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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하나 사이 처갓집을 둔 형님이 행복한 이유

2009. 5. 10. 20:38세상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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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어버이날에 모처럼 삼형제가 모였습니다. 중국에 있는 막내만 빼고 모두 모였는데 정작 어버이날은 일 때문에 찾아뵙지 못하고 다음날 아버지를 찾아 뵈었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혼자되신 아버지는 외로움 때문에 무척 많이 야위셨고 연로해서 농사일 짓기 벅차 늘 형님 혼자 새벽에 나가 농사일을 하고 출근하곤 합니다.
물론 가끔 짬을 내 나와 동생들이 농사일을 거들고는 있지만 멀리 있는 관계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이번 어버이날 같은 경우도 건설사 현장소장으로 있는 동생은 일 때문에 오지 못하고 나 역시도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갑자기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경기도에 있는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형님은 어버이날 다음날 아침에 고추를 심기로 해놓았는데 갑자기 일이 꼬인 것에 적지 않이 실망하신 듯했습니다.아들의 수술 날짜를 잡고 다음날 새벽에 내려가겠노라 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아버지...동생과 다음날 최대한 빨리 고향에서 만나기로 하고 내려온 시각이 10시 30분경이었습니다. 서울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오는데 생각보다 차량이 막혀 옷갈아 입을 사이도 없이 고추뱥으로 가 보니 고추밭에는 벌써 고추들이 모두 심어져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고개를 갸웃뚱하며 집으로 들어서니 아버지는 힘에 부치셨는지 씻고 잠들어 계셨고 형님은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루종일 해야할 일을 그렇게 빨리 끝낼 수 있었냐고 물으니 형님 사돈댁 두 부부가 도와줘서 금새 끝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난 번에 고향에 왔을 때 형님과 아버지와 함께 두럭을 만들고 검은 비닐을 씌워놓아서 8명이 2500포기의 고추를 다섯 시간만에 모두 심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로 고추농사를 포기하자는 형님 말씀에 아버지는 35년간 지어온 고추농사를 그만 둘 수 없다며 대신 조금 줄이기로 하고 계속 고추농사를 짓고 있는데 아버지가 고추농사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해마다 정성껏 말린 태양초 고추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사일 때문에 가장 힘든 사람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농사를 짓는 형님이었는데 형님이 2000평이 되는 적지 않은 논과 밭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사돈댁 부부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형님과 형수님은 어릴 적 담 하나 사이 위 아래에 함께 살던 이웃사촌이었고 형수님은 나 보다 두 살이나 어린 동생이었는데 형님과 결혼하면서 졸지에 형수님이 되었습니다.문제는 형님이 결혼 후 멀리 있는 직장 때문에 분가를 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형수님은 읍내로 이사할 것을 원했고 형님은 부모님이 계시는 집을 놔두고 분가할 이유가 없다는 문제로 자주 다투곤 했습니다. 그런데 처갓집이 가깝다보니 다툰 후 쪼르르 친정으로 가버리는 형수님 때문에 부모님과 형님은 무척 힘들어 했습니다.사돈이 되기 전에는 가장 친했던 이웃사촌이 사돈이 되고나서 오히려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형님은 형수가 친정으로 갈 때 마다 장인 장모와 처남들을 만나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평소에 형님의 성격을 잘 아는 사돈 어르신들은 형수님을 등 떠밀어 돌려보내곤 했습니다.하지만 사돈 어른이나 부모님의 마음 모두 편치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부모님 눈치 보지 않고 살고 싶은 형수님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어린 조카 둘을 키워주고 맞벌이 하는 형수님이 도움 받는 일이 더 많은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며 늘 속상해 하셨던 어머니.....그리고 어머니 돌아가신 2년 후 모든 집안 일을 도맡게 된 형수님이  친척들이 모두 모였던 추석 때 어머니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이제야 알았다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모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부모님 모시는 것이 싫다는 형수님과 한 지역에 살면서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형님.....그 속에서 묵묵히 속을 삭이며 기다리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마음이 형수님에게 전달되기 까지 약 2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요즘 형수님이 진심으로 시댁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은데 그중에 가장 달라진 점은 혼자 되신 아버님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마지못해 하는 듯했던 행동이나 말투 속에 진심이 담겨 있고 형님과의 사이도 너무나 좋아보입니다. 형님과 형수님의 응어리졌던 갈등이 해소되자 모든 것이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사돈과의 관계도 예전 이웃사촌처럼 다시 가까워졌고 농사일이 힘들 때 마다 서로 돕는 모습은 동네 사람들에게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이번에도 형수님 말 한 마디에 새벽부터 고추를 심어준 형님 손위 처남댁 부부와 손아래 처남댁 부부는 지난 해에도 고추를 딸 때와 김장을 심을 때도 늘 함께 했다고 합니다. 형제들에게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요즘 가끔 아버지가 우스개 소리로 형제보다 사돈이 낫다는 말을 하신다며 웃는 형수님.....다시 이웃보다 더 가까운 사돈이 되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모든 갈등을 견뎌낸 형수님과 처갓집이 가까운 형님이 요즘은 정말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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