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6은 평화 대행진과 백범 김구 선생 암살 당한 날

2008. 6. 26. 17:55세상 사는 이야기

역사속의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을까?
1965년 오늘 몰디브,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날이고 1919년 미국 `데일리뉴스`지 창간되었고 1892 미국 소설가 펄 벅 출생한 날이기도 하다. 또 1967년 사상초유로  전력부족으로 20시이후 TV방송 중단되었던 날이기도 하고 1541년에는 잉카제국 정복한 피사로 피살된 날이기도 하다 1962년 6월 26일에는 1940~50년대 대표 가수 남인수씨가 사망했다.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 6월 26일 오늘의 소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987년 6.26 국민대행대행진이 전국37개시군 지역에서 벌어진 것인데 요즘 촛불 시위와 너무도 닮아 보이는 것이 흥미롭다


 [1987년] ‘6ㆍ26 대행진’, 비폭력ㆍ평화시위


1987년 6월 26일 부산에서의 반정부시위 모습. 반 나체의 한 시위자가 "최루탄 쏘지마"라며 절규하며 시위하고 있다.

‘6ㆍ26’ 민주헌법쟁취 국민평화대행진이 1987년 6월 26일 오후 6시를 전후해 서울을 비롯한 부산 대구 광주 인천 대전 전주 춘천 등 전국 37개 시ㆍ군 지역에서 국민운동본부, 민주당, 재야인사, 학생들에 의해 시도됐다.
이날 대행진은 6월 10일 대회에 비해 개최도시 및 시위발생지역, 시위가담인원이 훨씬 많았다. 오후 6시가 되자 서울과 지방에서 일부 차량들이 경적을 울렸고 연도의 시민, 학생들이 태극기와 손수건을 흔들거나 박수를 치기도 했다. 일부 성당, 교회, 사찰에서도 타종이 있었다.
이날 시위는 오후 7시 이후 시민들의 가세로 규모가 불어나 서울에서는 한때 서울역의 2만여명을 비롯, 동대문 영등포 일대 3만여명, 광주에서는 5만여명, 부산에서는 2만여명 등 전국적으로 20여만명이 참가했다. 6만여명을 동원해 저지에 나선 경찰은 이날 하루에만 2천9백60여명의 시위참가자를 연행했고 김영삼 민주당 총재는 경찰이 버스로 강제 격리시켜 시위에 참가하지 못하기도 했다.
<출처:조선닷컴 >


오늘의 소사에서 또 하나 안타까운 일은 1949년 오늘 조국광복을 위해 평생을 바친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당한 날이기도 하다.평생 조국을 위해 헌신한 73세의 노정치가를 살해한 안두희를 체포했지만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끝내 배후를 밝히지 못하고 말았다.

 [1949년] 김구, 경교장에서 암살당해


1949년 6월 26일, 그의 거처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목숨을 잃은 백범 김구 선생.

1949년 6월 26일 낮 12시30분, 서울 경교장(현재의 강북 삼성의료원)에 갑자기 4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육군 소위 안두희가 조국광복을 위해 평생을 바친 백범 김구 선생에게 쏜 총소리였다.

73세 노혁명가의 목숨을 앗아간 안두희는 손에 권총을 쥔 채로 “선생은 내가 죽였어!”라고 태연하게 말하며 검거에 순순히 응했다. 범인이 확보되고 철저하게 준비된 암살이었음도 밝혀져 사건의 전모가 곧 드러날 것으로 예상됐으나 사건은 지금까지도 배후설만 난무할 뿐 어느 것 하나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았다.

가장 먼저 신병을 확보한 헌병대가 범인을 감방에 가두기는커녕 의무실에 보호조치한 점, 임정계열인 헌병사령관을 이튿날 춘천지구로 전격 발령한 점 등이 의문이었다. 특무대로 넘겨진 안씨에게 김창룡이 “안의사, 수고했소”라고 격려하며 술·담배 등을 제공한 사실은 의혹을 더욱 부채질했다.

무기징역을 언도받았으나 6·25 발발과 함께 특사조치로 석방돼 육군 중령으로 복귀한 점 역시 배후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었다. 배후에 대한 물증은 없고 심증만 구구한 채 55년의 세월이 흘렀다. <출처:조선닷컴>

그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했던 선열들의 모습과 지금 어수선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자신의 성급한 결정으로 야기된 수입쇠고기 문제를 국민에게 전가하는 듯 장관고시를 강행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국민을 진심으로 섬길 줄 아는 지도자가 간절하게 그리운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