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수능 망쳤던 아들 그후 1년 ...
2009. 11. 16. 09:24ㆍ세상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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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수능도 끝이 났다.
해마다 수능 때면 열병을 앓는 학생들과 부모님의 모습을 볼 때 마다 마음이 아리곤 한다.
며칠 전에 아내와 함께 들렸던 낙산사에도 수능을 기원하는 수많은 신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난해 수능을 보았던 아들의 일이 생각났다.
중학교 때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다 3학년이 되어서야 결정을 내린 아들은 예고에 진학하게 되었고 나름 최선을 다해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3년 내내 기숙사 생활과 학원을 오가며 노력했고 지난 해 수능시험에 응시했다.
하지만 시험이 끝난 후 아들은 전날 긴장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고 감기 기운 때문에 집중하지 못한데다 시험이 어려워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수능발표가 있던 날 아들과 아내는 심하게 다투었다.
수능 성적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아들은 성적이 나빠 원하던 대학에 원서를 쓸 수 없으니 재수를 하겠다고 하고 아내는 재수만큼은 절대로 시킬 수 없다며 다른 대학으로 진학할 것을 종용했다.
며칠동안 설전을 벌여도 뜻을 굽히지 않는 아들과 아내는 심하게 다투었고 분을 참지 못한 녀석은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평소에 재수는 절대 시키지 않겠다는 아내의 말에 이견을 달지 않던 녀석이 고집을 부리는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나역시도 재수 보다는 다른 대학이라도 자신의 적성에 맞는 대학에 진학해서 열심히 하는 것을 원했다.
집을 나간 녀석은 2층 아파트 계단을 걸어 올라가 15층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순간 이 녀석이 몹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고 그곳에서 약 한 시간 가량 아들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좋은 대학 원하던 대학을 가지 못해도 네 적성에 맞는 곳에 가서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네가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하는 상실감이 어떤지 아빠도 잘 알고 있어.....아빠도 예전 대학에 진학할 때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했고 그때 너만큼 속상했단다."
"집안이 가난해서 원하던 미술대학은 꿈도 못꾸고 학비를 대줄 수 없다는 할아버지 때문에 야간대학을 갈 수 밖에 없었단다."
"어느 대학을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네 자신이 얼마나 노력을 많이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단다."
"인터넷을 통해서 네가 원하고 궁금했던 모든 것을 다 취할 수 있을 만큼 세상은 많이 변하지 않았니..."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아빠는 다른 대학에 진학해서 네 적성에 맞는 학업을 계속했으면 좋겠다.."
아들은 계속 묵묵부답 말이 없었지만 내말에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그리고 며칠 후 아들은 다른 대학에 원서를 제출했고 세곳 중에 두 곳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처럼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응모전에 응시하는 등 학교 생활에 열의를 보였다.
또 자신의 판단에 따라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한 후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지난 여름 방학 때 아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지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아빠는 네가 15층에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아니 왜요.."
"왜긴 왜냐....성적을 비관해서 혹시 잘못된 생각을 하지 않을까 걱정해서지..."
"그런 생각을 안한 건 아니지만 제 자신에게 대해 너무나 화가 났고 막 밀어부치는 엄마 때문에 자리를 피하고 싶었어요..."
"대학 생활은 만족스럽니?"
"종교재단이라서 새벽기도 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지만 다른 것은 특별히 힘든 일이 없어요..."
"아빠가 늘 이야기 한 것처럼 잘 될 거라는 믿음과 좋은 일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한 것 같아요..."
"너, 지금 아빠한테 아부하는 거지...ㅎㅎ.."
이제 얼마 있으면 겨울 방학을 하고 아들은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동생녀석은 형의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며 형의 전철을 밟지 않을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너스레를 떤다.
내년이면 다시 수능을 보게 될 동생에게 자주 문자를 띄우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겪었던 수능의 실패를 동생이 되풀이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같았다.
"수능 실패가 인생 실패는 아니라는 것을 내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술을 마실 때 무심코 던진 아들의 말이 생각할수록 대견스럽게 느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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