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면 생각나는 추억의 특선영화 한 편

2009. 9. 30. 08:01세상 사는 이야기

요즘은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아니다 TV나 케이블 방송을 통해서 보긴 한다. 그렇지만 직접 영화관을 찾아가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지금이야 대형 상영관이 생겼지만 지난해 까지만 해도 시장에 있는 작은 영화관 하나가 고작이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추석이 다가오면 늘 기억나는 영화가 한 편 있다.
아마도 어릴 적 시골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나와 같은 경험이나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실 내가 살던 마을에는 시골이었지만 군부대가 많아서 멋드러진 극장이 하나 있었다.
당시에 읍내에서도 이런 영화관을 보기 힘들 정도로 멋진 극장이 촌에 생겨 생각지도 못한 호사를 누린 것은 마을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고향에 남아있는 40년된 극장......지금은 창고로 쓰이고 있다>

문화적인 혜택이라고는 누릴 것이 없는 당시 극장이 생기면서 영화를 통해서 서울의 모습이며 외국의 문화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돈이 없어 가난한 동네 아이들은 늘 극장 화장실 창문으로 월담을 하다 들켜 화장실 청소를 하거나 영화가 끝날 때 까지 돌멩이를 들고 벌을 서기도 했다.
하지만 동네 극장도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영화 한 편 보기 하늘에 별따기 였다.

10km가 넘는 읍내로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문제는 돈이 없어 보고싶은 영화가 와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골 아이들에게 명절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다.
명절 때면 용돈이 일년 중 가장 두둑해 그것으로 읍내로 영화를 보러 가는 아이들로 버스는 늘 만원이었다.
버스 안내원이 구겨넣은 사람들로 만원인 차량에 몸을 싣고 영화를 보러 갔던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마 지금으로 부터 약 31년 전쯤의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해 추석 특선 영화는 성룡이 나왔던 취권이었다.

취권이 나오기 전까지 동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배우는 이소룡이었다. 
동네에 극장이 있었을 때 몇 편 본 것이 전부였지만 아이들은 이소룡 따라하기에 열을 올렸었고 이소룡 사진이나 이소룡에 관한 책을 갖고 있는 아이들은 최고의 인기를 얻곤 했었다.
또 멋진 쌍절곤을 갖고 있는 아이도 있었고 나무로 깍아서 만든 쌍절곤을 돌리며 괴성을 지르곤 했었다.
당시에 쌍절곤을 만들기 위해 남의 개줄을 몰래 끊다 개에 물린 아이도 있었고 개를 잃어버린 사람도 있을 정도 였으니 이소룡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소룡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영화가 동네를 발칵 뒤집어 놓았는데 바로 성룡의 취권이었다.
당시 추석 특선 영화로 취권이 왔을 때 3일을 상영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영화가 입소문을 타면서 밀려드는 사람들로 극장은 대박을 터트렸다.
이소룡을 닮은 듯한 몸매에 뛰어난 무술 실력을 겸비한 성룡 모습과 예전의 권선징악의 단조로운 방식에서 벗어나웃음을 가미한 영화 취권은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최고의 청량제였다. 

요즘 말로 연일 만원 사례였는데 당시 그 극장의 간판을 그리던 동네 선배는 열흘간 서서 볼 자리도 없을 정도로 연일 만원이었는데 덕분에 다른 간판 두개를 그려야 하는 품을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상대방을 제압하는 성룡의 모습은 극장에서 상영이 끝난 후에도 여진이 대단했다.
학교 내에서도 성룡의 모습을 따라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당시 초중학교 학생들도 성룡의 취권을 흉내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또 소풍 때에는 교련복을 입은 채로 술을 마신 녀석들이 취권을 흉내내다 선생님께 혼쭐이 나기도 했었다.
당시 이승현이 출현했던 얄개시리즈와는 전혀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던 영화 '취권'은 지금도 추석이 되면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