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아침 경찰에게 뺨을 맞은 이유

2010. 9. 11. 16:52세상 사는 이야기

추석이면 생각나는 에피소드 하나

며칠 전까지 그렇게 무덥던 날씨가 태풍이 지나고 난 후 제법 선선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난 주에 벌초도 했으니 이젠 고향에 갈 일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추석은 설날과 함께 가장 기다려지는 명절입니다.
설날에는 동네를 돌며 어르신들에게 세배를 다니며 세뱃돈을 받는 재미에 추석에는 추석 특선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즐거움이 가장 컸습니다.
그중에서도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던 추석날 안내양이 꽉꽉 밀어넣은 만원버스를 타고 가서 보았던 영화 취권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지금은 고향에 가도 늘 반갑게 맞아주시던 어머니도 유년의 즐거웠던 추억을 되새길 친구들도 몇몇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조금은 쓸쓸합니다.
어릴 적 추석 전날 친구들과 모여서 놀던 이야기를 하자면 밤을 새워도 끝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많았는데 오늘은 그중 가장 잊지 못할 에피소드를 소개할까 합니다.


동창 여자 친구를 짝사랑한 친구

대학교 2학년 때의 일로 기억이 됩니다.
추석 전날 고향을 찾은 친구들과 만나 술 한잔을 나누다 여자 동창이 결혼할 남자와 집에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고 동창회 때도 자주 만났던 친구의 결혼 소식이 모두 반가웠는데 한 친구가 여자 동창 집으로 신랑 얼굴이나 보러 가자고 하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동창 여자를 짝사랑했던 친구녀석이 울컥 내뱉은 말이었는데 그속도 모르고 여자 동창 집으로 찾았습니다.
다행히 여자 동창이 반갑게 맞아주어 사랑방에 술상이 놓여지고 어릴 적 이야기며 여자친구의 연애 에피소드를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유독 짝사랑했던 그 녀석만 연신 술을 들이키며 말이 없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예비 신랑을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이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시비가 붙다.

여자 친구 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벌써 자정이 가까워 졌습니다.
컴컴한 농로길을 따라 내려가다 한 무리의 사람들과 마주쳤는데 사소한 일로 시비가 붙었습니다.
서로 길을 비켜주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던 사람들이 길을 비켜달라는데 짝사랑했던 그 녀석 떡 버티고 옆으로 비켜가라더군요.
사실 옆으로 갈 수도 있는데 상대방도 자존심이 상했는지 길을 터줄 때 까지 갈 수 없다고 버티더군요.
한참 후에야 친구들이 말려 길을 터주었는데 가면서 상대방이 내뱉은 한 마디에 난장판이 되어버렸습니다.

"에이씨...어디 사는 놈들인데 남의 마을에 와서 술처먹고 비틀거려..."

그러자 팔을 홱 뿌리친 친구가 뒤쫓아가 자전거를 확 걷어차 자 자전거와 함께 논바닦에 확 쳐박혔습니다.
이렇게 둘이 시작된 싸움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는데 말리면서 서로 치고 받고 하는 사이 하나 둘 도망을 치더니 결국 한 사람만 남았습니다.

컥! 알고 보니 친구의 큰 형님 동창

상대방은 입술이 터졌는지 연신 입을 닦아내리며 분한 듯 말을 내뱉었습니다.

"야, 너희들 어디 사는 놈들이냐....아랫동네 살아?"
"내가 00 친구인데 너희들 00 알고 있지?"


아뿔사 상대방이 내뱉은 00이는 바로 곁에 있던 친구의 큰 형님 동창이었습니다.
나이가 우리 보다 여섯 살이나 위였는데 일찍 고향을 떠나 이름도 얼굴도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말에 금새 주눅이 들었는데 술 취한 이녀석 그대로 밀어 부칩니다.
"00가 누군데 우린 그런 사람 몰라?"
그렇게 팽팽하게 입씨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멀리서 경찰차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먼저 도망간 상대방 친구들이 파출소에 신고해 달려온 것이었는데 경찰을 보고도 도망칠 생각을 않는 술 취한 친구 녀석 때문에 결국 모두 잡혔습니다.
신고를 받을 때 들은 이야기와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맞아 입술과 이빨이 흔들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경찰은 친구를 모두 차에 태우고 파출소로 연행했습니다.

경찰서에서 진술서를 쓰다

그곳에서 밤새도록 진술서를 쓰며 실랑이를 벌였는데 담당 경찰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더군요.

"아니, 이 녀석들아...어떻게 맞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사람은 한 사람도 없냐..."
"때리긴 때렸는데 모두 허공을 갈랐다고?......그런데 입술이 찢기고 이가 흔들리냐?...."
너희들 같은 녀석은 정말 혼쭐이 나야 돼......

추석날 아침 부모님 앞에서 뺨을 맞다

그리고 추석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허기진 배를 컵라면으로 채우고 한참을 기다리는데 이게 웬일일까요....
경찰서로 하나 둘 들어서는 친구들의 부모님들....
파출소장은 부모님을 의자에 앉혀놓고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너희들 부모님이 얼마나 힘들게 농사를 지으셔서 대학을 보낸 줄 알아..."
"소 한 마리를 팔아야 등록금이 될까말까인데 그렇게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한다면 열심히 공부를 해야지...."

그러면서 갑자기 차례로 뺨을 갈기기 시작합니다.

찰싹 찰싹.......맞으며 생각해 보니 맞는 녀석들 모두 대학을 다니는 녀석이었습니다.

부모님 앞에서 뺨을 맞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터라 얼굴이 울그락 붉그락 해졌는데 이번에는 돌아오며 손바닥이 아닌 손등으로 또 뺨을 때립니다.

갑자기 눈물이 핑돌았습니다.
아픈 것 보다는 자식을 잘못둔 죄로 명절날 못볼 꼴을 보게 되신 아버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습니다.
소장의 설교가 끝난 후 부모님들이 돈을 걷어서 합의금을 주고 난 후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친척과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다,,그렇지만 앞으로는 더 이상 그러지 마라..."

혼쭐 보다는 짧은 말 한 마디로 용서해 주시던 아버지........
그 때 일을 생각할 때 마다 부끄러워 지금도 얼굴이 화끈 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