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묘의 부장품으로 전락한 유적지

2008. 6. 29. 10:44세상 사는 이야기

주말을 맞아 고향에 다녀오는 길에 내면을 지나 구룡령을 넘기로 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와 삼포초등학교를 지나 달려가는데 갑자기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돌무더기에 시선이 멈췄다.
마침 도로옆에 있어 차를 세우고 다가가 보니 고인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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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홍천읍에서 속초로 가는 44번 국도를 달리다 구성포 사거리에서 서석면으로 가는 56호 국도를 따라 약 10㎞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74년 중학교 다닐때는 기념물로 지정되지 않았었고 소풍을 갈 때도 이곳에 고인돌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는데 1986년 5월 23일 강원도 기념물 56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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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산재되어 있는 고인돌 하단부가 모두 가라앉아 땅에 묻여있는 것도 보였고 상단부가 잘라진 것도 보였다.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돌멘[Dolmen] 또는 고인돌이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지석묘는 큰 뚜껑돌 밑에 시체(屍體)를 안치하는 구조(構造)가 마련되어 있으며,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이곳에 분포된 지석묘는 탁자식(卓子式)이나 바둑판식이 아닌 소위 변형지석묘로 분류된다.이러한 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물로서는 돌칼(石劍)·돌화살촉(石鏃)·민무늬토기(無文土器) 등이 있어 이 일대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생활무대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런데 고인돌을 둘러보려는데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개인 무덤이었다.
어떻게 중요한 기념물에 개인의 묘들이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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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까지 세워 있고 묘지가 잘 관리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주인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마치 기념물 고인돌이 개인묘의 부조물이나 장식품으로 전락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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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는 모두 한 개가 아니고 모두 세 개였는데 모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어떻게 기념물 안에 개인묘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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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에 대한 궁금증은 마을 사람을 통해서 알 수 있었는데 이곳이 개인 땅이라서 기념물과 개인묘가 함께 있다는 것이다.기념물을 지정할 때 왜 매입을 하거나 이전을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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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수없는 대리석 하나가 널브러져 있다.홍천군에서는 현재 이땅을 매입하려고 하고 있지만 적극적인 자세가 엿보이지 않는다. 고인돌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던지 이땅을 매입해서 개인묘를 이장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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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이 개인땅에서 개인묘의 장식품이나 부조물로 전락한 것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홍천군에서 청동기시대의 흔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곳인데 경계철책과 안내 표지판 하나만 달랑 걸어놓았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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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을 이용해서 표지석으로 사용한 듯한 돌도 옆에 있었다.
문화재를 보존하려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정만 해놓고 관리를 하지 않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문화재를 보존하려는 지자체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