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15. 07:31ㆍ세상 사는 이야기
지난 주말에 지인의 조카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봄이 가까워진 탓인지 청첩장이 부쩍 많아졌는데요...일요일 오후 한 시 아내와 함께 결혼식장이 있는 바닷가 인근 호텔로 향했습니다.
결혼식장에 들어서니 벌써 예식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다른 날이면 식장 입구에서 부조금만 내고 피로연장으로 향하곤 했는데 이날은 오랜만에 식장에서 결혼식 장면을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직접 본 결혼식은 21년전 내가 결혼할 때와는 천양지차였습니다.
딱딱했던 결혼식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졌고 길고 길었던 주례사도 아주 간결해졌습니다.
대신 사회자와 신랑 신부 친구들이 참여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그중 축가를 부르는 도중 신랑이 뛰어나와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를 신나게 부를 때는 저절로 어깨가 들썩였습니다.
참석했던 하객들은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치면서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복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갑자기 사회자가 신랑의 구두 한 쪽을 벗으라고 하더군요.
하객들이 모두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사회자가 신랑에게 구두를 들고 식장을 한 바퀴 돌라고 하더군요.
영문을 몰라 쭈뼛거리던 신랑이 천천히 식장을 도는데 갑자기 하객중 한 사람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 구두 속에 넣어주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만원 지폐를 꺼내 신랑 구두 속에 넣어 주었습니다.
앞으로 부자가 되라는 의미로 하객들에게 돈을 받아 오라는 이벤트라는데 돈이 모이지 않으면 계속 뺑뺑이를 돌려 하객들에게 부담을 주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말로만 듣던 구두 앵벌이가 바로 이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식장을 한 바퀴 돌자 하객들이 넣어준 돈이 구두 속에 가득찼습니다.
신랑이 구두를 들고 다시 신부 곁으로 오자 사회자가 웃으며 구두를 신으라고 하더군요.
구두 속 지폐 때문에 쩔쩔 매던 신랑이 간신히 구두를 신고 하객들 앞에 섰습니다.
그러자 사회자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요즘 돈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다툼과 불화가 돈 때문에 생긴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새로운 출발을 하는 신랑 신부는 발아래 놓인 구둣 속 돈처럼 평생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돈을 지배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멘트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자칫 하객들에게 부담이 될수도 있었던 상황이 사회자의 멋진 멘트 덕분에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결혼식에 가면 눈쌀을 찌뿌리게 하는 일들이 참 많다고 합니다.
그중 하나가 이날 보았던 일명 구두 앵벌이라고 하는데 이날만큼은 하객들이 이것을 이상하거나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듯 했습니다.
사회자가 하객에게 돈을 강요하거나 돈이 걷힐 때 까지 뺑뺑이를 돌리지 않고 자연스런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멋진 멘트로 마무리 한 덕분에 즐겁게 결혼식이 끝났습니다.
오랜만에 참석해본 결혼식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딱딱했던 21년전 내 결혼식 모습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배어나왔습니다.
너무나 긴장을 많이해 쫓기듯 일사천리로 결혼식을 진행해 마치 입학식을 보는 듯 했다던 친구의 말이 아직도 귀에 잉잉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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