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음치 탈출기
2008. 9. 25. 09:26ㆍ세상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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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1976년에 조용필이 발표했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공전의 히트를 친 여세는 이듬해 고등학교에 입합한 때에도 최고의 히트곡이었다. 늘 친구들로 부터 음치라는 소리를 듣고 있던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하도 많이 놀림을 받아서 노래라면 담을 쌓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고모부집에 들렀다.대중가요 책을 보게 되었다. 당시 고모부는 부대 옆에서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부대와 고모부집에 깡통줄을 연결해서 군인이 잡아당기면 그 소리를 듣고 물건을 팔곤하셨다.
그 중에는 담배나 과자가 주류를 이뤘는데 가끔은 특별한 부탁을 하기도 했다. 편지를 부쳐달라거나 물건을 사다 달라는 경우도 있었다. 그중에 한 사병이 제대하면서 망가진 기타와 대중가요 책을 놓고 갔는데 그게 내 눈에 띈 것이었다.
고모부에게 허락을 받고 그 키타를 집으로 가져온 나는 대중가요 책을 뒤적이다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가수 조용필에 대한 기사였는데 당시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히트하면서 사진과 함께 그의 회고록 형식의 글이 실려있었다.
그중에 내눈을 확 뜨이게 한 것은 조용필이 목소리를 틔게 하기 위해서 마치 창을 하는 사람이 득음을 위해 하듯이 폭포수에서 득음하기 위해 한 일과 날마다 산에 올라 소금물로 목을 축이면서 소리를 질렀다는 일화며 그로인해 목에서 피가 나왔었다는 것과 날계란을 먹은 일화까지 적혀 있었다.
일단 망가진 기타를 혼자서 고쳤다. 금이 간 기타를 나무를 덧대니 제대로 소리가 날리 만무하다. 그래도 칠만은 했다.
기타를 들고 몰래 뒷동산에 올라 소금물로 목을 적시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몇 곡 부르지 않아 목이 메여 노래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피가 터질 때 까지 불러보리라....
날마다 소리를 질러도 도통 변화가 없었다. 무언가 큰 문제가 있거나 타고난 음치라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쉬지 않고 키타를 배우며 노래를 불렀다.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 이브였다.당시에는 친구들과 기타를 치며 방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이 많았었는데 그중 유독 조용필 노래를 잘 부르는 친구가 있었다. 집안도 부유해서 당시에는 시골에서 보기 귀했던 전자기타를 갖고 있었는데 그것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동네아이들의 우상이었다. 거기에 노래도 잘 부르니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나중에 그 친구는 대학에 가서도 리드보컬을 했지만 부모의 결사적인 반대로 가수의 꿈을 접었다.
모두 신나게 전자키타의 리듬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는데 함께 부르는데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그래서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뽐내며 불렀는데 노래가 끝나자 친구가 말을 한다.
'야,이번에 네가 혼자 한번 해 봐"
혼자 부르라는 말에 급위축된 나는 떨리는 목소리고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나를 뻔히 바라보며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를 치며 친구들이 웃는다.
"야, 너 어디서 노래 과외 받았냐?"
갑자기 어깨가 으쓱해지는데 노래를 잘 하는 친구가 한 마디 한다.
"너, 정말 많이 발전했다....이젠 음치 딱지는 다른 친구를 줘야겠네....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어 그게 뭔지 아니?"
"네가 날마다 산에 올라가서 조용필 흉내를 내는 것을 다 아는데...이젠 흉내를 그만내고 복식호흡을 배워야 하지 않겠냐?"
"나도 처음에 안되던 것이었는데 단전에서 부터 끌어올려 노래를 불러야 해....목으로만 불러서 조용필 노래를 소화시키기 힘들어..."
듣고 보니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었다.
그 후에는 목이 아닌 배에서 끌어올리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 때아닌 복근운동을 하며 조용필 따라하기에 열중했다.
사실 그때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조용필 따라하기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송대관의 '해뜰날'에 나오는 가사 '안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이라는 가사처럼 내게도 해뜰날이 온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나를 보고 조용필 노래를 잘한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대학에 가서도 그렇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내 레퍼토리는 조용필이다.
그중에서 가장 즐겨부르는 노래는 "꿈"이다
하고 싶은 일에 미치면 못 이룰 꿈이 없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음치에서 탈출했다.
