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내의 양파 스킨을 만드는 이유

2009. 4. 17. 16:24세상 사는 이야기

며칠 전 부터 아내가 양파 스킨을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요즘 외지로 부쩍 나다니는 일들도 많고 또 저녁에는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느라 정신이 없어 깜빡한 사이 2주일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현재 아내가 쓰고 있는 양파 스킨이 다 떨어지기 전에 미리 담궜어야 하는데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양양에 다녀오는 길에 이마트에 들러 양파 작은 것 한 망과 백포주를 한 병 샀습니다. 처음에는 포도주가 비싼 것이 무조건 좋은 줄 알았는데 스킨을 만드는데 비싼 것을 쓸 필요가 없어 요즘은 만원 안쪽의 백포도주를 사용합니다.내가 아내에게 양파 스킨을 만들어 주게 된 것은 약 1년 조금 넘었습니다. 새로운 사업을 한다고 2년이라는 세월을 허비하고 또 아내 몰래 투자했던 돈은 한 푼도 받지 못해 정신적 경제적으로 아내를 너무 힘들게 했었습니다.홧병이 난 아내와 난 3개월간 각방을 쓰게 되었고 급격하게 사이가 냉각되었습니다. 아무리 간격을 좁히려 해도 점점 멀리 달아나는 아내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습니다.

각방 후 내게 처음 부탁했던 양파 스킨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내게 시장을 좀 봐달라며 쪽지를 하나 건넸습니다. 맞벌이 하는 우리 부부 중에 시간이 넉넉한 내가 늘 시장을 보곤 합니다. 종업원도 없이 혼자 의류점을 하는 아내는 가게를 비울 수 없기 때문이죠. 그에 비해 시간이 자유로운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시간을 낼 수 있어 늘 시장보기는 내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장 볼 품목 중에 낯선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다른 것은 늘 시장을 보던 품목이었는데 백포도주가 눈에 띄었습니다. 술을 거의 하지 않는 아내가 무슨 일일까...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습니다.
그리고 시장을 본 그 다음날 불쑥 종이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그곳에는 깨알같은 글씨로 양파 스킨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었습니다.컴퓨터를 할 줄 모르는 아내가 누군가에게 듣고 적어온 것 같았습니다.


맨처음 쪽지에 적힌 대로 스킨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양파를 세네 개 껍질을 벗겨 알맞은 크기로 잘라서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 채에 받혀 놓으라고 적혀 있더군요. 양파를 까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군요...양파가 유독 매운 것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가 자신이 흘린 눈물만큼 울어보라는 의미에서 양파 스킨을 만들어 보라고 한 것일까요.... 아니면 세상살이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것을 느껴보라고 한 것일까요?


물기가 완전히 빠질 때 까지 채에 받혀 놓고 기다리는데 약 2시간의 시간이 흐른 듯 합니다. 양파에 물기가 다 빠진 후 깨끗하게 닦아 놓은 꿀병 속에 양파를 넣고 그 위에 백포도주를 담갔습니다.


그리고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밀봉을 시킨 후에 100일 후에 개봉해서 건더기는 거즈로 받쳐 걸러내고 남은 것은 다른 병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아내가 원하는대로 만들었는데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그렇게 오래 보관하지 않고 만든지 열흘정도 지난 후 사용해도 된다고 나와있더군요....하지만 아내가 사용하는 방법도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그리 나쁜 방법 같지는 않은 듯 했습니다.
그 후 자연스럽게 양파 스킨을 만드는 것이 내몫이 되었고 그것이 아내와 나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연결고리 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내와 나의 대화도 조금씩 늘어나고 사이도 조금씩 가까워졌습니다. 물론 그 속에는 아들 둘이 끊임없이 아내와 나를 이어주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묵묵히 반성하는 모습에 아내의 마음이 조금씩 열린 듯했습니다. 결국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아내 몰래 다른 일을 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극적으로 화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예전에 하던 일 열심히 하며 밤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증반을 다니고 있습니다. 곧 사회복지사로 편입과 함께 노인복지에 대한 일을 해볼까 생각중입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며 당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 사업에 눈돌리지 말라는 아내의 충고를 달게 받고 있는 중이지요....지금도 스킨을 만들기 위해 양파를 깔 때 눈이 아리고 눈물이 나는 것은 꼭 양파가 맵기 때문만은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