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자반 고등어 머리만 드신 이유
2009. 1. 19. 22:38ㆍ세상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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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신정보다는 구정이 더 정감이 가서 그런지 재래시장에는 어릴 적 운동회처럼 만국기들이 걸렸습니다. 일주일 남은 설날을 위해 미리 장을 보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재래시장을 볼 때 마다 마냥 기분이 좋아집니다.
오늘은 바람은 불었지만 오랜만에 날씨가 푸근해서 시장을 둘러보기 좋은 날입니다.
사실 시장볼 것도 별로 없었지만 습관처럼 시장을 돌다보면 문득문득 옛날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내 고향은 강원도의 영서지방인 홍천이었는데 어릴 적에 속초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에 살았습니다. 도로 옆 도랑을 건너면 바로 우리집 담일 정도로 도로 가까이 집이 붙어있었습니다.도로 건너편에는 당시에 빵구집이라는 카센타가 있었는데 이곳에는 속초에서 각종 해산물을 싣고 가던 화물차들의 집합소였습니다. 기사식당과 겸하던 곳이라서 짐을 가득 실은 차들이 설 때 마다 친구들과 함께 몰래 훔쳐 먹다가 걸려서 혼나기도 했습니다.
차에 가까이 가면 마른 오징어 냄새가 진동을 해 작은 손을 천막 안에 넣고 잡아당기면 오징어 다리만 뚝 떨어지곤 했는데 그 맛이 얼마나 맛있던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입에 침이 고입니다.
영서지방에서는 밭작물은 풍부하지만 해산물을 구경하기는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언감생심 고기반찬은 꿈도 못꾸다 명절 때나 되어야 고기반찬이 올라오던 때였습니다. 어릴 적 내륙지방에서 돼지고기나 소고기 보다 더 귀한 것이 해산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시장 입구에 만국기가 펄럭이고 있습니다. 민속 최대의 명절인 설날을 맞을 준비로 바쁜 재래시장 모습입니다>
<깔끔하게 잘 정리된 속초 관광 수산시장 벌써부터 사람들로 붐비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가을 한 해 동안 가마터에서 열심히 일하신 아버지가 노임대신 받은 옹기를 싣고 동해안으로 옹기장사를 떠나셨습니다. 커다란 차로 가득 옹기를 싣고 떠나면 아버지는 3개월에 한 번 정도 집에 오셨습니다.
그곳이 고성군의 해안 마을이었는데 리어카를 끌고 집집마다 돌며 항아리를 파셨는데 대부분 외상으로 주었다가 고기가 많이 잡히면 돈으로 받거나 해산물로 물물교환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집에 오실 때에는 늘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자반 고등어를 사오셨는데 그때 먹던 자반 고등어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버지는 늘 자반 고등어 머리만 드시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잘린 머리 아래 큰 몸통을 드리고 우리 사형제는 꼬리 부분을 따로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두육미라고 고기는 머리가 가장 맛있다며 뼈째로 꼭꼭 씹어드셨는데 아버지를 따라서 씹어본 나는 고기도 붙어있지 않고 먹기 불편한데 왜 맛있다고 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 뿐만 아니라 할머니가 드시다 남긴 껍데기며 뼈까지도 잘근잘근 씹어드시기도 하셨습니다.
자반 고등어는 머리 뒷쪽 조금 붙어 있는 살을 제외하고는 정말 먹을 것이 없는데 어떻게 아버지는 그렇게 맛있게 드셨을까?
그 이유를 이곳 바닷가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비로소 깨닳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장이기 때문에 먹고 싶은 자반 고등어를 마음껏 먹일 수 없는 미안함 때문에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우리 사형제 잘 먹지 않는 곳만 골라 드셨던 것이었습니다.부양가족이 많았던 아버지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고 또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가족이 편해보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뼈까지 맛있게 드셨던 것 같았습니다.
이곳 시장에서 자반 고등어를 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리를 잘라달라고 합니다. 집에 개나 고양이가 있는 사람들은 머리를 따로 싸 달라는 사람이 있고 또 간혹 아버지처럼 자반머리를 넣어 달라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형제들이 결혼 후에야 아버지가 자반 고등어의 몸통도 잘 드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새 할머니 어머니 모두 돌아가시고 팔순의 아버지는 입맛을 잃으셨습니다. 틀니를 하기 전까지는 계절마다 도루묵과 도치며 오징어를 사다 드렸는데 이제는 곰치국 이외에는 별맛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틀니를 하고 나니 입맛도 사라지신 듯 합니다.
늘 시장에서 자반 고등어를 볼 때 마다 고향에 계신 팔순 아버지가 생각나 가슴이 아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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