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8. 11:31ㆍ세상 사는 이야기
종종 뉴스에서 연예인의 도박에 관한 기사를 접할 때 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
왜나하면 어릴 적 아버지도 도박 때문에 어머니와 심하게 다투신 적이 있기 때문이다.
40여년 전 마을에 포장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고향에는 겨울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회당이나 마을 막국수 집에 모여 시간을 보내곤 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옹기일을 하는 사람들 모두 일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던 농한기라 가마니나 새끼를 꼬거나 기껏해야 겨울을 날 수 있는 땔나무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고 저녁 무렵이면 막국수집이나 공회당에서 화투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어느 해 마을이 고립될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린 적이 있었다.
사흘간 내린 폭설에 키를 덮을 만큼 많이 쌓인 눈 때문에 간신이 마을 사람들이 드나들 정도의 길을 뚫고 다녔는데 그때 아버지가 막국수집에서 심심풀이로 화투에 손을 대기 시작하셨는데 점점 도가 지나쳐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날이 새도 돌아오지 않는 날이 많아 졌다.
당시 시어머니와 아들 사형제를 키우고 있던 어머니는 결혼 후 열심히 살던 아버지가 도박 때문에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으셨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머니가 직접 막국수집을 찾아가지는 않으셨다.나중에 안 사실이었는데 여자가 찾아오면 재수가 없고 끗발이 나지 않는다며 절대 오지 못하게 하는 아버지 때문에 심부름은 늘 내몫이었다.
"아버지가 안오시면 너도 오지마라..."
어머니의 불호령에 막국수 집으로 찾아갔지만 아버지는 꿈쩍도 안하셨다.
당시에 그곳에는 나처럼 어머니 심부름을 온 형들이 있었는데 다른 방에서 막국수를 먹고 화투판이 끝나기를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곤 했다.
어머니의 가출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와 어머니가 심하게 다투셨다.
태어나 그렇게 무섭게 싸우시는 것을 본적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일찍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저녁상 앞에서 잔소리를 한 것이 부부싸움의 발단이었다.
돈을 잃은 화풀이로 괜한 반찬 투정을 하기 시작한 아버지는
“아니, 반찬이 왜 이래?”
그러자 어머니는 태연하게
"아니 오늘도 안들어오는 줄 알고 반찬을 안했네요,,,반찬 투정하지 말고 그냥 드세요..."
"아니, 먹을게 있어 먹지 고추장과 김치만 갖고 어떻게 밥을 먹어...."
"아니 그럼 그동안 화투해서 딴 돈으로 고기 좀 사갔고 와봐요. 당신과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에게 고기 반찬을 해줄테니...."
그말에 화가 난 아버지가 갑자기 밥상을 들어 뒤집어 엎어 버렸다.
그릇은 모두 깨지고 상다리가 부러져 버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집에 있는 날보다 나가서 화투치느라 정신없는 당신에게 뭘 기대하겠어요..."
"아이들에게도 못볼꼴만 보여주고 도박에 빠진 당신하고는 도저히 못살겠어요...“
“어머니 모시고 아이들과 잘 살아봐요..”
그리고 뒤도 안돌아보고 집밖으로 뛰쳐 나가셨다.
순간 당황하신 아버지는 사랑방에 있던 우리를 불러 어머니를 찾아보라 하셨다.
하지만 캄캄한 어둠 속으로 사라진 어머니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 ‘엄마...’하면서 온마을을 뒤지고 있을 때였다.
성당에 숨어있다 내 목소리를 들은 어머니가 조용히 나를 불러 이렇게 이야기 하셨다.
"절대 집에 가서 내가 여기 있다는 소리 하지 말거라.."
"네가 말하면 엄마는 절대 집에 들어가지 않을거야....아버지는 성당에 절대 오지 않을 사람이니 나를 찾지 못할 게다 그러니 너는 그냥 모른다고만 해 알았지?..."
어머니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계셨다.
분명 당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후회를 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뒤엎힌 상과 그릇을 청소하면서 형은 연신 눈물을 흘렸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안방에서 미동도 하지 않으셨다.
단박에 도박을 끊은 아버지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어머니 대신 할머니 식사와 아들 사형제 그리고 소 여물을 끓여주느라 정신이 없던 아버지는 막국수집 발길을 뚝 끊으셨다.
늘 바깥 일만 하시던 아버지가 일주일 동안 어머니 일을 대신하면서 집안 일의 어려움을 깨닳으신 듯했다.
그후 열흘째 되던 날 성당 아주머니가 아버지에게 어머니의 행방을 알렸고 난생 처음 성당엘 간 아버지는 그곳에서 어머니께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셨다고 한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어머니는 평소 주변에서 도박 때문에 집을 날린 사람이 이야기와 소 판 돈을 꾼들에게 몽땅 날렸다는 소문을 들은 터라 단박에 끊지 않으면 큰일이 터질 것같아 가출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팔순이 넘으신 아버지....
어쩌다 마을 회관에 들러봐도 동네 어르신들이 화투치는 모습을 뒷전에서 구경만 하시는데 아마도 4년전 먼저 돌아가신 어머니와 약속을 끝까지 지키고 싶은 아버지의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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