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팔아주다 봉변당한 경비아저씨

2009. 7. 20. 23:09세상 사는 이야기

장마가 끝나고 나면 이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될 것이라고 합니다. 해마다 이맘 때면 가장 바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스크림 할인판매점입니다. 온도가 1도 올라갈수록 매출이 몇 배 올라간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만큼 여름철 온도는 아이스크림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아내가 있는 상가에도 몇년전 부터 아이스크림 할인판매점이 들어왔는데 지난해에는 폭염으로 인해 호떡집 불난듯 아이스크림이 많이 팔렸다고 합니다. 일매출이 2백만원을 넘기기도 했는데 여름 특수가 끝난 후 다른 사람에게 가게를 넘겼다고 합니다...이번에 아이스크림점을 인수한 사장님은 나이가 많은 분이셨는데 주변 사람의 말만 듣고 아이스크림점을 인수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지난해 여름이 끝난후 비수기에 가게를 인수한데다 주변 마트에서도 아이스크림을 할인하면서 매출이 뚝 떨어졌다고 합니다.
12평 정도 되는 좁은 가게 안에서 아이스크림 냉동고 돌아가는 소리와 뜨거운 열기에 시달리던 사장님은 건강이 좋지 않아 가게를 비우는 일이 잦아 졌다고 합니다.
혈혈단신 혼자라 가게를 봐줄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적자인데 종업원을 둘 수도 없는 사정을 딱하게 여긴 경비 아저씨가 종종 아이스크림을 팔아주곤 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나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일주일에 한번 정도 들러 1~2만원어치의 아이스크림을 사다 냉동실에 넣어두곤 합니다.


어제 아내의 퇴근 시간에 맞춰 가게에 나간 길에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어제도 사장님은 보이지 않고 경비아저씨가 짬을 내서 가게를 보고 계셨습니다.
상가 내 약 20여개의 가게 경비를 보는 아저씨는 올해 75세로 이곳에서만 10년이 넘게 근무하고 계시는데 늘 상가 가 사람들에게 신망이 두터워 무엇이든 믿고 맡기곤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제는 경비 아저씨의 표정이 너무나 굳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하고 여쭈니 너무나 황당한 사람 때문에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며 자초지종 이야기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다섯 시쯤 오십이 조금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일곱살 가량의 아이와 함께 아이스크림점을 찾았다고 합니다.
아이와 함께 온 것을 몇번 본 적이 있는 아주머니였는데 늘 아이와 함게 다니는 것으로 봐서는 손녀 같았다고 합니다.
이것저것 바구니에 아이스크림을 골라온 아주머니는 경비 아저씨가 꼼꼼히 가격을 체크하면서 노트에 메모를 하자
"아저씨, 사장도 없는데 뭘 그리 꼼꼼하게 하세요. 갯수만 세고 대충대충 계산하고 좀 깍아 주세요."
"죄송합니다....제 가게면 깍아드리겠는데 남의 가게를 봐주는 것이라서 대충해드릴 수가 없고 가격도 이미 50% 할인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격을 깍아주는 대신 서비스로 몇개 더 넣어 주세요..."
"죄송합니다,금방 말씀 드렸잖아요....남의 가게를 봐주는 것이라서 내맘대로 할 수가 없다고요.."
"아저씨 참 말귀 못알아 들으시네....주인이 없으니 그렇게 해달라는 건데 왜 그리 융통성이 없어요..."
그러면서 급기야는 인신공격을 하더랍니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이런 별볼일 없는 곳에 10년이나 붙어 있지...이런 코딱지만 한 가게에서 있는 이유를 이제 알겠네...."
손녀인듯한 여자아이가 보는 앞에서 언성을 높이며 핏대를 올리는 아줌마는 대꾸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속사포처럼 아저씨를 타박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아저씨 보고 뭐라그러는지 아세요?....머슴 같대요..시키는 일만 잘해서...."
엄밀하게 말하면 딸 같은 사람인데 그것도 아이가 보는 앞에서 어떻게 저런 막말을 할까 그것도 아이스크림 가격 깍으려고.....정말 기가 막히고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대꾸해봤자 언성만 더 높아지고 심한 막말이 나올 것이 뻔하고 주변이 시끄러워질까 꾸욱 참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인이 몸이 아파 못나왔다고 하면 괜히 아저씨가 수고하시네요 하면서 위로를 하는데 이 아주머니는 주인이 없으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과 제 손녀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 뻘 되는 사람에게 막말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내가 경비일을 잘못해서 듣는 소리라면 그 어떤 심한 말이라도 다 듣겠지만 남의 일 도와주다 봉변을 당했더니 더 화가 나네....."
어릴 적 할아버지처럼 주변에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늘 도와주고 또 집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나 과일을 가져오고 남들이 버린 화분에 화초를 예쁘게 심어 키우는 등 삭막한 이곳 상가에 정을 나눠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또 낚시를 좋아하셔 틈만나면 고기를 잡아다가 이웃에게 나누어 주곤 합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아저씨가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는 것인데 머슴이라니......
삐딱한 생각과 행동으로 아저씨에게 막대한 그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마음이 착잡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