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에 냉소적인 아바이 마을 왜?
2009. 9. 11. 10:40ㆍ세상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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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8일 금강산에서 개최된 남북적십자회담에서 9월 26일 부터 10월 1일까지 제17차 이산가족 상봉에 함의함에 따라 2007년 10월 마지막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후 2년여만에 다시 이루어지게 되었다.
추석을 기점으로 열리는 이번 상봉에는 이산가족 100명만 만날 수 있도록 해 아쉬움을 주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상시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이산가족 상봉은 2000년 8월15일 광복절을 시작으로 모두 16차례 이루어 졌는데 이중 대면상봉자가 16차례 1만 6212명이며, 2005년 이후 진행된 7차례의 화상상봉자가 3748명을 포함해 총 1만9960명이 상봉했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에 철저하게 소외된 곳이 있다. 바로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 마을이다.
6.25전쟁으로 피난 와 속초 청호동에 정착한 실향민들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열여섯 차례에 걸친 남북이산가족 상봉에 단 한명도 상봉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지역정서를 감안해 속초시의회(의장 김성근)는 8일 제185회 임시회를 열고 ‘속초 아바이마을 실향민 남북이산가족 상봉 실현 건의안’을 채택했다.
“꿈에 그리던 북의 가족 상봉과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아바이마을 실향민 1세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실향민 1세대들 생전에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 배려해 줄 것 간곡히 원한다”는 건의문을 통일부와 대한적십자 총재 앞으로 발송했다고 한다.
필자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 재개 소식과 건의문 채택으로 기대를 걸고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 마을을 찾아가 보았다.
전쟁이 끝난 후 청호동(靑湖洞)에는 함경도(咸鏡道)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많이 거주했는데 그중 함경도(咸鏡道)'아바이'가 가장 많이 살고 있다고 해서 아바이 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알음알이로 어렵게 청호동 경노회관을 찾았다.
공교롭게도 경로회장은 아산병원에 입원해 만날 수 없었고 대신 경로당에 나와 있던 실향민 몇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번 추석 이산가족 상봉 소식 들으셨죠?...혹시 벌써 신청하신 분이 계신가요?"
"이산가족 상봉이요?....해봐야 되지도 않을 텐데 그런 걸 왜 합니까? "
냉랭한 반응에 놀랐지만 재차 다시 물었다.
"왜 안된다고 단정을 지으세요.....이번에 의회에서도 건의문을 올렸던 데요..."
"단정이요?....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 몇번이나 한줄 알아요?...."
"그렇게 이산가족 상봉 많이 했지만 이곳 사람들 중에 상봉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혹시라도 신청한 사람이 있나 알아보려면 동사무소나 갯배가 있는 신포마을로 가서 물어봐요..."
경로회관을 나와 동사무소에 들려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 문의했지만 자세히 알지 못했다.
이곳저곳 전화를 해보더니 대한적십자로 문의를 해보거나 강릉지사로 알아보는 것이 빠를 것 같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동사무소에서 나와 청호대교를 건너 신수로가 뚫리면 섬으로 변할 신포마을로 가보았다.
이곳은 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지로 알려진 곳으로 맑고 깨끗한 청호동 해수욕장과 또 실향민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갯배가 있는 곳이지만 청호대교 개통과 함께 마을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항만으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 주민들과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청호대교 아래 신포마을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화투를 치고 있었다.
인사를 건네고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한 분이 계시느냐고 물었다.
"여기 이산가족 상봉한 사람 아무도 없어..."
예의 냉소적인 대답이다.
"왜 이산가족 신청을 안하는지 모르고 왔나?"
"그동안 이산가족 수차례 했지만 이곳 사람들은 한 사람도 상봉한 사람이 없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제발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라서 늘 이산가족 상봉에서 제외되는 것이여..."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일부러 제외를 시킨다는 말씀인가요?"
"정부에서 포함시켜 준다고 해도 북측에서 제발로 남한으로 내려간 놈들은 이산가족 상봉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거야..."
"오죽하면 이산가족 상봉도 옛날에 훈장도 많이 타고 빽이 있어야 간다는 소리를 하겠어...."
"정부와 북한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쇼에 우리는 그동안 혹시나 하고 늘 헛물만 켜고 있었지..."
"이젠 포기하고 그냥 망향의 동산에 뼈를 묻는게 맘 편해...."
아바이 마을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다.
여기서 살 때는 신청해도 안되던 사람이 남쪽으로 이사를 가더니 이산가족 상봉을 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도 들렸다.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실향민 1세대는 고작 40명만 생존해 있는 청호동 아바이 마을...
