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우울한 소식이 많았던 추석 고향 이야기

2009. 10. 4. 10:29세상 사는 이야기

올 추석은 유난히 짧아서 그런지 추석같지 않고 주말에 집에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명절이었습니다.
추석 전날인 금요일 저녁 고향에 갔다 아침 성묘를 다녀온 후 오후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올해는 그 어느 때 보다 마음이 무겁고 쓸쓸했던 추석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추석 무렵이 되면 동네를 돌며 밤을 줍고 대추를 따러 다니기도 했고 친척들을 모두 볼 수 있다는 기대로 늘 들떠 있었습니다.
일년중 가장 풍성한 음식이 차려지는 추석에 어머니와 함께 빚던 송편과 엿기름으로 돌돌 무친 강냉이 강정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3년전 아들만 사형제 키우시느라 고생만 하시던 어머니 돌아가신 후 혼자 남으신 팔순 아버지는
외로움 때문이신 듯 부쩍 말수도 적어지고 기력도 몰라보게 쇠약해지셨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를 돌며 보따리상을 하는 막내는 올 추석에도 참석을 하지 못했습니다.

몇년전 이혼을 한 막내에게는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가 하나 있는데 올 추석에도 부모없이 쓸쓸한 추석을 맞았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팔순아버지를 대신해서 농사를 지은 형님은 부쩍 얼굴이 타고 고단해 보였고 또 현장소장인 셋째 동생은 지방으로 내려가 무척이나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가장 안타까웠던 소식은 사촌 여동생 소식이었습니다.
여동생 아들이 6개월전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의사의 잘못으로 식도를 6cm 가량 잘랐다고 합니다.
그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다 이번에 다른 병원에서 평생장애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잘려진 식도 때문에 아이가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자꾸 토해 마치 아사직전의 아이처럼 비쩍 말라버린 외손주를 볼 때 마다 속이 타들어 간다는 작은 아버지와 어머니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처음에는 의사가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고 재수술 후 경과를 보자는 말에 참고 있었는데 6개월이 지난 지금 평생 장애를 갖고 살아야 한다는 판정에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고향 친구들 소식도 마음을 무척이나 아프게 했습니다.
어릴 적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중 나를 제외한 한 명만 고향을 찾았습니다.
아홉명의 불알 친구중 둘은 먼저 세상을 떠났고 다섯명의 친구들이 사정 때문에 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동안 의류제조업으로 잘 나가던 친구는 부도로 종적을 감춘지 오래 되었는데 이번 추석에도 고향에 오지를 못했습니다.
어머니 마저 치매로 고생하시는데 생활이 넉넉치 못한 둘째 동생이 어머니를 돌보느라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또 한 친구는 폐결핵으로 병원에 입원해 고향에 오지를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재건중학교를 나와 늘 건설현장으로 돌며 열심히 살아온 친구였는데 초기에 발견하지 못하고 병을 키워 병원에 입원중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나이 오십이 다 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한 친구 역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속사정을 이야기 하지 않아 궁금했지만 이젠 친구들도 더 이상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습니다.
변변한 농사일도 없을 뿐만 아니라 막노동판을 돌아다니는 친구....
거기에 숫기까지 없어 여자들을 사귈 기회마저 없었던 듯합니다.
국제결혼 이야기도 몇번 오갔고 또 직접 다녀온 적도 있는데 현지에서 사기를 당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그 후로는 국제결혼 이야기만 나오면 펄쩍 뜁니다. 

해가 지날수록 한가위 풍경이 너무나 빨리 바뀌는 것 같습니다.
하나 둘 세상을 뜨시는 동네 어르신과 고향을 떠나 소식을 알 수 없는 친구며 이웃들의 소식.....그리고 해가 갈수록 도시화 되어가는 고향의 모습에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늘 한가위만 같아라............그말이 무척 공허하게 느껴졌던 추석 풍경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