빠가 또 싸웠다.
엄마 뱃속에 내 동생이 있는데 엄마가 자꾸 담배를 피우기 때문이다.
어제 학교가 끝나고 집에 들어가니 재털이에 담배꽁초가 가득했다.
담배를 피우면 아기한테 안좋다는데 엄마는 왜 자꾸 담배를 피울까
혹시 나를 낳을 때도 엄마가 담배를 피워 내 얼굴이 시커먼 것은 아닐까?
제발 동생은 나처럼 얼굴이 검지 않았으면 좋겠다."

담배를 피워 얼굴이 검게 변했다는 아이...
분명한 것은 엄마가 오래전 부터 담배를 피워왔고 임신한 후에도 끊지 않아 아빠와 자주 싸웠다는 사실이다.
일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산모의 흡연이 태아의 두뇌 중 행동을 규제하는 부분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유난히 얼굴이 얼굴이 검었던 그 아이.....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