이산가족 상봉 소식이 들려올 때 마다 허탈과 상실감만 커진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실향민들...
그들의 한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다.
추석을 기점으로 열리는 이번 상봉에는 이산가족 100명만 만날 수 있도록 해 아쉬움을 주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상시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이산가족 상봉은 2000년 8월15일 광복절을 시작으로 모두 16차례 이루어 졌는데 이중 대면상봉자가 16차례 1만 6212명이며, 2005년 이후 진행된 7차례의 화상상봉자가 3748명을 포함해 총 1만9960명이 상봉했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에 철저하게 소외된 곳이 있다. 바로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 마을이다.
6.25전쟁으로 피난 와 속초 청호동에 정착한 실향민들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열여섯 차례에 걸친 남북이산가족 상봉에 단 한명도 상봉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지역정서를 감안해 속초시의회(의장 김성근)는 8일 제185회 임시회를 열고 ‘속초 아바이마을 실향민 남북이산가족 상봉 실현 건의안’을 채택했다.
“꿈에 그리던 북의 가족 상봉과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아바이마을 실향민 1세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실향민 1세대들 생전에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 배려해 줄 것 간곡히 원한다”는 건의문을 통일부와 대한적십자 총재 앞으로 발송했다고 한다.
필자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 재개 소식과 건의문 채택으로 기대를 걸고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 마을을 찾아가 보았다.
전쟁이 끝난 후 청호동(靑湖洞)에는 함경도(咸鏡道)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많이 거주했는데 그중 함경도(咸鏡道)'아바이'가 가장 많이 살고 있다고 해서 아바이 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알음알이로 어렵게 청호동 경노회관을 찾았다.
공교롭게도 경로회장은 아산병원에 입원해 만날 수 없었고 대신 경로당에 나와 있던 실향민 몇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번 추석 이산가족 상봉 소식 들으셨죠?...혹시 벌써 신청하신 분이 계신가요?"
"이산가족 상봉이요?....해봐야 되지도 않을 텐데 그런 걸 왜 합니까? "
냉랭한 반응에 놀랐지만 재차 다시 물었다.
"왜 안된다고 단정을 지으세요.....이번에 의회에서도 건의문을 올렸던 데요..."
"단정이요?....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 몇번이나 한줄 알아요?...."
"그렇게 이산가족 상봉 많이 했지만 이곳 사람들 중에 상봉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혹시라도 신청한 사람이 있나 알아보려면 동사무소나 갯배가 있는 신포마을로 가서 물어봐요..."
경로회관을 나와 동사무소에 들려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 문의했지만 자세히 알지 못했다.
이곳저곳 전화를 해보더니 대한적십자로 문의를 해보거나 강릉지사로 알아보는 것이 빠를 것 같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동사무소에서 나와 청호대교를 건너 신수로가 뚫리면 섬으로 변할 신포마을로 가보았다.
이곳은 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지로 알려진 곳으로 맑고 깨끗한 청호동 해수욕장과 또 실향민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갯배가 있는 곳이지만 청호대교 개통과 함께 마을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항만으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 주민들과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청호대교 아래 신포마을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화투를 치고 있었다.
인사를 건네고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한 분이 계시느냐고 물었다.
"여기 이산가족 상봉한 사람 아무도 없어..."
예의 냉소적인 대답이다.
"왜 이산가족 신청을 안하는지 모르고 왔나?"
"그동안 이산가족 수차례 했지만 이곳 사람들은 한 사람도 상봉한 사람이 없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제발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라서 늘 이산가족 상봉에서 제외되는 것이여..."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일부러 제외를 시킨다는 말씀인가요?"
"정부에서 포함시켜 준다고 해도 북측에서 제발로 남한으로 내려간 놈들은 이산가족 상봉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거야..."
"오죽하면 이산가족 상봉도 옛날에 훈장도 많이 타고 빽이 있어야 간다는 소리를 하겠어...."
"정부와 북한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쇼에 우리는 그동안 혹시나 하고 늘 헛물만 켜고 있었지..."
"이젠 포기하고 그냥 망향의 동산에 뼈를 묻는게 맘 편해...."
아바이 마을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다.
여기서 살 때는 신청해도 안되던 사람이 남쪽으로 이사를 가더니 이산가족 상봉을 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도 들렸다.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실향민 1세대는 고작 40명만 생존해 있는 청호동 아바이 마을...
이산가족 상봉 소식이 들려올 때 마다 허탈과 상실감만 커진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실향민들...
그들의 한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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