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면 생각나는 덕담 할아버지

2009. 1. 23. 22:10세상 사는 이야기

얼마 있으면 설날이다. 오늘부터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남쪽 지방은 대설주의보가 내리고 중부지방은 강풍에 한파가 맹위를 떨칠 것이라고 한다. 지난 해 워낙 경기가 좋지 않아 고향에 가는 것이 맘 편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역시도 부모님을 뵙기 위해서 설날 전에 갔다가 다음날 다시 올 생각이다. 어릴 적에는 1년에 가장 기다려지던 날이 설날이었다. 1년에 가장 맛난 음식에 세배돈도 받을 수 있는 날이라서 아이들에게는 생일보다 더 기다리지는 날이기도 했다.그 중에서도 설날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할아버지가 한 분 계셨다. 그 할아버지는 당시 92세로 동네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라서 설날이면 세배하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곤 했다. 해마다 다른 동네 사람까지 인사를  하러와 아이들이 인사를 하려면 시간에 맞춰 가야만 했다. 동네에서 가장 연장자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젊었을 때에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 퇴직을 하고 나서는 고향에 와 마을 이장을 오래 역임하신 분이라 세상 돌아가는 것을 훤히 꿰뚫고 계셨고 남의 일도 앞장서서 해결해 주기도 하셨다.
어른들이 세배를 하고 나면 11시쯤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세배를 하기 시작했는데 할아버지는 늘 세배를 받을 때 마다 덕담을 한 마디씩 해주셨다. 세배를 하고 나면 꼭 앞으로 오라하시곤 "너 누구 아들이지?"하고 묻고는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참 똑똑하게 생겼구나..공부 열심히 하거라.".......하시거나 무릎에 앉히시곤 "어디 고추 좀 볼까?.....이런 그새 많이 컸구나...밥 많이 먹고 씩씩하게 자라거라..." " 달리기를 참 잘하게 생겼구나....큰 운동선수가 되려면 열심히 하려무나..." 아이들 마다 덕담을 해주시곤 했다.

                                                                                <이미지 출처: 세계일보>

그리고 세뱃돈을 주셨는데 언제나 똑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일원짜리 동전 두 개를 건네주셨다. 늘 동네 사람들의 큰 어른으로 존경을 받다보니 사철 인생 상담소 역활을 했고 아버지는 정초에 할아버지의 덕담을 들어야 한 해가 무사히 잘 넘어간다며 웃으시곤 했다. 
한 번은 친구 아버지가 추수가 끝난 가을에 신작로에 벼를 널어 놓았다 운전기사의 신고로 경찰에 잡혀간 적이 있었다. 하루가 지나도 아버지가 오시지 않자 덕담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경찰서로 간 덕담 할아버지가 추후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할 시에는 책임을 지겠다는 연대보증을 서고 풀려나기도 했다.
또 마을에 쌀이 떨어진 집이 있을 때에는 몰래 다른 사람을 시켜 쌀을 갖다 놓기도 하셨고 쌀을 꾸러 가도 흔쾌히 꿔주기도 했다.
쌀을 모두 갚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런 일 때문에 언성을 높이고 싸웠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자는 아니었지만 소작농에게도 남들보다 더 후한 조건으로 농사를 짓게해 마을 사람들이 서로 지으려고 했다. 덕담 할아버지의 생신 때는 온동네 사람들이 모여 축제라도 하는양 떠들썩 했다. 장수 노인이라서가 아닌 동네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분이었기에 그날 만큼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어져 여흥을 즐기곤 했다.
그때 마다 틈만나면 마을 사람들을 위해 덕담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던 덕담 할아버지.....
수염이 길게 늘어지고 늘 한복을 입고 다니서던 덕담 할아버지는 안타깝게도 백세를 넘기지 못하고 아흔 아홉에 돌아가셨다.
지금은 고향에 가도 아무 흔적이 남아있지 않지만 설날이면 생각나는 덕담 할아버지.....
세상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두고두고 존경받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일 것이다.
IMF 보다 더 살기 어렵다는 요즘 마을이나 도시나 아니면 나라에도 덕담 할아버지처럼 존경받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