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어머니가 담근 마지막 돌배술을 보니....

2009. 4. 20. 11:25세상 사는 이야기

요즘은 부쩍 고향에 자주 가게 됩니다. 2년전에 갑자기 어머니 돌아가시고 무척 외로움을 타시는 팔순 아버지를 찾아뵙고 농사일과 말벗을 해드리기 위해서 한 달에 두세번 다녀오곤 합니다. 맞벌이 하는 형님 내외가 출근을 하면 경로당에 가시는 일을 빼놓고는 늘 집에 혼자 계시는 팔순 아버지......적막강산의 빈집에서 아버지는 늘 TV를 켜 놓으시곤 합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방편인데 볼 때 마다 마음이 미어집니다.
지난 주 토요일에도 고향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동네 주변을 드라이브하고 점심 무렵에 꿩 막국수로 점심을 먹은 후 경로당에 모셔다 드리고 집에서 이것저것 정리를 하다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의 손때 묻은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어머니의 손때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화로.....이곳에 새마을주택을 짓고 이사 온 것이 78년이었는데 그 전부터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화로니까 30년이 넘었습니다. 군고구마를 굽거나 밤을 구워먹던 기억보다는 비 내리는 날이면 뒷마당에서 해주시던 메밀적, 장떡 등 부침개가 더 생각납니다.


무쇠솥 뚜껑을 뒤집어 놓고 들기름을 두른 후 부쳐주시는 부침개는 왜 그리 맛있었는지....처음 만든 것은 늘 아버지의 몫으로 남겨두시고 두번째 것부터는 4형제에게 고루고루 나누어 주시곤 하셨습니다. 지금은 먼지만 가득 쌓여있습니다.


예전에 곳간으로 사용하던 곳에는 어머니가 쌓아놓은 물건들이 가득합니다. 그중에는 고등학교 때 치던 기타도 남아있고 종다리며 함지박도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저것 뒤적이다 수상한 항아리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한번도 열어본 흔적이 없이 먼지가 가득 쌓여있는 항아리 하나.......뚜껑을 열어보니 비닐과 끈으로 밀봉을 해놓았습니다.


아, 그것은 바로 명절 때만 손님들에게 내어 놓으시던 어머니가 담근 돌배술이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인 추석 때 가족을 위해 내놓으셨던 마지막 돌배술....그것이 아직도 남아있을 줄이야.....어머니는 술을 입에도 대시지 않으셨지만 가끔 잣술이나 돌배술 등 손님 접대용으로 술을 담그시곤 했습니다. 이 술은 6년이 넘었는데 하나 가득 담궜던 항아리가 바닥을 드러낼 무렵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까맣게 잊고 있던 항아리였습니다.


소주만 좋아하시고 담근 술을 드시지 않는 아버지가 제게 주신 돌배술 한 병........앞으로 어머니 생각이 날 때 마다 아껴서 마실 생각입니다. 아직도 냉동실에 남아있는 어머니가 만든 냉동만두에 이어 돌배술까지....한동안 어머니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행복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