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할머니가 계란을 세일한 까닭은?

2009. 1. 19. 09:37세상 사는 이야기

요즘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폭설이 내린 후 푸근하다 싶으면 갑자기 한파가 닥쳐오기도 하고 또 봄 같은 날이 이어지고도 한다.
이렇게 일교차가 심한 날씨에는 건강관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며칠 전의 일이다. 그동안 푸근했던 날씨에 갑자기 기습한파가 닥친 날 재래시장을 찾게 되었다. 사실은 시장 위쪽의 달동네를 찾아가던 길이었는데 너무 춥고 눈이 얼어붙어 포기하고 시장을 둘러보는 길이었다.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15도가 넘을 듯 싶었다. 어릴 적 겨울철 날씨로 본다면 당연한 날씨라 생각되지만 푸근했던 날이 갑자기 추워지니 저절로 몸이 움츠려 들었다.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재래시장이 깨끗하게 정비되어 예전처럼 난전에서 오돌오돌 떨면서 장사하는 모습이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 시장 변두리에는 어릴 적 어머니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촌로들이 물건을 파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시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골목길로 들어설 때 였다. 할머니 한 분이 리어카에 계란을 잔뜩 싣고 가고 계셨다. 알이 굵은 계란들이 실려있는 리어카를 끌고 가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은 등이 무척 굽어 있었고 어딘가 몸이 편찮으신 듯 했다.
리어카를 밀며 할머니께 어디 편찮으시냐 물으니 골이 흔들리고 어지러워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하셨다.
시장에서 떨어진 곳에서 혼자 리어카를 끌고 나왔는데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아니면 감기 기운에 오한이 와서 그런지 걷기조차 불편하다고 하셨다.
힘드시면 집에서 쉬셔야죠 했더니 날마다 배달해줘야할 곳이 있고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팔고 들어가야 한다며 자리를 펴셨다.


계란은 알이 굵었는데 한 판에 5500원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아무래도 몸이 아파 빨리 팔고 들어가야겠다며 한판에 5000원에 팔겠다고 하셨다. 시장에는 세일은 없고 즉석에서 깍아주거나 덤으로 더 얹어주는 맛이 있는데 할머니는 본의아니게 세일을 하게 된 셈이었다. 차라리 다른 곳에 맡겨 놓고 들어가셨다 내일 다시 와서 팔면되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럴 수 없다고 했다. 혼잣말로 아들 때문에 하면서 말을 얼버무리는 할머니....내가 알지 못하는 피치못할 사정이 있는 듯 했다.
주변 사람들이 앞집에 맡기고 들어가시라고 해도 리어카를 세워둔 채 계란을 팔기 시작했다.
동네 마트에서 계란을 산지가 얼마되지 않았지만 계란 한판을 샀다. 나야 뜻하지 않게 계란을 싸게 사서 좋았지만 할머니는 원치 않는 세일을 하게된 셈이었다.

        
집에 와서 지난 번 샀던 계란과 비교를 해보았다. 왼쪽에 것이 할머니께 산 계란이고 오른쪽 것이 동네 마트에서 5400원에 산 계란인데 보기에도 차이가 많이 나보였다.
이처럼 재래시장은 아침 일찍 시장에 가면 싱싱한 물건들을 만날 수 있고 저녁 파장 무렵에 가면 떨이로 싸게 살 수도 있다. 또 오늘처럼 예기치 않은 일로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뭐니뭐니 해도 재래시장에 가면 좋은 점은 늘 고향같은 푸근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어릴 적 어머니가 난전에서 나물을 팔아 사오시던 풀빵처럼 늘 코끝이 알싸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비록 먼길을 돌아 걸어오시느라 팅팅 불어터진 풀빵이었지만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저절로 미소가 번지곤 한다.
내가 재래시장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서민들이 살아가는 진솔한 모습을 보기 위함이고 어릴 적 어머니가 다니셨던 시장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때문이다.
다시 시장에서 건강한 할머니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