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 독서(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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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자유 이동호 두 해 동안 기르던 새를 날려 보냈다 남아있는 빈 집에 바람이 왔다가고 아침 햇살이 머물다 갔다 새가 날아간 뒤 새보다 자유로운 건 새가 아닌 새의 집이었다
2007.12.03 -
가장 아름다운 그림
가장 아름다운 그림 이동호어머니는 이름 없는 화가였다 하지만 나는 집안 어디에서도 붓이나 물감을 볼 수 없어어머니가 화가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모심는 날 새참을 이고 논두렁을 걷고 감자꽃 흐드러진 고랑 사이를 오가며 한여름 뙤약볕 아래 호미질 하고 늦은 밤 호롱불 아래 침침한 눈으로 내 양말을 꿰매시던 어머니 잠시도 쉴틈없으시던 어머니는 언제 내 가슴 벽에 저토록 생생한 그림을 그려 놓으셨을까 지금도 어머니 그리운 날에는 살아 생전 평생 마음으로 그린가장 아름다운 그림 한 폭내 가슴 벽에서 꿈틀거리곤 한다
2007.12.03 -
갈대
갈 대가을에는 그대 마음 속에서서걱이는 바람소리로 눕고 싶다오랜 기다림으로 마지막 눈물 한 방울가을 햇살에 내어주고가만히 몸을 흔드는 저 들녘의 갈대처럼나를 비움으로써 더 가벼워지도록나를 버림으로써 더 자유로울 수 있도록가을에는 그대 마음 속에숨어 지는 노을로 편지를 쓰고 싶다모든 것을 다 주었으므로이제는 기다림이라는 이유로이제는 그리움이라는 이유로당신을 구속하지 않겠노라고그리하여 다시 오는 가을에는그대가 떠나는 길목에서하얗게 부서진 웃음이 되어마음 편히 그대를 바라보고 싶다
2007.11.29 -
건빵
건빵심심풀이로건빵을 먹다가건빵에 뚫린구멍을 들여다보았다단추 구멍보다작은 구멍 속엔파란 하늘과가을 설악산텅 빈 바닷가그 위로 잿빛 갈매기끼룩끼룩 날고 있었다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작은 구멍 하나에도세상이 가득 담겨 있다는 사실을불현듯 깨닫는 이 희열감팍팍한 건빵을 먹다덤으로 얻은 즐거움세상이 참 아름답다
2007.11.29 -
넥타이
넥타이나는 잠들어 있다잠 속에 꿈꾸는 나를풀어 논 넥타이가 내려다본다넥타이 속에는 아직빠져 나오지 못한 내 정신이헐떡이고 있다나보다 나이가 열 살이나 어린김과장은 내 눈에 가시다아니다 김과장 눈에 내가 가시다눈치 없이 명퇴도 안 하고자리에 앉아 있는 건 비굴한가김과장의 조소가 목을 조르지만조소 뒤에서 웃는 가족을 생각하며오늘도 나는 꿋꿋하게 견뎌냈다잠에서 깨어난 아침출근을 서두르며 넥타이를 매는 사이밤새 목 졸린 내 정신이비로소 이불 속에 눕는다그가 출근해서 돌아올 때까지오늘 하루 나는 평온할 것이다
2007.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