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피서철이면 생각나는 천막 영화관

2009. 7. 26. 10:53세상 사는 이야기

본격적인 피서철이 시작되었다. 이맘 때면 이곳 동해안을 찾는 사람들로 도로는 주차장이 되기 일쑤다. 이런 날 차량을 끌고 이동할려면 곤욕을 치루곤 하는데 이럴 때 마다 어릴 적 여름날이 생각나곤 한다. 1970년대 초에는 바캉스나 피서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기껏해야 동네 어른들이 계곡이나 강변에서 즐기는 천렵이 고작이었는데 이런 여름날 가장 시원한 피서는 바로 천막 영화관이었다. 당시에는 시골 마을에 왜 천막 영화관이 들어왔을까 늘 궁금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주변에 군부대가 많고 하천이 워낙 넓어서 영화관을 설치하게에 최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국민학교 앞 너른 강변에 천막을 치기 시작하면 동네 아이들은 영화를 볼 기대에 부풀곤 했고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형들은 몰래 영화관에 들어갈 궁리를 하곤 했다. 영화를 보고 싶은데 돈이 없어 결국 월담(천막이니 월막이라고 해야하나?)을 시도해야 했다. 영화를 보기 위해 다큰 녀석들이 엄마등에 업혀 들어가다 걸리기도 했고 화면 뒤로 천막을 들고 들어가 고막이 다치는 줄도 목이 아픈 줄도 모른 체 보기도 했다. 심한 경우에는 칼로 천막을 찢고 들어가다 걸려 혼쭐이 나기도 했는데 끝날 때 쯤이면 꿰맨 자국들이 누더기처럼 너덜거리곤 했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그때 가장 인기있던 영화는 서부영화였다.당시 반공에 대한 교육이 워낙 강한데다 놀이라는 것도 나뭇가지로 만든 칼이나 총으로 즐기던 총싸움과 칼싸움이 고작이었던 때라 서부영화는 정말 인기 만점이었다. 이때 보았던 서부영화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프랑코 네로가 주연으로 나왔던 '장고'와 존웨인이 주연으로 나왔던 '서부의 4형제'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석양의 무법자'등이었다. 한국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장동휘 주연의'팔도 사나이'였다. 동네에 TV가 한 대 밖에 없던 시절 대형 화면에서 보여지던 영화는 더위에 잠못이루던 마을 사람들에게는 시원한 강변에서 보는 영화 한편이 최고의 피서였던 셈이었다.

간혹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무료로 영화를 보여주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때면 사방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운동장이 꽉 차곤 했다. 그때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섬마을 선생'이었다. 영화 내용보다 더 인상깊은 것은 이미자의 노래였는데 늘어지는듯 이어지는 이미자의 목소리에 넋을 빼앗기곤 했다. 당시에 이미자에 관한 뜬 소문도 많이 돌았는데 하늘이 내려주신 이미자의 목소리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에서 이미지의 목을 샀다는 둥 일본으로 귀화시키려고 한다는 둥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천막 영화관이 오지 않더니 이듬해인가 동네에 번듯한 동네 영화관이 출현했다. 당시에 읍내에도 영화관이 하나밖에 없을 때였는데 읍에서 8km나 떨어진 시골 구석에 영화관이 생기기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직도 남아있는 40년전 영화관....지금은 물류창고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영화관은 늘 성황을 이뤘다. 주변에 군부대에서 늘 단체관람객이 줄을 이었고 각 학교에서도 늘 단체관람객으로 만원을 이루곤 했다. 단체관람객이 가장 많았던 것은 배우 김창숙과 신일룡이 나오던 '증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당시 한국영화에 단골로 나오던 영화배우들은 장동휘,박노식,독고성,허장강,최무룡,황해,김진규,등이었는데 그중에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것은 박노식 주연의 용팔이 시리즈였다.신성일이 주연으로 나왔던 맨발의 청춘과 김진규와 김지미,윤정희,신성일, 남궁원이 나왔던 민비시해 영화 '전하 어디로 가시나이까'도 기억에 남는 영화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그때의 영화관을 둘러보곤 하는데 지날 때 마다 어릴 적 영화를 보기 위해 월담을 하던 기억과 화장실 창문으로 기어들다 걸려서 돌을 머리 위에 이고 벌을 서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강변에서 마을 사람들을 부르던 천막 영화관.....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짜릿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