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남대문시장에서 폐지줍는 할머니와의 대화

2008. 8. 29. 11:39세상 사는 이야기

늘상 그렇지만 지방에서 의류점을 하는 사람들에게 고역이란 물건을 하러 다니는 일이다.
특히 아내가 장사하는 이곳은 IMF를 지나며 많은 의류상인들이 문을 닫아 대형관광버스가 여러대 다니던 것이 지금은 25인승 차량 한 대가 다니는데 그것도 들쑥날쑥 이라서 원하는 시간에 갈 수가 없다. 거기에 차가 작다보니 너무 불펀하고 힘들다는 아내의 하소연에 특별 기사가 된지도 벌써 여러해가 넘었다.
서울을 오르내리면서 수많은 에피소드를 그간 불로그에 올리곤 했는데 그때 마다 많은 관심을 받곤했었다.
그중
목욕탕에서 깍두기를 만났습니다.는 많은 사람들이 읽고 동감해준 기억이 난다.
추억이 며칠 남지않은 어제는 갑자기 서울을 다녀와야 겠다는 아내의 말에 예고없이 동대문시장으로 떠났는데 그곳에서 시장을 마치면 대략 2시 반에서 3시 사이가 된다. 겨울에는 찜질방에서 잠시 눈을 부치지만 봄이나 여름 그리고 가을에는 차안에서 틈잠을 자는 경우가 많다. 아내와 함께 동대문에서 남대문으로 향하니 시간이 벌써 세시가 넘었다. 한가위 대목 준비로 그 시간에도 상가들은 불을 훤하게 켜놓고 손님을 기다리는데 정작 손님들은 많지 않았다. 요즘 상경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고 만나는 상인들마다 하소연이 대단했다.
물가는 치솟는데 장사는 해가 지날수록 안되니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였다.
아내가 물건을 하는 사이 잠을 청해야 하는데 잠이 오지 않아 이곳저곳을 돌아 다니다 문득 예전에 가끔 들리던 포장마차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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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불은 켜져 있는데 포장마차 위에는 온통 쓰레기 뿐이었다. 어찌된 영문일까 두리번 거리는데 어두운 곳에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다가가서 할머니에게 물으니 자신이 포장마차 주인이라고 했다.
"아니 포장마차를 안하시고 폐지를 줍고 계세요?"
"장사가 너무 안되서 그냥 불만 켜놓고 있는 거야...여름이란 장사하다 음식이 상하면 오히려 손해나는데 어떻게 장사를 해..."
"이렇게 자리를 보전하지 않으면 이 자리가 그냥 사라지는데 어떻게 쉴 수가 있나..."
"그냥 사라지다니요. 할머니..."
"이곳은 28년전에 내가 권리금으로 거금 320만원주고 맡은 자리야....그동안 숱한 일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꿋꿋하게 자리를 지킨 사람은 나밖에 없어...."
"지금 폐지를 줍는 것도 그냥 자리만 지킬 수 없어서 시작했는데 요즘은 노숙자와 다른 경쟁자들이 워낙 많아서 다툼이 많아 ....너무 힘들어...."
"이렇게 밤새 모으면 얼마나 모을 수 있나요?"
"신발가게나 한 곳에서 많이 나오는 경우에는 500kg을 모을 수 있지만 대부분 300kg정도 모을 수 있어..."
"가격으로 치면 얼마나 되나요?"
"어떤 곳에서는 kg당 160원에서 180원 준다는 곳도 있다는데 나는 그냥 kg당 100원씩 받아....집에서 가까운 곳까지 리어카로 옮기고 그곳에 세군데 있던 고물상이 한군데 밖에 안남으면서 이문을 박하게 주는데 어쩔 수 없이 그냥 그곳에 넘겨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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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예전에 포장마차가 많았었는데 다 어디로 갔어요?.."
"벌써 오래되었지....내 바로 옆에서 장사하던 아줌마는 권리금을 오천만원을 주고 이곳에서 포장마차를 했었는데 마침 IMF가 터지면서 4년을 근근히 버티다가 결국 손을 놓았어 ....손해를 많이 보았지..."
"그럼 속아서 들어온 것인가요?"
"아니야 그 아줌마 들어올 때는 장사가 잘 되었어....그리고 그 아줌마가 며칠을 몰래 숨어서 장사가 되는 것을 확인하고 권리금을 주었으니까.....그런데 시기를 잘못 택한 거지 뭐....."
"오른쪽에 있던 포장마차들은 어디로 갔나요?..."
"장사가 안되는데 견딜 수가 있나...나야 되든 안되든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니까 남은 것이고 ....."
"옛날에는 이자리를 들어오려고 경찰이나 다른 사람들 줄을 대고 들어와 장사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어...그러다 권리금 받고 팔고 빠지기도 하고...."
"하시면서 제일 힘든 것이 뭐예요? ..."
"다 힘들지 뭐 쉬운 게 어디있어....그중에 리어카 끌로 왔다갔다 하는 일이 제일 힘들어...이곳에 두면 구청 단속반들이 모두 싣고 가버려....어제는 힘들어서 짐 싣는 두발 그루마를 지하도 옆에 묶어 두었는데 단속반원들이 가져 갔어...."
"그럼 찾으러 가야겠네요?....."
"뭘 찾으러가 찾으려먼 5만원 벌금에 왕복 운반비를 내려면 차라리 새로 사는 것이 낫지....속상하지만...."
"리어카를 보관해주는 보관소가 있긴한데....그곳까지 끌고 갔다 다시 이곳에 갖다주는데 만원 그리고 보관 장소비 5천원 얼음과 준비물 준비하다보면 만3천원 정도 들어 결국 하루에 3만원정도 소요되는데 한 달이면 얼마야.....집이 먼 사람은 울며 겨자먹기로 하지만 나는 집에서 모두 준비를 하니 그게 남는 거지 뭐...."
할머니는 대화 내내 귀찮아 하는 기색없이 껄껄 웃기까지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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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세상 일에 도통한 듯 했고 어떤 마음으로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인가를 알고 계시는 듯 했다.
"사는 게 별거 아녀..참고 살다보면 그 속에서 좋은 일도 생기는 겨...."
"선선한 바람이 불면 다시 장사를 해야제...그래도 28년 단골 손님이 찾아왔다 바람맞으면 섭섭할테니까...하지만 폐지 줍는 일은 계속해야 할 것 같아....장사가 너무 안돼서..."
한 시간 반 동안 대화를 나누면서 할머니의 28년간 끈질게 버텨온 생활력과 삶에 대한 의지와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웃는 표정이 왠지 모르게 가슴을 아렸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와서야 할머니 나이를 묻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족히 75세는 넘어 보였다.
어머니 살아 생전 모습을 보는 듯 마음이 애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