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여행과 머피의 법칙

2008. 7. 13. 11:21세상 사는 이야기

서울에서 새벽시장을 보고 2시간 30분가량 달려 집에 도착한 시간이 9시,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9시 40분 뉴스가 나왔다.
헤드라인 뉴스는 '금강산에서 한국인 관광객 피격'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동안 금강산 여행이 시작되고 크고 작은 문제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이것처럼 총에 피격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서 놀라움이 컸다.
그 뒤 속속 들려오는 소식에 귀기울이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나는 평생 여행복이 없나봐...뉴스 봤지...금강산에서 관광객이 피격되었다는...."
"응, 방금 보았어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할거야?"
"글쎄, 이상황에 여행가는 바보가 있을까?"
"계원들과 상의해봐야 알겠지만.....이번 여행 계획도 취소해야 겠어..."

아내는 3년 전부터 여행계를 들었었다.
한 달에 3만원씩 꼬박꼬박 넣으며 해외여행 갈 생각에 부풀었었다.
결혼 전에 여행을 좋아해서 한국에 안가본 곳이 없다는 아내는 결혼과 동시에 여행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몇번의 사업실패 후 시작한 옷가게에 매달려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고 살았다.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여행을 많이 보내고 싶어 아내는 내게 아이들 데리고 여행을 다녀오라 재촉하곤 했다.
그래서 늘 방학때면 아이들과 자동차 여행을 떠났는데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이주일간 국내 곳곳을 여행했다.
여행이라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고생길이었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여행을 통해서 자립심과 독립심을 길러주고 싶어 텐트나 자동차에서 잠을 자며 여행을 하곤 했다.
해마다 여행을 떠나곤 했지만 그곳에 늘 한 자리가 비어있었는데 그것은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자리 내게는 아내의 자리가 늘 비어있었다.
그렇게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내는 세 번의 여행 계획을 세웠었다.
맨처음 여행계획은 1997년 괌여행이었는데 겨울 방학을 이용해서 가장 친한 4가족과 함께 3박4일 다녀올 계획이었는데 1997년 8월 6일 괌 비행기 추락사고로  226명이 사망하는 대형사고 여파로 취소했었다.
 2001년에는 뉴저지로 이민간 초등학교 동창생의 초청으로 겨울에 미국에 갈 생각으로 들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9월 11일 알 카에다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납치된 여객기가 미국 뉴욕 세계 무역 센터와 워싱턴 국방부에 자살 충돌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아내는 겁이 많다. 스스로 포기한 것이 옳은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 뒤 아내는 여행 이야기를 할 때 마다 머피의 법칙을 이야기 하곤 했다.
다른 때는 괜찮다가 꼭 내가 여행 계획을 세우면 무언가 일이 생긴다며 젊었을 때 여행을 많이 다녔으니 열심히 일이나 할 팔자인가보라며 자위하곤 했다.
그 후 여행계획이 없었던 아내에게 옷가게에 오는 손님들이 모여 만든 여행계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여행스케줄을 잡았는데........
올해 여행계가 끝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만은 꼭 여행을 다녀오리라 생각했던 아내...
애당초 해외여행을 가는 것으로 시작한 여행계가 각자의 사정에 따라 스케줄을 잡아도 해외여행 6박 7일은 무리라며 2박 3일 금강산 여행을 다녀오고 다시 해외여행을 계획해 보자는 것으로 의견 통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잡힌 여행 날짜가 7월 23일 이었는데........불과 2주도 안남았는데 충격적인 관광객 피격사건이 일어나다니....

금강산 여행을 떠났던 사람들이 모두 서둘러 돌아오고 금강산 여행도 잠정 중단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아내가 또 한 마디 한다....
"뻔히 관광객인 줄 알면서 총을 쏘다니 ....좌우지간 북한은 믿을 수가 없어....."
"해외여행 계획을 짤 때 마다 이상하게 꼬여서 국내여행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참 금강산 여행도 해외여행인가?"
"하여튼 내가 여행 계획만 잡으면 이상하게 일이 터지네........믿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지겨운 머피의 법칙......."
밤 9시 뉴스를 보며 중얼대는 아내 모습이 측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