지금도 나는 가수 조용필을 가장 좋아한다.
그는 나를 음치에서 탈출하게 해준 가수이자 평생 내 마음 속 우상이기 때문이다.
하도 많이 놀림을 받아서 노래라면 담을 쌓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고모부집에 들렀다.대중가요 책을 보게 되었다. 당시 고모부는 부대 옆에서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부대와 고모부집에 깡통줄을 연결해서 군인이 잡아당기면 그 소리를 듣고 물건을 팔곤하셨다.
그 중에는 담배나 과자가 주류를 이뤘는데 가끔은 특별한 부탁을 하기도 했다. 편지를 부쳐달라거나 물건을 사다 달라는 경우도 있었다. 그중에 한 사병이 제대하면서 망가진 기타와 대중가요 책을 놓고 갔는데 그게 내 눈에 띈 것이었다.
고모부에게 허락을 받고 그 키타를 집으로 가져온 나는 대중가요 책을 뒤적이다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가수 조용필에 대한 기사였는데 당시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히트하면서 사진과 함께 그의 회고록 형식의 글이 실려있었다.
그중에 내눈을 확 뜨이게 한 것은 조용필이 목소리를 틔게 하기 위해서 마치 창을 하는 사람이 득음을 위해 하듯이 폭포수에서 득음하기 위해 한 일과 날마다 산에 올라 소금물로 목을 축이면서 소리를 질렀다는 일화며 그로인해 목에서 피가 나왔었다는 것과 날계란을 먹은 일화까지 적혀 있었다.
일단 망가진 기타를 혼자서 고쳤다. 금이 간 기타를 나무를 덧대니 제대로 소리가 날리 만무하다. 그래도 칠만은 했다.
기타를 들고 몰래 뒷동산에 올라 소금물로 목을 적시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몇 곡 부르지 않아 목이 메여 노래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피가 터질 때 까지 불러보리라....
날마다 소리를 질러도 도통 변화가 없었다. 무언가 큰 문제가 있거나 타고난 음치라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쉬지 않고 키타를 배우며 노래를 불렀다.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 이브였다.당시에는 친구들과 기타를 치며 방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이 많았었는데 그중 유독 조용필 노래를 잘 부르는 친구가 있었다. 집안도 부유해서 당시에는 시골에서 보기 귀했던 전자기타를 갖고 있었는데 그것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동네아이들의 우상이었다. 거기에 노래도 잘 부르니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나중에 그 친구는 대학에 가서도 리드보컬을 했지만 부모의 결사적인 반대로 가수의 꿈을 접었다.
모두 신나게 전자키타의 리듬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는데 함께 부르는데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그래서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뽐내며 불렀는데 노래가 끝나자 친구가 말을 한다.
'야,이번에 네가 혼자 한번 해 봐"
혼자 부르라는 말에 급위축된 나는 떨리는 목소리고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나를 뻔히 바라보며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를 치며 친구들이 웃는다.
"야, 너 어디서 노래 과외 받았냐?"
갑자기 어깨가 으쓱해지는데 노래를 잘 하는 친구가 한 마디 한다.
"너, 정말 많이 발전했다....이젠 음치 딱지는 다른 친구를 줘야겠네....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어 그게 뭔지 아니?"
"네가 날마다 산에 올라가서 조용필 흉내를 내는 것을 다 아는데...이젠 흉내를 그만내고 복식호흡을 배워야 하지 않겠냐?"
"나도 처음에 안되던 것이었는데 단전에서 부터 끌어올려 노래를 불러야 해....목으로만 불러서 조용필 노래를 소화시키기 힘들어..."
듣고 보니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었다.
그 후에는 목이 아닌 배에서 끌어올리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 때아닌 복근운동을 하며 조용필 따라하기에 열중했다.
사실 그때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조용필 따라하기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송대관의 '해뜰날'에 나오는 가사 '안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이라는 가사처럼 내게도 해뜰날이 온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나를 보고 조용필 노래를 잘한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대학에 가서도 그렇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내 레퍼토리는 조용필이다.
그중에서 가장 즐겨부르는 노래는 "꿈"이다
하고 싶은 일에 미치면 못 이룰 꿈이 없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음치에서 탈출했다.
지금도 나는 가수 조용필을 가장 좋아한다.
그는 나를 음치에서 탈출하게 해준 가수이자 평생 내 마음 속 우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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